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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영 소장 Feb 18. 2022

꼼꼼한 남편이 40대가 되면

부부의 다름은 자원일까 갈등의 씨앗일까?

나는 꼼꼼한 남자와 결혼했다. 성큼성큼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내 성격을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 다른 지점을 어여쁘게 보았구나 싶다. 주변에 다양한 부부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또 커플 코칭을 하기 위해 이제 만나기 시작한 신선한 커플을 만날 때에도 나는 느낀다.

'참으로 많은 커플들이 서로의 다름을 어여쁘게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특별한 인연을 얻었구나.'라고 말이다.


 

부부의 다름은 매력 포인트이면서 동시에 갈등 포인트가 된다. 어떤 일이든 두 가지 면을 가진다. 요즘 더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다. 마냥 좋기만 한 일도 마냥 나쁘기만 한 일도 잘 없다고 느껴진다. 서로의 다름이 인연의 시작을 돕지만 연애가 지속되고 연인에서 부부가 되면 서로의 다름은 서로에게 부정적인 감정들을 일이키기 쉽다. 서로 다름의 강도가 생각보다 크고 견고하다는 걸 확인할 기회들을 만나고

'내가 저 사람을 몰랐구나. 이렇게 저 사람을 알아가는구나!'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어쩌면 그것이 가족이다. 결혼은 단순히 결혼이 아니라 결혼 더하기 생활이니까. 나에게 신랑의 꼼꼼함이 그렇다. 그의 꼼꼼함은 나에게 든든함이요. 번뇌다.


중요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어느 날이었다. 예열을 하듯 정수기 옆으로 가서 커피머신에 라떼 캡슐을 넣고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과정을 기다린다. 예열이 되고 지잉 소리와 함께 나오는 라떼를 받는다. 한 손에 라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연필꽂이에 있는 연필 두자를 빼서 작업해야 할 방으로 간다.  꼼꼼하게 챙기며 오늘 내에 마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예열이 필요하다. 방으로 와서 PC를 켠다. 책상 위에 질서 없이 놓인 책과 메모지를 정리하고 사이드 테이블도 미리 정리해 둔다. 정리된 사이드 테이블에는 기준을 만들어 서류의 원본과 사본을 구분해두기로 한다. 이제 마음이 차분해진다. 예열이 끝났다.


심해로 들어가는 잠수함처럼 깊숙이 집중이라는 바다로 들어가는 이 느낌이 나는 참 좋다. 그렇게 집중을 시작한 게 오후 1시 반. 벌써 3시가 되었다. 시계를 볼 여유가 생긴 건 골조작업은 마무리가 되었다는 증거다. 귀찮지만 중요한 작업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강렬하게 느껴본다. 내가 나를 돕고 있다. 뭔가를 제대로 하고 싶어 하는 나를 다른 내가 도와주고 있다. 디테일한 작업이 남았지만 귀찮은 마음을 지금 꺼내면 다시 예열을 해야 하니 귀찮은 마음은 번뇌 없이 접어두기로 한다. 이때 남편이 방으로 들어온다. 문을 빼꼼히 열고 아내인 나를 본다. 남편의 눈빛이 좀 그렇다. 나를 지적하고 싶은 눈빛이 나왔다. 알아차렸으나 차단을 시도한다.  


"금방 끝날 거야. 좀 있다가 치킨 시키고 싱어 게인 보자!"

"그랴 어여 마무리나 하세요"

참고 나가네. 생각하던 찰나에 남편이 다시 들어온다. 그리고 참음을 중단하고 훈수를 둔다.

"자기야 중요한 일이라면서 제출할 증명서를 휴대폰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는 사람이 어딨냐?"

호흡으로 감정을 다스려본다. 다스림이 안된다. 다정한 듯 한칼이 있는 대꾸를 보낸다.

"원본은 따로 낼 건데... 스캔 기능까지 동원에서 그림자도 안 생기도록 깔끔하게 찍고 있어.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하네요."

남편도 나의 거부를 거부한다. 목소리에 왕년에 중대장님이 묻어 나온다.

"야 이 사람아, 아무리 스캔 기능이라도 그저 휴대폰인데 그게 깔끔할 리가 있나? 진짜 깔끔하게 하려면 진짜 스캔을 해야지. 난 누가 휴대폰으로 찍어서 파일 주면 열어보기도 싫던데... 저럴 때 보면 허술해"


기분이 상하는 느낌이 좀 들었었지만 이 대목에서부터는 기분이 매우 상한다. 화살을 두 번 맞은 것처럼. 절정으로 치닫던 집중력은 산으로 갔다.

