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신다운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그건 바로 끊임없이 기록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의 변화를 주저없이 표현한다. 표현들은 차곡 차곡 쌓여 컨텐츠가 되기도 한다. 책이 되고도 한다. 강연이 되고도 한다. 미술작품이 되고도 한다. 컨텐츠를 소비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들의 표현이 놀랍고 신기하기 따름이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저들에 머리에는 무엇이 들었길래 저리도 뚝딱뚝딱 뭐든지 잘 만들어 내는거지? 왜 나는 저들처럼 생각할 수 없는걸까 라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그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
그들은 불현듯 떠오름에 대해 소중함을 알고있다. 자신의 뇌리에 박힌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주저 하지 않고 기록한다. 그렇다. 기록이다. 기록이야 말로 그들의 영감의 원천인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느낌을 잘 못 받을 뿐만 아니라 간혹 느껴지는 무언가를 그저 흘려 보내고만 있지는 않는가?
그들과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뷰’에 있다. 내가 생각 하는 ‘뷰’에 의미는 바라보는 관점을 뜻한다. 우리는 소비자 ‘뷰’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어떨까? 우리 같은 소비자 ‘뷰’를 장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머리를 쌓매고 연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처럼 될 수 없을까? 나는 확실히 말하건데 충분히 가능할꺼라 생각한다. 어떻게 라는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생산자가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 아무리 오랫동안 일을 해도 직원은 직원일뿐이다. 절대 사장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간혹 답답한 사장님들을 보면 저렇게 일도 못하고 답답한데 어떻게 사장자리에 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물론 사장이라고 해서 무조건 능력이 좋은건 아니다. 무능력한 사장도 존재하리라. 단지 내가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장이라는 직책에서만 볼 수 있는 직원은 절대 보지 못하는 ‘뷰’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컨텐츠를 소비하는 우리 입자에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컨텐츠를 제공하는 생산자의 ‘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컨텐츠를 단 한 번이라도 제공하기 위해 노력 해보라는 것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도 좋다. 인스타, 유투브, 블로그, 브런치 등 이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들어가 사람들에게 필요한 컨텐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컨텐츠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이러한 습관은 나만의 남다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해줄 뿐더러, 대중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게된다. 이러한 습관들이 쌓이게 되면 당신도 자연스레 그들처럼 순간 적으로 느껴지는 영감을 수첩에 기록하기 바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