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생각보다 먼저 40대가 되었다. 어쩌면 40대부터 우리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삶을 먼저 만나는구나 싶다. 용감했던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스윽 시작하고 말았다. 주저함이란 단어는 그녀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우유부단하지 않았다.
장군은 그녀의 별명이었다. 용감한 그녀가 10대였을 때 학교생활에서는 따르는 친구들이 많았고, 집에서는 말이 없었다. 용감한 그녀가 20대였을 때 직장생활에서는 불편하지만 해야 할 이야기가 생기면 총대를 메었고,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 둘을 낳았다. 용감한 그녀가 30대였을 때 아이를 둘 더 낳아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워킹맘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출산과 육아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과정에서도 일을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했던 순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용감한 그녀가 남편을 만났던 시기를 돌이켜 보면 자신의 용감함을 지켜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때 남편을 만났다. 그녀도 마음이 무너지는 사건들을 연이어 만나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쓰렸다. 허허벌판에 나 혼자 서있는 듯 한 생각이 자주 드는 시기도 있었고, 그때 씩씩한 남자의 손 대신 부끄러움을 타는 남자의 손을 잡은 일 역시 용기였다.
이제 40대가 된 용감한 그녀는 몇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나의 용감함을 지키기 위해 나라고 여겨지질만큼 소중한 타인들의 용감함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가려고 한다.
하나.
용감하고 싶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말투와 눈빛이 부드러울 필요가 있더라. 용감해 보이지만 용감하지 않은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나누어야 할 이야기를 만날 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보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용감해 보이지만 용감하지 않은 사람들을 단숨에 알아보기란 어렵기 때문에 말투와 눈빛을 부드럽게 만든 후에 불편하지만 해야 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용감해 보이지만 용감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나의 용감함이 상처받는 일을 줄일 수 있더라.
둘.
용감하고 싶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오지랖도 적당히 부려야 하더라. 누군가의 상황과 사연이 안타깝다고 해서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때 얕은 손을 열 번 내미는 일보다 나의 상황과 사연을 들어주길 그리고 함께 지혜를 찾아주길 바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깊은 손을 한번 내미는 일이 용감한 그녀와 용감해지고 싶은 그들을 함께 돕는 일이더라. 오지랖에도 타이밍이 있더라. 타이밍을 모른 채 불뚝불뚝 솟아오르는 참견의 마음이 있더라도 상대가 나의 개입을 원하는지 감지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더라.
셋.
나 혼자 씩씩하게 모든 일을 다 해내지 않아도 되더라. 나 혼자 해낸다는 생각보다 교만한 생각은 없더라. 책임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일 사이에서 두세 배의 중량을 몸으로 받아내야 할 때 20대 30대의 그녀가 스스로에게 해주던 이야기를 감지해 본다.
"힘들다고?"
"핑계 대지 말고 제대로 해"
"시간이 없다고?"
"당신 아니면 누가 하니?"
"당신일이 아니라고?"
"대안이 없잖아. 이왕 할 거면 묵묵히 해"
그렇게 다그치며 세상에 나 혼자 나고 살아가는 듯 그럴 필요가 없더라. '진짜 책임'이란 게 뭘까 생각해본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모두 가져와서 책임져야 할 일을 숨 쉬지 못하게 하는 일은 책임이 아니더라. 너의 책임 저들의 책임이 있거늘 그들이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말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모두 가져와서 스스로를 달달 볶는 일은 책임이 아니더라. 각자의 책임이 각자에게 향하도록 두고 누가 뭐래도 내가 책임져야 할 순수한 책임을 추리고, 그 책임이 길게 건강하게 지켜내지 못할 상황이라면 이렇게 말해 보자.
"지금은 차라리 쉬자"
"지금은 차라리 부탁해보자"
"지금은 차라리 기다려보자"
그럴 때 만났던 책 속에 지혜들, 그럴 때 찾아왔던 산책 속에 영감들, 그럴 때 만났던 나를 돕고 싶어 하던 든든한 조력자들, 그럴 때 만났던 더 멋진 길들을 만나왔으니 이제는 계속 나를 다그쳐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함께 가자. 용감한 그녀도 알고 보면 아이요. 용감한 그녀도 알고 보면 아마추어니까.
40이 된 용감했던 그녀는 이제 부러지지 않겠다 결심하는 마음 대신 다른 마음을 먹고 산다. 40이 된 용감했던 그녀는 이제 쉴 줄도 알고 넘길 줄도 알며 웃으며 말할 줄도 안다. 변해가는 길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야 그녀 안에 있는 용감함을 지킬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녀는 변해간다. 그렇게 그녀는 오늘 설레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선영씨, 당신은 여전히 참 용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