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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생각 Oct 29. 2024

어느 소녀 이야기

소녀의 숙모

아침에 눈을 뜬 소녀는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 이불로 몸을 감싸고, 늦장을 부린다.


한껏 엄마의 속을 상하게 하고서야 겨우 일어나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입을 삐죽 대며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선다.


소녀가 학교에 가려면 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작은 키,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지각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드디어, 학교에 도착!!!

앗! 오늘은 전체 조회가 있는 날이다.


전체 조회가 있는 날 지각이라니...

소녀는 조회가 진행되는 운동장에 들어갈 수가 없다.

벌칙으로 낙엽을 주워야 하기 때문에

운동장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교장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훈화 말씀을 들어야 한다.

크고 웅장한 나무들이 모여 있는 운동장 맞은편 공간에

가을 낙엽들이 펼쳐져 있다.

여기서 낙엽들을 주워야 한다.

지각 벌칙인 셈이다.


낙엽이 가득한 그곳에서 지루한 전체 조회를 듣고 있을때, 양산을 쓰고 예쁜 차림의 여자분이 유모차를 끌고,

조용히 운동장 한편을 거닐고 있다.


아!!! 숙모다!!!

숙모는 예쁜 긴치마를 입고,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어주며,  

아침 산책을 나온 것이다.

소녀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시선이 숙모의 움직임에 멈춘다.




숙모는 소풍날이 되면 칸쵸, 빼빼로 같은

과자를 사 와서 소풍 간식으로 챙겨주고,

소녀가 집에 놀러 가면 맛있는 앵두를

양껏 따서 함께 먹고,

자장면도 사주고, 목욕탕에 데려가 주기도 했다.


소녀는 숙모네 집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삼촌이 나무로 만든 아주 정교한 함선도

유리함 안에 전시되어 있고,

레코드판, 턴테이블, 스피커를 볼 수 있었다.


소녀의 숙모는

소녀의 어린 시절의 일부를 채워준 고마운 분이었다.


40여년이 지난 오늘 소녀는 그 고운 양산을 들고,

살포시 거닐던 숙모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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