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사무실로 한 엄마와 딸이 방문했다.
성폭력 피해자 S와 그 엄마였다.
S는 친구 B와 집을 나와 카카오톡 오픈채팅으로 오빠들을 만나 어울렸고
그렇게 만난 오빠들 중 하나가 S를 성폭행했다.
S는 피해를 당한 직후 다른 일로 소년분류심사원에 입소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피해자 조사를 위해 분류심사원에 가서야 S를 처음 마주했다.
칸막이를 경계로 서로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물리적 공간이 마치 아이들과 우리 사이의 공유되지 않는 마음의 장벽처럼 느껴졌다.
6개월 동안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밤낮없이 뛰었다.
여러 번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집행하고, 확보한 자료를 분석해서 드디어 범인을 찾아내 검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사 결과는 불송치 결정이었다. 범인의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에는 S의 진술과 배치되는 여러 증거와 정황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S의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이 끝나고 엄마가 마침 분류심사원을 나온 S를 데리고 휴대전화를 찾으러 수사팀 사무실로 방문한 것이다.
S를 조사했던 담당 수사관이 어머니와 S를 응접실에서 휴대전화를 돌려주고, 범인을 검거했지만 처벌이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그 이유를 자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S가 잘못해서 아이들이 거짓말을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S는 피해자다. S와 B 모두 잘못한 것이 없다. 아이들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어른들이 가해자다. 그러나 가해자 어른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기까지는 너무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리고 그 제약들은 아이들에 대한 특히, 가정과 학교에서 내몰려 방황하는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과 몰이해에 기인한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법이 아이들을 충분히 보호해 주지 못할 뿐이다. 법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법을 만드는 어른들의 생각과 눈높이의 한계로 아이들은 피해를 당했지만 피해자가 되지 못한다.
S와 엄마에게 증거를 찾지 못해 범인을 처벌할 수 없게 되었다고 수사팀의 잘못이라고 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S를 슬쩍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고단해 보이는 얼굴에 큰 한숨이 더해진 것 같았다.
S의 똘망한 눈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왠지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한가위 연휴 동안만이라도 엄마와 S가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