"음 그럼 당신이 해주면 되겠군. 아주 깔끔한 당신이 도와주면 되겠어. 어차피 이번 주말도 회사 잠깐 갈 거잖아? 이 서류들 모두 진짜 스캔 좀 부탁해요. 진짜 깔~~~끔하게."


남편은 사무실에 가지 않았다. 느낌으로 알았다. 그래서 남편이 사무실에 다녀오지 않아도 일 마무리에 차질이 없도록 작업을 진행하면서 남편을 자극한다.

"자기야 안가?"


때마침 동계올림픽 경기가 한참이다. 남편은 올림픽이라면 어떤 일도 제치고 집중해왔던 사람처럼 tv앞에 있다. 차라리 욕을 먹고 안 가겠다는 아우라가 남편 등 뒤에서 커져간다. 자극도 못하겠다. 다음은 침묵이다.

 '욕먹을지언정 차라리...'

그러고 보니 40대 중반이 된 남편이 요즘 자주 취하는 전략이다. 남편의 눈은 여전히 꼼꼼하나 남편의 행동은 좁아졌다. 차라리 꼼꼼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게 나았을까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다. 오프라인 등교가 중단되고 수만 가지 변수가 벌어지는 2020년 2021년 그의 꼼꼼함 덕분에 나는 그 어떤 다둥이 엄마들 보더 덜 휘둘리며 본업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고마운 건 고맙다. 다만 꼼꼼한 남자와 결혼하는 게 고마운 선택이었다면 행동까지 꾸준히 꼼꼼한 남자를 만나는 게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늙어가면서도 눈과 손발이 끝까지 모두 꼼꼼한 남자라... 그 또한 지금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괴로운 일면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놈이 그놈이다 라는 생각이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느낌이랄까. 신랑도 상황도 달라진 게 없는데 마음이 편안해져 간다. 독일에 유명한 심리학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감정을 문(Door)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Inside)에만 달려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맞다. 내 마음속에 감정이라는 문을 닫은 것도 나요. 연 것도 나다.     


그랬다. 우리 부부는 포클레인의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다. 내가 포클레인에 달린 팔처럼 생긴 버킷(Bucket)이라면 남편은 백미러(Back Mirror)다. 추진은 내가, 점검은 남편이 능하다. 해야 할 이유를 찾는 일에 내가 능하다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일에 능한 사람은 남편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라서 아빠라서가 아니라 버킷과 백미러의 역할을 잘하는 부모의 캐릭터에 맞는 역할을 나누어 요구한다. 근거 없이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로 나누지 않고, 서로가 잘하는 지점으로 서로를 돕는 강점기반의 가정을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다.   


서로의 다름은 자원이다. 달라도 행복한 부부가 있고 비슷해도 불행한 부부가 있다. 아니다. 근본적으로 비슷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존재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일할 때와 쉴 때 친구를 만날 때와 이웃을 만날 때 다 다르지 않던가. 어차피 다른 게 우리라면 다르다고 싸우지 말고 다르다고 간섭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게 어렵게 들린다면,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부드럽게 제언해주는 요령을 키운다면 좋겠다. 도와주기 귀찮은 일이라면 그냥 봐 넘기는 연습을 해보아도 좋겠다.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서로의 다름을 온전한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조금 더 성장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 싸우지 않는 부부가 되진 못했지만 우리는 싸우고 풀어내는 부부가 되고 있다. 티키타카 후에 고요해진 시간을 찾아 감정을 나누는 대화가 이어진다. 남편의 40대 나의 40대가 우리들의 20대와 30대보다 나아진 지점이 그것이다.


그날의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았던 순간에 대해 그 순간에 가진 서로의 서운함과 의도에 대해 성숙하지 못했던 태도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고 마무리할 수 있는 40대의 부부다. 사과할 껀 사과하고 인정할 껀 인정하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남편이고 아내이다. 매번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건 못한다. 주로 SNS 대화로 가끔 대면으로 우리는 그렇게 풀어 나간다. 꼼꼼한 남편이 40대가 되면 어떠냐고 묻는다면 한편 언행일치력이 떨어지고, 한편 성찰과 인정력이 올라간다고 하고 싶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남편과 나의 다름이 제법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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