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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 너머 Jul 03. 2024

[아작아 편지] 침대에서 몸만 빠져나오지 않는 사람

#뒤를 보세요. 이불속에 혹시 안 나온 사람이 있나

내가 생각하는 '멋진' 사람이 무엇인지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후회하기도 하고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멋진 엄마로 사는 것인지

멋진 엄마 되기를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번외편. 우리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빙자한 작은 잔소리


[아작아 편지] 아직 작은 아이들에게


엄마의 엄마는 학교에 등교하고 난 후 엄마 방을 자주 들여다보셨을 것 같아.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아서 아침 시간마다 너희의 등굣길에 손을 흔들어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면 엄마도 너희가 잠시 떠난 빈자리가 아쉬워 그 방을 잠시고 열어 네 생각을 할 것 같거든.

엄마에게 자식이란 그런 것 같다. 

오후면 돌아올, 저녁이면 만나게 될 가족인데도 잠시의 부재에도 허전함이 있는 존재.


그런데 말이다. 

(엄마 표정이 '정색' 모드로 바뀐 것, 편지에서도 느껴지려나? ^^)

그렇게 열어본 네 방이 한껏 어질러져있다면, 그 허전함이 무엇으로 바뀔까?

......

모래성처럼 돌돌 말려 침대 끝에 떨어질락 말락 한 이불더미,

(혹시 거기 누구 계신가요...?)

이것 입을까 저것 입을까 고민의 흔적이 남은 옷가지들,

(이보세요, 이거나 그거나 똑같은 검은 추리닝이란다. 아니 이 티셔츠는 내가 다림질해 놓은 건데 이렇게 내팽개쳐놔? 다 주름졌잖아!)

도르르 말린 채 숨어있다가 제 주인이 급히 나가며 어찌 저찌 세상에 민낯을 드러내게 된 어제 신었던 양말까지. 

...... 

조금이라도 더 자다 학교 갈 준비할 시간이 모자랐던 우리 아들들에 대한 안타까움?

아니면, 그렇게 그렇게 말했는데도 어제와 같은 오늘에 대한 분노?


아니, 둘 다 아니야. 

미래의 너희에 대한 걱정.

지금 엄마는 잔소리로 그치겠지만, 나중에 함께 살게 될 새로운 가족은 다르겠지. 

엄마처럼 잔소리를 할 수도 있고, 못 본체 하며 아무 말 안 할 수도 있어. 

거의 높은 확률로,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떠난 자리의 흔적이 좋은 쪽이 아닌 형태로 남게 되면, 그 불만 불평을 입 밖으로 꺼내 놓든 안으로 삼켜버리든 결국 마음 한켠에 자리 잡게 된단다.

우리가 함께 보았던 영화 'Inside out'에서 보지 않았니?

여러 경험과 감정들이 동그란 구슬에 모여 '너'를 이루었던 것 말이야. 

나의 작은 좋은 습관이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너와 평생을 함께 할 가족들에게, 나쁜 구슬을 쌓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엄마라면 좋은 습관을 만들어보려고 한번 노력해 보겠어!


'내가 머물고 떠난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은 비단 침대만이 아닐 거야. 

공공화장실에서 자주 본 문구 아니니? (남자 화장실엔 없으려나?)

침대나 화장실과 같은 '공간'도 그렇겠지만, 누군가의 '마음'에도 이 규칙은 어쩌면 비슷하게 적용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너와 나 사이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적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살짝이든 깊게든, 흔적을 서로에게 남기지.

너희도 그 흔적이 어떨 땐 기쁘기도 하고, 어떨 땐 속상해 울기도 하잖아.

아침에 등교해서 남겨진 방에 너는 곧 돌아올 거야. 

네 흔적이 남을 누군가에게도 넌 언젠가 돌아갈 거야. 

그 거리가 좁을지 멀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눈을 마주치고 만나게 되든 아니면 누구의 누구의 누구라는 형태로 돌아 돌아 만나게 되든...

'언젠가'가 언제인지 기약하기 어려울지도 몰라. 

내일 당장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고, 멀리 이사를 가서 소식이 어느 순간 뚝 끊겨버릴 수도 있지.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면, 오늘의 헤어짐에 좀 더 공을 들여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너희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흔적을 남기기 위해 온 마음을 다 써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의 잔소리는 늘 그렇지 않니? 이렇게 했으면 좋겠지만 '너~~~무' 그럴 필요는 없다!)

가장 소중한 건 바로 너희 자신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남을 작은 흔적 따위에 연연하느라 내 마음에 남을 흔적을 들여다보는 일을 외면한다면 그건 주객이 전도된 일이지. 

(주객이 전도된 일이 뭐냐고 물어보겠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은 들어봤겠지? 진짜 중요한 일의 순서가 바뀌어 버린 걸 말해. 중요하지 않은 것 때문에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거나,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린 그런 것...) 

그깟 침대 정리 안 하고 갔더라도, 네가 안전하게 학교에 잘 도착했다면 사실 엄마는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해.

엄마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바로 너희들이니까.


엄마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침대 정리하고 학교 가기'가 사실 아니라는 것 혹시 눈치챘으려나?

(엄마의 잔소리는 늘 그렇지 않니? 엄마 잔소리는 사실 '암호'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침대 정리'가 목적이 될 수는 없어.

다른 사람에게 좋은 흔적을 남기는 것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필요도 없지.

그럴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 

잠깐의 시간을 들여 침대 이불 귀퉁이를 슬쩍 맞춰놓고 가는 습관을 '돌아올 나'를 위해 만드는 마음. 

함께 사는, 서로 연결된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좋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 

이런 마음과 노력은 결국 소중한 '나'를 멋지게 만든다는 사실. 


오늘의 잔소리 편지는 여기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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