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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영 소장 Mar 04. 2022

내가 콩이라면 나는 어떤 콩일까

뿌리가 깊은 콩나무로 살아가길 바라며

"페북을 보니 다시 책 쓰기를 시작하셨나 봐요?"

"아고 보셨군요 대표님. 요즘은 글 쓰는 시간이 충전이네요."

코칭으로 만났던 대표님이다. 오래 못 뵈었는데 반가운 톡이 왔다.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란 그래서 좋다. 평소에 마음에 두었던 작은 시도를 해볼 수 있으니까.


오랜만이지만 편안하게 안부와 덕담을 나눈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고, 서로 편안한 시간을 묻는다. 티타임을 잡는다.

"한번 들렀던 디저트 카페가 참 우아했어요"

장소를 추천해주시는 대표님. 공유된 주소로 들어가 본다. 카페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안심식당, #디저트 카페, #정갈한 느낌, #한식 디저트 카페

나도 느낌이 좋다. 나는 어떤 헤시 태그로 나 자신을 소개할 수 있을까? 잠시 떠올려 본다.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장소 추천 감사합니다."

약속을 잡아가는 과정이 부드러운 사이가 좋은 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그날 거기서 뵈어요." 하면서 인터넷 주소 하나를 공유해 주는 대표님

"심심풀이로 해보세요."

전해받은 인터넷 주소 밑에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녹색 캐릭터가 등장한다.

"저 아이가 뭘까?" 자세히 보고 싶다. 콩처럼 생긴 아이, 귀여운 아이의 손이 분주하다. 더 자세히 보니 사람처럼 꾸며진 콩이 저글링을 하고 있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예능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MBTI.

"MBTI 테스트에 콩 캐릭터를 입혔구나" 친근하게 각색한 자기 인식을 돕는 진단이다. 이름은 <콩 비티아이 테스트>


가족 톡방에 습관처럼 올려본다. 귀여운 캐릭터 덕분일까 아이들이 관심을 보인다. 아이들과 질 높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신호가 잡힌다. 나는 놓치지 않고 낚싯줄을 던진다.     

"귀엽지?, 콩이 종류별로 나오네. 엄마는 진단 완료. 우리 가족은 모두 어떤 콩 일지 궁금."

신랑에게 개인 톡을 보낸다.

"당신부터 해보셔. 결과 가족 톡방에 올려주면 어떨까? 아이들도 같이 해보게"


가족 톡방에 톡을 보낸다.

"또 우리 이쁜이들은 또 어떤 콩일까? 저녁에 이야기 나눠요. 시간도 얼마 안 걸리네. (엄지손가락 이모티콘)"


콩 비티아이 테스트 엄마부터 시작.

"어느 날 내가 콩이라면 나는 어떤 콩일까?"


간단한 진단이라고 소개했지만 첫 질문부터 어렵다.

Q1. 어느 날 갑자기 말하고 움직이는 콩이 되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할까?


주어진 답변은 두 가지다. 두 답변 중에서 나를 잘 설명한 문장을 골라보라고 한다.

A. 콩! 콩! 콩! 여기 좀 보세요!

B. (힐끔힐끔 주변을 살피며) 들키면 어떻게 될지 몰라...


A를 본다.

콩! 콩! 콩! 여기 좀 보세요!

갑자기 콩으로 변한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까?

"여기 날 좀 보세요!"라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호들갑을 떨 필요까지 있을까. A는 아닌 듯싶다. 그럼 B를 골라야 하나?


B를 본다.

(힐끔힐끔 주변을 살피며) 들키면 어떻게 될지 몰라...

콩으로 변한 나를 지나가던 사람이 신경이나 쓸까? 보이기나 할까? 싶다. 들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벌써부터 몸을 사리고 겁을 먹는 모습도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나는 B도 아닌 듯싶다. 그럼 다시 A을 읽어봐야 할까?


그러다 갑자기 떠올려 본다.

날 좀 보라고 외치는 콩을 먼저 떠올린다. 들킬지 몰라 이리 왔다 저리 왔다 호들갑을 떠는 콩도 떠올린다. 두 콩이 비슷한 콩이라고 느껴진다.


"호들갑을 떠는 콩 말고, 평온하게 대처하는 콩이 있으면 좋겠는데..."

하긴 사람이었던 내가 이유도 맥락도 모른 채 갑자기 콩이 되었다면  평온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A라는 행동보다 B라는 행동보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먼저 갖는 콩이라면 어떨까?

B와 D사이에 C가 있다는 말을 떠올려 본다. 식상한 말인가 싶다가 다시 곱씹어 본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인생의 시작과 끝 사이에 선택이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누가 했던 말일까.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프랑스에 살던 철학자. 실존주의. 그랬구나. 관심이 가는 문장을 검색해보고 글쓰기로 다시 풀어낼 때 그 문장을 깊게 이해할 기회를 갖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말하고 싶을 때, 나의 선택을 바라볼 기회가 있다. 나는 나의 선택과 선택을 통해 이해되고 구분되는 존재일 때가 있다. 그런 선택을 앞두고 나는 이런 콩이고 싶다. 선택하기 전에 먼저 오롯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는 사람이고 싶다. 처음 만나는 상황과 문제 앞에서 선택을 해야할 때 더욱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콩나무에게 선택이라는 줄기와 결과라는 잎을 있다면, 나라는 콩나무는 선택하기 전에 결정하기 전에

'나라면 어떻게 할까?' 

'정말 나라면 어떻게 하고 싶을까?'


자주 묻고 답하는 콩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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