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을 비롯해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기적이 성경에서는 종종 보인다. 백부장의 집에서 종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도 '부활'의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주목 하려는 것은 예수의 부활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밖혀 죽었을 때 성소의 휘장막이 찢어지고 무덤에서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육체의 부활이기 보다 영혼의 거듭남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어리숙함에 잠겨 죽은 것과 다름 없이 살던 우리의 삶이 한 번 더 '줄탁동시' 되어 이전과는 다른 내모습으로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한층 성숙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표적으로 성경에는 많이 그려놓고 있다. 하지만 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진의를 아는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 "나사로야 일어나라" 한 곳은 무덤이었고 "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한곳은 침상이었다. 누운자리에서 일으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생명이란 것은 어쩌면 살아갈 때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가지 않으면 목숨이 백개라도 무의미 할 것이다. 어떤 삶을 원하는지 철학적인 물음을 묻는 것도 중요하겟지만 일단 살아가야 삶의 의미가 있다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무덤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 무덤에서 일어나서 모두 거듭난 채로 살아가길 다시 한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