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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레이아데스 Jul 05. 2024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읽어만 봐도 이해되는 중등과학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 집 앞 서점은 아이들이 와서 책을 읽어도 사장님이 눈치 주지 않으셨는데 부모님이 동화책 사는데 절대 돈을 써줄 수 없던 형편에 그곳은 정말 나에게 소중한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그때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 '무지개친구' (심경석 저)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그 시절에 백 번 정도 읽었던 책이었다.


 슬프거나 우울한 상황이 있을 때 그 책을 열어서 보다 보면 마음이 스르르 풀리고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절판되어 나오지 않는 책인데 나중에 커서 큰 맘먹고 구입했으나 이사를 다니다 보니 친정에서 찾을 수 없어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게 못내 아쉽다. 엄마의 그 시절 독서추억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초등학교 시절에는 티비가 보편화된 시기였지만 엄하셨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다 보니 집에서 티비를 거의 볼 수 없던 나에게 책은 정말 소중한 친구였다. 중고로 사주신 세계문학전집과 위인전이 있었는데 카세트테이프가 셋트로 제공되었고 오디오에 테이프를 넣으면 상냥한 목소리의 성우가 이야기를 차근차근 읽어주었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책이 닳아 없어지도록 듣고 읽다 보니 어린 시절엔 우리나라 위인들에 대해서 나오면 누구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자서전 한 권 읽는 것도 정말 힘든데 그땐 너무 재밌어서 읽고 또 읽어도 지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어린 동생 둘이 있어서 나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실 시간이 없었던 엄마의 피셜에 따르면 한글도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책을 보더니 여섯 살 때쯤 한글을 혼자 잘하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인가 보는 행위가 나에게 그렇게 즐거움을 주었기에 동화책으로 시작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무협지, 소설책, 하다 못해 인터넷 소설책에도 빠져서 몰래 교과서 밑에 읽기도 했고 가끔 부모님께 걸리면 책을 빼앗아 못 읽게 하시기도 했다. 그러면 도서관 가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한참을 책을 보다가 오기도 했다.


 왠지 어려운 책을 읽으면 똑똑해지는 것 같아 이해도 안 되는 어른들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과학 동아 같이 잘 사는 친구들만 보는 잡지책도 도서관에선 맘껏 읽을 수 있었기에 도서관은 참 좋은 놀이터였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도서관 기호를 보고 책을 잘 찾을 수 있는지 알았고 도서관프로그램에서 주는 다독상 같은 상을 받는 건 당연한 시절을 보냈다.


 대학생이 되면서 친구들과 노는 재미를 알게 되고 직장을 가지며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어느새 책을 잊고 살게 되고 한동안은 종이 위에 쓰인 문자를 읽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 책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서인지, 어린 시절 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위로를 하고 싶어서인지 보고 싶은 책을 하나둘 사 모으다 보니 책장 가득하게 표지도 넘기지 않아 빳빳한 책만 쌓여있는 것을 보게 되며 약간의 죄책감을 느껴기도 했다.


 작년부터 잠시 일을 쉬는 시간 그 책 중 하나를 꺼내 읽는데 책에서 주는 즐거움이 다시 살아나 어린 시절 나를 위로해 주던 그 시간이 회상이 되어 행복해졌다. 문자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는 느낌이 이렇게 좋은 것이었다니 왜 그동안 잊고 살았을까?


 책을 많이 읽은 것 치고는 글을 잘 못쓴다는 게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좀 부끄러운 부분이었다. 각종 글쓰기 대회에서 초등학교 때는 장려상이라도 거머쥐었던 것 같은데 크고 나서는 글 쓴걸 보니 내 눈에도 별로였기에 역시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홍승완 작가님 말씀대로 글을 자꾸 읽다 보니 쓰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자주 조금이라도 쓰다 보면 조금을 나아지리라 싶어 혼자 보는 공간에 끄적끄적 쓰다 보니 조금씩 글로 내 마음을 적어 내려가는 것에 재미가 붙게 되었다.


 아마도 내향적인 사람이라 말보다는 글이 내 마음에 있는 것을 조금 더 내어 놓기가 쉽게 느껴지는데 사회적으로 누군가를 만나서 쓰고 대화하는 게 아닌 깊은 심연의 감정도 꺼내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에 자유해지고 가벼워지면서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이런 글을 쓰면서 조차 내 이야기를 이렇게 적고 누군가 한 명은 봐준다는 게 대화 30분을 하는 것보다 더 위로되고 안정되는 느낌이 드는 게 신기할 다름이다.


직업의 특성상 누군가에게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일은 좋아해도 대중의 앞에 서는 일은 두려워 잠시 직업에서 피해있는 중이기에 쓰고 싶은 주제는 오히려 너무 확실하다. 얼굴을 대면하면 말 붙이는 게 살짝 겁나는 눈빛을 발사하는 과학이 싫은 중학생들 또는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엄마표로 중등과학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글을 적어보고 싶어졌다.


 말로 하려면 순간순간 멈칫해지고 30명의 아이들의 눈빛을 하나하나 신경 쓰며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다 보니 긴장의 연속이라 정작 해야 하는 말의 반도 채 못하고 수업이 끝난다. 하지만 글로 하면 최소한 내가 해주고 싶은 얘기를 조금을 길더라도 쉽게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 담긴 마음이 들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주로 고등학교 아이들을 많이 봐왔고 중학교 아이들을 오래 보진 못했지만 아이들은 보통 상담에서 "선생님 저는 초등학교 때 과학을 좋아하고 쉬웠는데 중학교는 너무 어려워서 싫어하는 거예요. 쌤이 싫은게 아니고 과학이 싫어요" 라는 말로 내 수업을 잘 듣지 않는 것에 대한 이유를 얘기한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이 싫다는 말에 슬프지만 그래도 내가 싫은건 아니라는 말에 밤톨만 한 위로를 얻으며 포기하지 말자고 선생님이 쉽게 가르쳐 보겠다는 말로 돌려보낸 후에는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어릴 적 쉽게 배웠던 과학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모두의 수준을 고려해서 가르쳐야 하는 수업시간에는 정말 쉽게만 가르치는 것이 공평한 교육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수업은 항상 중간 지점 정도의 수준으로 행해졌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기에 나에게 그런 말을 던진 아이들에게서 어떤 변화의 흐름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상 초등학교 때 배웠던 내용들이 중학교에서 약간 더 추가되는 것일 뿐이다. '그럼 전에 배웠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장기기억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부분을 끄집어내어 주고 추가된 내용을 그들의 수준에서 사용하는 쉬운 용어들로 살을 붙여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블로그로 성공하는 법을 다룬 책을 보았을 때 느꼈던 것처럼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쉬운데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 너무나 진부하고 재미없는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단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책에 쓰인 대로만 하면 나는 이미 인플루언서가 되어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내 블로그는 구독자 없이 가끔 지식충족을 위해 들어오는 사람만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고쳐 보다 보면 단 한 사람의 중학생 독자를 이해시킬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호승심이 약간씩 마음에 스며들어 도전하게 된다.



집으로 오는 과외선생님 마냥 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글들을 쓰고 읽을만한 글들을 모아 책을 한 번 꼭 써보고 싶다. 욕심만으로는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래도 좀 내가 알고 있는 분야이니 소박한 능력과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육아 휴직시간을 잘 활용해 본다면 가능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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