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열정의 지속성은 몇 점인가요?

by 꿈마루 황상하

어제 잠에 들기 전 아직 읽지 않는 책인 '그릿'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오랜만에 나의 그릿 점수가 몇 점인지 파악하고자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image_2023-02-15_01-30-27.png 출처 : https://angeladuckworth.com/grit-scale/

4.5점으로 나왔다.

미국인 기준 상위 90%에 해당하는 점수로서 꽤나 높은 점수라고 볼 수 있다.

과거 내가 그릿 테스트를 했으면 2점도 안 나왔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오늘은 그릿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 건 아니다.

왜 이렇게 점수가 높아졌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아서 저자의 연구가 어떠한지를 잘 알지 못한다.

GRIT이 약자인 것은 안다. 무엇의 약자인지 책을 아직 읽지 아니하여 알려줄 수 없는 점 우선 양해 바란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은 "노력"이라는 단어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은 정 반대다. "노오오오오오력"하면 뭐든 다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라고 하면 소위 말하는 "꼰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포장한다.


"나와 너는 달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아"

"내 스타일과 맞지 않는 걸?"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들을 원천 차단한 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홈쇼핑처럼 지금 오지 않는 기회! 제 경험을 알 수 있는 글입니다! 라며 호소에 그쳤다면 소위말하는 꼰대와 같은 글로 전략해 버릴 수 있는 글이 될 수도 있다. 과거는 3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1년이면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이다. X세대까지는 대학 가면 취업할 수 있고 취업 후 결혼하여 당연히 집을 살 수 있는 게 현실이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연령은 통용되지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는 뭐 해야 하는지, 어떤 직(職)이 아닌 업(業)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결국에 가서 나는 누구인지 등을 직접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세대가 지금의 나와 같은 첫 세대인 20대와 30대이다. 즉, 진로를 걱정하는 세대가 바로 이 세대라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과거 부자들이 해왔던 루틴, 마인드 셋 등을 유튜브에서 시청하여 따라 한다. 하지만 적용을 하기가 어렵다. 어떤 이는 끌어당김의 법칙, 시각화, 두뇌재조정이라고 하여 그것을 따라 하고자 한다. 하지만 어렵다. 왜 어려울까?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끌어당김의 법칙, 시각화, 두뇌재조정과 같은 기술들은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가치가 있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부자"라는 이유로 이것을 하고 "부자"가 된다는 이유로 따라 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기에 지속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나와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떠한 시선을 가지고 바라봐야 되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지는 본인들이 스스로 선택해야할 때가 지금의 세대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은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하리라 생각해 본다. 이러한 생각력을 길러야 하는 세대인데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다양한 것들로 인하여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들이 줄어든다. 그것들로 인하여 많은 사람은 좀비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게 되어 사람들에게 쉽게 휘둘리게 된다.

생각이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아니라 어떠한 것을 해야 하거나 떠오르면 지속적으로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면 아… 배고프다와 같은 것은 잡념과 같은 스쳐 지나가는 것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1년에 영어단어 3천 개 외워야지, 외우기 위해선 하루에 10개씩 외워야 되고 그걸 하기 위해 하루에 시간을 얼마나 써야 하는 계획 그리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것에 빠지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능력까지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앞서 말한 그릿과 유사한 개념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 지혜는 그 사람이 적용해서 성공한 사례라고 보면 된다. 나에게 적용해서 될지 안 될지는 미지수다. 되면 좋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할아버지의 지혜, 할머니의 지혜가 그 시대에는 통할지는 몰라도 지금에 와서 통할지는 미지수다. 심리학에서 상담 또한 A라는 기법이 어떤 내담자에게는 적용이 되는데 어떤 내담자에게는 적용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와 사람, 세상에 대해 알려주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며 울림을 준 것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인문학 + 고전, 인문고전이라고 한다. 나는 스스로의 생각을 키우기 위해선 고전을 읽으라고 한다. 갑자기 고전을 읽으라고 하면 막막할 것이다. 그래 막막하다. 살기도 바쁜데 이것까지 읽으라고 하니 유용한 것은 아는데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읽는 것도 자유고 읽지 않는 것도 본인의 자유이자 선택이다. 나는 추천하고 제안할 뿐이다.


