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사마리안들
"부르릉 부르릉. 매케한 연기가 차를 앞으로 밀어내자 마음이 잠시 출렁였다"
도시여행에서 가장 스릴 있는 도전은 로컬버스를 이용해 보는 일이다. 행선지도, 요금도, 내릴 곳도 확신할 수 없는 그 버스에 몸을 실을 때 느껴지는 긴장감은 전철이나 택시에서는 쉽게 맛보기 힘든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전철처럼 노선이 단순하지 않고, 택시처럼 요금 지불이 간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버스 종류와 수백 가지의 버스 노선을 다 파악하는 것은 현지인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로컬버스 이용은 여행객에게 고난도 옵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고 했던가. 어려운 도전에는 그만한 보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다른 교통수단들에 비해 버스 여행은 도시의 스트릿 뷰와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구글맵을 잘 이용하면 버스 탑승이 예전처럼 어렵지는 않다. 여전히 심리적인 두려움은 다소 있지만, 맵에서 목적지까지의 버스 노선과 시간을 알려주고 GPS로 실시간 위치 파악도 되니 실제로 버스를 이용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
버스에 관련한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저녁 늦게 시암의 쇼핑몰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탔다. 늦은 시간이라 앉아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버스 구조가 우리 시내버스와 흡사했다. 뒤에 앉아 있던 아내가 이내 졸기 시작했다.
40분을 달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그제서야 아내의 핸드폰이 사라진 걸 깨달았다.
핸드폰의 가격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잃는 것이 더 두려웠다. 온갖 개인정보와 금융 정보가 다 들어 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내의 폰으로 전화를 거니 누군가 전화를 받기는 하는데 그중 영어로 소통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일단 원격으로 폰을 초기화시키고 위치 추적을 해보니 폰의 위치가 노트북 지도에 표시된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동이 트자마자 근처의 경찰서를 방문했다. 역시 영어를 하는 경찰관이 없었는데, 얼마쯤 있다가 짧게 영어 소통이 되는 경관이 와서 사건 접수를 해주었다. 태국말을 모르니 도대체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이윽고 해당 위치에 대해서 뭐라 뭐라 하더니, 그 지역의 경찰서로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사건을 인계받은 해당 경찰서에서 영어를 제법하는 젊은 경관이 경찰 트럭에 우리를 태우고 핸드폰이 있는 위치로 찾아갔다.
핸드폰이 없어진 것을 알고 우리는 온갖 시나리오를 썼다.
소매치기일까? 다른 승객이 분실물을 습득한 걸까?
핸드폰은 우리나라에서도 되찾기 쉽지 않은 아이템이다.
과연 핸드폰이 있던 곳은 어디였을까?
다름 아니라 그 전날 탑승했던 버스의 종점이었다.
누군가 폰을 주워서 기사에게 인계했고, 기사는 그대로 회사에 습득물 신고를 한 뒤 사무실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날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버스회사 직원들이었다.
습득물 인수증에 사인을 한 후 직원들, 경찰과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는데 경찰이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방콕 여행 중 가장 아찔한 사건이었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금방 해결이 됐다.
핸드폰은 어디서나 현금화가 매우 쉬운 물건이라, 되찾기가 쉽지 않다. 태국 버스에서 흘린 핸드폰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제로일 거라 예상했던 우리에게 이날 아침의 일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부 한국 커뮤니티에서 가끔 객실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한다는 등 현지의 주의사항 사례들이 올라와서 그것을 간접체험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우리가 여행 중에 경험한 태국 사람들은 대부분 선량하고 정직했다. 역시 불교국가의 국민들이어서였을까.
우리는 극히 일부의 일탈을 쉽게 그 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키고, 그것을 근거로 혐오와 폄훼의 말을 너무 쉽게 내뱉곤 한다.
그들보다 조금 잘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상대를 깔보고 하대하는 일부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 한켠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우리 역시 그런 취급을 받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곤 하는 아시아인 중 하나다.
내가 받기 싫은 대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는 태도, 그 단순한 원칙이야말로 우리 세계를 조금 더 근사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싶다.
이 에피소드 덕분에 여행객이 체험하기 어려운 경찰 서비스와 로컬 주민의 친절함을 진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10차선 대로변에 정상적으로 주차해 둔 차가 부서지고 수백만 원을 강탈당했던 사건조차 제대로 사건 취급을 하지 않던 샌프란시스코의 경찰.
그리고 낯선 외국인의 휴대폰 하나를 찾아주려고 동분서주해 주었던 방콕의 경찰.
선진국의 기준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방콕여행 #방콕로컬버스 #태국여행 #동남아여행 #도시여행 #로컬버스 #대중교통여행 #여행에피소드 #여행에세이 #해외여행기 #여행중사건 #휴대폰분실 #분실물에피소드 #여행팁 #구글맵활용 #GPS위치추적 #여행안전 #경찰서비스 #로컬문화 #현지인친절 #사마리안 #선의의연쇄 #여행에서배운것 #문화차이 #선입견 #인종차별 #국민성 #선진국의기준 #사람사는이야기 #브런치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