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잘살고 있을까?
하루에 계획한 일을 모두 끝낸 뒤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와 가족과 함께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 최선을 다한 하루가 된 것일까? 잘산다는 의미를 자주 되내이게 되는 요즘, 앞으로의 시간들은 후회없도록 산다는 것이 잘산다는 것이라 정의를 내리고 싶어진다.
그럭저럭 얻은 사회적인 지위, 부족하지 않고 나름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재정상태, 미래에 큰 걱정없이 살 수 있을만큼의 작은 여유 등 우리가 그동안 내릴 수 있었던 세속적인 기준을 가져와 잘산다는 수준을 측정해내고, 혼자서 만족하는 삶이 진정한 ‘잘산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을까 싶다.
정말 나는 그런 줄로만 알고 계속해서 우선순위를, 세상이 정한 그 기준,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만들어 낸 나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달리기만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 그 기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하고, 부족해 보이는 건 왜일까?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을 정도인데도, 계속해서 명확하지도 않은 경제적 자유라는 허상을 갈구하면서 더 높은 경제적인 풍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뭔가 제대로 잘못된 것 같다.
어느 하나도 제대로 끝나지 않은채, 끝없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된 삶과 지쳐가는 자아를 발견한다. 왜 그런걸까? 분명 행복을 위해 시작한 이 여정이 점점 불행의 길로 가면 안되는게 아닐까?
그 원인은 바로 ‘불만족’에 있었다. 다시 얘기하면, 결론은 ‘만족’을 통해 충분히 치유가 되고, 좋은 기운을 얻어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당장 만족하기 위해 생활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하나씩 의도적인 만족함을 채워나가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시기, 질투가 많은 사람도 ‘만족’이 부족하고, ‘감사함’이 결여된 상태에서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에, 결국 다른 사람에 대한 동경이 시기, 질투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존경의 의미를 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나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비난으로 일관하는 태도가 드러나는 것이었다.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왔던 일들에 대한 노고를 어루만져주면서, 하나씩 만족하면서 자신의 ’있거나 없거나‘한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면 좋겠다. 어렵지만, 의도적으로 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만족하려고 노력해 보자. 조금씩 부족해도 감사해 보자. 매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수고하는 자신에게 가장 감사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