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사람들은 과학을 최고의 학문, 인문학은 과학보다 아래의 학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한민국 교육에서 어렸을 때부터 인문학에 대한 것은 자주 다루지 않았었다.
인문학 소양을 배우려면 주도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책 속에 나오는 문장을 사색을 하며 나의 상황을 대입해야 그 소양들을 깊게 넓혀 나갈 수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인문학은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과서 중심이긴 하지만 교과서를 이용해 진도를 빼기에 급급함.
과제를 통해 생각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것 대신 성적만 잘 받으면 된다고 하는 선생.
자녀가 질문하면 모른다며 일관하는 부모.
그러한 것들을 숱하게 봐왔기에 질린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기보다는 자신의 경험, 과학 맹신에 빠지게 된다.
앞선 내용을 살펴보면 비난, 비판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비난, 비판이 아니다.
과거의 역사, 다른 사람들의 지혜가 없이 자신의 살아온 길만 있게 되면 고집을 피우게 된다. 그 고집들이 생각을 굳게 만들어 아집으로 변질되게 만든다. 아집은 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다이아몬드 광석처럼 아무도 깨부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과학맹신 또한 그렇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망각을 한다. 어떤 한 분야의 실험 결과가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영향을 미칠지 안미칠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한 것을 따지게 되면 미래를 예견하게 되는 것이므로 실험 결과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결과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사람이 맨 처음에 광산의 갱도를 넓히기 편하게 활용하라고 개발을 했다. 하지만 그 영향은 다르게 작용을 했다. 과학 영역의 선과 악의 결과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다이너마이트를 광산 갱도를 넓히는 데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대량 살상 무기로 이용하는 사람이 있다. 즉, 과학의 영역은 사실판단인 참과 거짓만 판단한다.
가치 판단의 영역은 인문학의 영역이다. 선과 악. 윤리,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영역은 인문학의 영역이다.
인문학은 과거 역사, 다른 사람의 지혜로서 배워나갈 수 있다.
과거 선인(先人)들의 긍정적인 부분, 부정적인 부분을 현대의 맞춰 학습해 나가면서 수정해 나갈 수 있다.
독일 정치가인 비스마르크는 이런 말을 하였다.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
흔히 인문학이라고 말하는 역사, 경서, 철학은 사람들이 도외시한다.
요즘은 에세이, 자기 계발서로 퉁치려고 한다.
심지어는 과학서적을 통해 자신의 지식을 탐닉하거나 더욱 견고히 하려고 한다.
앞서 말했듯 과학은 사실판단의 영역이다. 자신의 경험은 믿는 자는 아집이 심해진다고 알려줬다.
즉, 미시적인 관점에서 계속 삶을 바라보게 되면 사람들은 늘 “자신을 바꿔야지”하지만 바꿀 수 없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움을 습득하는 사람은 계속 자신의 경험을 되풀이하게 되며 과학만 이용해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사실판단에 집중하게 된다.
과학에 나의 가치를 집어넣게 되면 그 순간 과학의 의미는 퇴색되고 인문학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내일 서점에 달려가서 인문학책인 유교경전을 사서 봐야 하나 성경이라도 사서 봐야 하나 역사책이라도 뒤져봐야 하나 궁금해할 것이다.
그러면 나야 감사하다. 그렇게라도 열정을 내주면 나야 감사하다. 책을 사서 거시적 관점에서 내 삶을 다채롭게 조망하고 바라보게 한다면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책까지 갈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친근한 유튜브가 있다.
나는 역사에 관한 내용을 알고 싶을 때 유튜브에 관련 다큐를 검색해서 찾아본다. EBS 다큐프라임이 진짜 잘되어있긴 하다.
그걸 보면서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고 과거에 비슷한 문제를 해결한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역사는 좀 그렇다. 싶으면 성경을 추천한다.
종교적 관점으로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소양을 기르기 위해 추천한다.
성경 안에는 단순히 창세기만 있는 게 아니라 왕들의 역사인 역사서, 처세술의 달인 느헤미야, 사람들에 대하는 태도들에 대해 나와있기에 추천을 한다.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를 알려주는 잠언에 대해서도 나온다.
성공한 사람들이 괜히 성경을 읽어보고 내 삶을 적용해 보라고 추천해 보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른다는 것을 “배움”의 측면으로 접근하여도 좋고 “나를 이해하는 과정”의 측면으로 접근하여도 좋고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는 과정”의 측면으로 접근하여도 좋다.(배움과 관점 이해는 다르다)
인문학적 소양 곧 사람에 대한 이해 더 나아가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거라고 본다.
나의 경험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삶이 세상을 바라볼 때 넓게 바라보게 되니 얼마나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인문학 덕분에 나에게 생긴 마음은
사람은 어리석다. 사람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성공의 맛을 보기도 하고 실수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한다. 거짓으로 자신의 것을 감추기도 하고 진실되게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과거의 배운 것을 망각하고 다시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어리석은 존재가 맞다. 사람은 어리석기에 사랑스러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