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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nny Mar 18. 2021

이 글의 끝은 행복이 마침표가 되길.

부디 노력한 나를 위하여.

 어떻게든 행복을 찾아보려 했다.


 무엇이든 배워보려 노력은 했다. 오일 파스텔도 사보고, 전자 오르간도 사보고, 커피숍에 주로 쓴다는 주광색 이케아 등을 사서 분위기를 내보기도 하고, 나그참파 향을 피워 명상 음악과 함께 누워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를 위해 보상해줄수록 행복은 잠시, 집에 돌아오면 늘 공허함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원인을 알지만 원인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러한 공허함이었다. 모든 복잡한 원인들이 나를 억누르고 짓누르고 칭칭 감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외로움을 늘 안고 살았다. 이쯤 되면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여전히 외로움이 싫으면서도 타인과 있는 것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 외로움을 자처하기도 했다. 타인과 함께하기 위해 다양한 모임에도 나갔으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를뿐더러, 내 마음이 늘 울고 있지만 소중한 시간을 내어준 그들 앞에서는 슬픈 이야기를 쉽게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


 늘 꾹꾹 눌러내고 담아내며 살아왔던 인생이었다. 인생은 모두에게 똑같이 달콤한 사탕과 쓴 사탕이 주어진다고 했는데 나는 쓴 사탕을 이미 다 먹은 것 같은데 아직도 입에서 쓴 사탕이 맴돌고 있는 기분이다. 달콤한 사탕이 있기나 할까 누적된 슬픔에 절망적인 생각만 하게 되었다. 늘 에너지가 넘치고 무엇이든 고속도로 위의 차처럼 술 술 풀리는 사람들의 인생이 부럽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부러웠고 그럴수록 세상에 대한 원망도 커졌다. 가끔씩 잘 눌러 담고 씩씩하게 살다가도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다가오면  쉽게 다시 무너졌다. 내 마음속 부실 공사가 허망하게 맥주 한잔에 취기를 빌려 드러났다.


 울음을 쏟아내곤 했다. 어쩔 때는 가슴 깊숙이 포크레인으로 지하 암반수까지 파놓은듯한 그 목메는 한 맺힌 인생의 슬픔을 토해내곤 했다. 그렇게 다시 내일은 흙을 조금씩 덮어내고는 했다.




 어릴 때 엄마는 많이 아팠다. 늘 아팠던 기억밖에 없다. 늘 아파서 병원에 가고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고. 결국 말기암 판정을 받고 다들 얼마 살지 못한다는데 딸 하나만 바라보고 두 번의 수술 끝에 간신히 살아났다. 모든 게 다 자식을 위한 책임감 같았다. 어릴 때 나는 아픈 엄마를 위해서 앞만 보고 공부를 했다. 뒤돌아 보고 즐길 수 있는 나이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나의 삶의 목표는 아픈 엄마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갔고,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교대에 들어간 순간부터 나의 사춘기는 그제야 시작되었다.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는 교대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이 곳을 다니고 있는지 ,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 무엇을 하고 싶은지 끝없는 고민과 정신적인 방황이 심해졌다. 그렇지만 다시 공부를 해서 다른 대학교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용기가 없었던 걸까, 지쳐버린 걸까.


 안간힘을 써서 공부를 하고 안정된 직업이라는 교사가 되어도 나는 지금 행복하지가 않다. 그 방황은 늘 계속 나를 조여왔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내 인생에 대한 의문이 하염없이 밀려온다. 늘 아이들 앞에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만 계속 든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어릴 때 적은 장래희망은 빛바랜 사진으로만 남은 채 살아가는 것일까.


30대 안에는 이정표를 완성하고 싶다. 나도 확신에 찬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인생도 괜찮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퇴근 후 둥굴레 차를 끓인다. 고소한 둥굴레 냄새가 싸늘한 거실을 데운다. 둥굴레 잎이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돌고 돈다. 나의 생각의 소용돌이처럼.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앞으로의 나의 글들이 나만의 한탄보다는, 한 장 한 장씩 써 내려가며 내 인생의 목적지에 달콤한 사탕이 가득 남겨져 있는 곳이길 간절히 바란다.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아픔을 아픔으로 찬찬히 위로해주고 싶다. '당신만 아픈 것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겨내 보아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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