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언어, NLP로 시작된 배움

NLP가 알려준 내면의 작동 원리

by 드림맥스


퇴직 이후에도 MBA 배움은 계속되었다. 코칭 수업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새로운 배움의 문 앞에 서 있었다. NLP, 이름부터가 나와는 조금 다른 세계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이공계 출신으로 살아온 나는, 늘 문제를 구조로 나누고 원인을 분석하며 답을 찾아가는 방식에 익숙했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삶을 움직이는 힘이 그 안에 있다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말과 몸짓, 미묘한 반응을 통해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려는 NLP라는 분야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편으로는 설렘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긴장감도 함께 따라왔다.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고개를 드는 일이었다.


기법, 구조, 프레임 같은 단어들이 설명과 함께 이어질수록 머릿속은 점점 분주해졌다. 이건 분석하면 풀리는 문제일까, 아니면 감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일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식이 과연 공식처럼 정리될 수 있는 걸까. 그런 질문들이 차분히, 그러나 분명하게 쌓여갔다. 강의 교재를 넘기며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공계적 사고로 살아온 내가, 이 마음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질문에는 두려움만 담겨 있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사고방식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긴장과 함께, 전혀 다른 방식의 배움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함께 들어 있었다. 어쩌면 이 과목은, 새로운 지식을 더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사고방식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보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고 있었다.


NLP는 Neuro Linguistic Programming, 신경언어프로그래밍의 약자라고 했다. 사람의 말, 몸의 반응, 행동의 패턴 속에 드러나는 징후를 통해 마음의 상태를 읽고, 그 구조를 이해하려는 학문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꽤 기술적인 분야처럼 보였다. 사람의 언어와 행동을 관찰해 심리 상태를 진단하고, 변화를 설계하는 도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을 따라갈수록, 나는 이 분야가 단순히 사람을 읽는 기술이 아니라는 걸 점점 느끼기 시작했다.


이 과목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6개월간의 코칭 경험이었다. 한 내담자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나는 계속 같은 질문에 부딪히고 있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은 왜 이렇게 오래 몸에 남는 걸까. 마음의 상처는 왜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 기억과 통증을 안고도 다시 삶을 선택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서게 되는 걸까. NLP는 바로 그 지점에 말을 걸고 있었다.


이 분야의 중요한 전제 중 하나는 이렇다. 정신과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생각이 몸을 만들고, 몸의 반응이 감정을 강화하며, 감정은 다시 생각의 방향을 결정한다. NLP는 말과 호흡, 시선과 자세 같은 아주 작은 신체의 신호들이 이미 마음의 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전히 기술에 눈이 갔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대화를 이끌어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잘 해내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배우는 자리에서도 성과를 내고 싶었고, 이해했다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수업이 깊어질수록,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법을 적용하려 할수록 대화는 어색해졌고, 질문을 잘 던지려 애쓸수록 상대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는데, 몸은 따라오지 않는 느낌. 이전에 익숙했던 방식이 여기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졌다.


NLP 강의 중, 교수님의 이 말씀이 오래 남았다.


“NLP는 책이나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경험하고, 맛보는 것입니다. 온몸으로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책이나 글에서 이해는 가능하지만, 직접 내 삶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 직접 경험하고, 부딪치고 깨지면서 맛보며 깨우친다. 그 과정의 중요한 단서들은 우리의 신체와 언어의 행동 패턴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내용은 나를 잠시 멈춰 세웠다. 나는 그동안 코칭과 NLP를 ‘무언가를 잘하기 위한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배움은 저장해 두는 지식이 아니라, 이미 내 몸에 남아 있는 경험을 다시 읽어내는 과정에 가까웠다. 우리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삶의 답을 몸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험하며 저장된 삶의 단서들. 다만, 그 의미를 구조화해 바라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수업에는 중요한 과제가 있었다. 매주 제출해야 하는 성찰 에세이였다. 이 수업에서는 그것을 과제가 아니라, ‘축제’라고 불렀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축제의 의미였다. 솔직히 말하면, 다수의 원우들이 이 ‘축제’를 힘들어했다. 매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을 글로 풀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 축제는 조금 달랐다. 조직에서의 상실과 혼란을 겪은 이후, 나는 이미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절실했던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이 성찰 축제를 의무가 아니라 기회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성실하게, 빠짐없이, 매주 글을 썼다. 잘 쓰려고 하지 않았고,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저 그 주에 배운 NLP의 개념을 나의 삶과 생각에 조용히 대입해 보았다.


글을 쓰다 보면, 미처 몰랐던 생각들이 문장으로 떠올랐다. 내가 왜 특정 상황에서 유독 움츠러드는지, 어떤 말 앞에서 몸이 먼저 긴장하는지, 그리고 그 반응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조심스럽게 따라가 보게 되었다. 그 시간은 나에게 NLP를 머리로 이해하는 시간이 아니라, 삶으로 음미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매주 한 편의 에세이를 쓰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다루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NLP의 또 다른 전제는 이렇게 말한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는 실제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각자의 경험과 해석으로 그려낸 지도일 뿐이라는 뜻이다. 같은 사건을 겪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다. 어떤 기억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살아남은 증거가 된다. 나는 이 전제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내가 그려왔던 지도는 꽤 거칠고 엄격했다. 실패의 지형은 과장되어 있었고, 가능성의 영역은 지나치게 좁게 표시되어 있었다.


성찰 에세이를 쓰며, 나는 그 지도를 부정하지 않고 다시 그려볼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느꼈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읽는 기술을 배우러 들어온 줄 알았던 수업은, 결국 나 자신의 말과 몸의 신호를 가장 먼저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조용히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NLP는 내게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론’이기 이전에, 나 자신의 삶을 다시 읽게 만든 언어였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의미를 찾는 연습은, 어느새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말로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어떤 순간에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는지, 어떤 말 앞에서 스스로를 과하게 몰아붙였는지, 그리고 그 반응들이 어떤 과거의 지도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차분히 살피게 되었다.


사람을 이해하려고 배운 학문이, 결국은 나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를 데려갔다. 분석으로는 닿을 수 없었던 영역을, 관찰과 성찰로 조금씩 건너가게 만든 시간이었다. NLP는 삶을 바꾸는 기술이라기보다, 이미 살아온 삶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관점에 가까웠다. 그 관점을 얻은 것만으로도, 이 과목은 내 MBA 여정에서 충분히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대학원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분야가 NLP였습니다. 혹시 NLP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글을 참조해 보셔도 좋습니다.

[NLP란 무엇인가]

[NLP 전제: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의사소통 모델과 표상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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