몇 권을 읽으라고 추천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바쁜데 책 추천은 잘 안 한다. 그 사람들도 책 많이 읽어야 하고 본인에게 맞는 책이 있기에 추천을 안 한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고심 끝에 세계에 많은 번역이 되어왔고 지금까지 사랑받아온 책인 성경을 추천해 본다. 성경 추천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뒤로 가기를 누르거나 마음에서 욕이 나왔을 것이다. 나는 고심 끝에 고른 책을 추천했다. 교회 가라고 하거나 종교를 가지라고 했으면 성경 속 성구를 나열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문고전으로서의 성경을 추천하면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신앙을 살펴보면 기복신앙이 근본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정기복이 아니라 祈福信仰,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신앙으로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하면서 정안수를 떠놓고 우리 선조들이 가족, 자녀들의 복을 빌었던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으로 전파되어 한국으로 들어온 걸로 알고 있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불상에 절하면서 자녀, 가족, 본인이 잘 되도록 복을 빈다(기도한다). 불교의 본질은 깨닫기 위해 노력하게 되면 궁극의 경지인 부처가 되기 위함인 것을 알고 있다. 기독교 또한 어떠한가?

기독교의 전파는 예수 부활 승천 이후 제자들과 사도들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서 기독교가 전파된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의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유일 신과 예수라는 사람이 성경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려줘야 한다. 한국의 기독교는 성경을 가지고 성경과 다르게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면 원하는 복을 이뤄주실 겁니다"하면서 기복신앙을 장려하는 게 일상이다. 기도하면서 자신, 가족, 자녀의 복을 빈다.

우리나라에 불교, 기독교가 전파되어 들어오면서 한국에 기복신앙 문화와 섞이게 되면서 본래의 취지와 변질이 되었다. 그러니 성경을 읽자고 하면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기복신앙이 싫고 성경 속에 나온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과 다르게 가르치는 교회의 문화가 싫어서 교회를 제 발로 나온 사람인 것을 명심하면 좋겠다.


이러한 사실을 밝혀도 고전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은 성경이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힘은 무시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흔히 알고 있는 고전에도 성경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거의 모든 문화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니 말이다.

간단하게 내 이야기를 하자면 성경을 읽으면서 생긴 변화는 내 생각의 틀이 넓혀져 갔다. 시야가 하나만 바라봤다면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시야는 나무에서 숲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어갔다. 경서에 나온 글들을 내 삶 속에 적용해보려고 하다 보니 생각의 체계가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과거는 "이건 할 수 없고, 저건 할 수 없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면 성경을 읽어가면서 "이건 ~ 할 수 있고, 이것은 ~ 할 수 있겠는데?"라며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성경 속 다양한 인물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하나님이라는 유일신을 의지한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본다면 모든 인물들의 긍정적인 면모가 가능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기 전에 어떤 사람이 피드백을 주면 "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고…"하면서 넘겨짚었다. 성경 속에 있는 교훈의 말들을 적용해나가다 보니 "저 사람이 어떤 이유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할까?"라고 생각하게 되어 변화를 시도해나가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이 처세술을 어려워한다. 다양한 처세에 관련된 책을 읽는데 적용하기가 어렵다. 성경에도 처세술이 스토리로 잘 나와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고서 다윗을 다음 왕으로 택하고 음유시인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했다. 그것을 들은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다윗을 죽일 각오로 곁에 두었을 때 다윗은 사울의 뜻을 살피며 지혜롭게 보좌하며 사울이 죽고 난 뒤에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보다는 다윗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처세술의 달인이었던 느헤미야 또한 왕의 술 관원(현대 소믈리에)으로 에스라가 다 하지 못한 성전을 복구하는데 힘쓴다. 성전 복구할 때마다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닌 유대 총독에게 가서 "성전의 ~ 복구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의견을 먼저 물어보고 실행한다. 유대 총독의 허락이 떨어지면 그의 지시대로 한 것이 된다. 느헤미야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이야기 또한 나온다.

나 또한 이것을 알기 전 직장 다닐 때 내 뜻대로 하다가 한번 깨진 적이 있다. 아… 기억하기 싫은데 말이다.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직장에서 지금보다 더 인정받기 위해 독단적으로 행동하다가 사람을 대하는 일에서 실수를 하는 바람에 윗 분들께 깨졌었다. 만일 느헤미야의 이야기를 알았더라면 윗 분께 보고를 드리고 갔을 텐데 말이다.


성경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인물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많은 책의 내용과 유사하다. 오히려 더 오래되었고 많은 사람이 찾으니 신뢰할만하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을 알기 전과 후는 나의 삶이 많이 바뀌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성경이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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