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법정 공방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특이한 소송이었다. 보통은 공유자들끼리 분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합의가 잘 안되어서 제3자인 판사더러 분할을 해 달라고 공유물 분할 소송을 제기한다. 그런데 고객은 당사자 사이에 분할 합의는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되었는데, 상대방이 분할된 내용에 맞게 마지막 등기 정리를 협조해 주지 않아서 등기소송을 해야만 하는 경우였다.
불가피하게 고객은 분할된 토지에 남아 있는 상대방의 5분의2 지분을 고객에게 넘겨주라는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지방법원에 제기했다. 근거는 공유물 분할 합의였다. 만약 고객이 소송에서 이기면 사촌동생이 등기 이전을 거부하더라도 고객이 승소 판결문을 등기소에 제출하면 등기를 이전받을 수 있다.
1심 재판은 단독판사가 담당했다. 상대방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대신에 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장문의 답변서를 냈다. 많은 증거서류도 제출했다. 고객은 처음에는 혼자서 소송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잘못하면 안 될 것 같아 변호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결국 나에게 사건을 의뢰했다.
상대방은 분할 합의서의 존재마저도 부정했다. 거의 50년 전에 일어난 일부터 끄집어내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다. 상대방 서면이 너무 난삽하여 해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 땅과 관련된 가족사와 소유권의 변천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서면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변호사인 나도 쌍방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려운데 중간에 있는 판사는 얼마나 더 어렵겠느냐는 심정으로 체계를 잘 잡아 서면을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했다.
다행히 1심 판결은 고객이 승소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항소하여 2심에서도 패소하고 3심인 대법원까지 가서도 상대방은 끝내 패소하였다. 이 소송을 하느라 2년 6개월의 세월이 지났다. 사건이 모두 마무리 될 줄 알았다. 나와 고객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법원 재판이 종결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느닷없이 고객에게 또다시 소장이 날라 왔다. 그 사촌 동생이 이번에는 다른 사유를 들어 지난번 재판했던 땅은 물론 근처의 다른 땅까지 대상으로 삼아 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근처 땅의 경우 고객은 조부의 명의로 된 등기를 곧바로 손자인 고객 명의로 등기하는 것이 곤란하여 당시 시행중이던 임시 조치법(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에 의해 마을 이장을 포함한 보증인의 보증서를 받아 그에게 직접 등기를 해 놓았었다. 그런데 사촌동생은 그 보증서가 허위라면서 고객의 등기가 원인무효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자신이 그 땅들을 소유의 의사로 20년 이상 점유하여 왔다는 점도 주장했다. 따라서 자신이 그 땅을 시효취득했기 때문에 원인무효가 아니더라도 고객이 점유자인 자신에게 등기를 이전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사촌동생과 재판을 해야 하는 고객은 정신적으로 이미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재판을 오래 진행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잃는 사례도 많이 있었다.
“변호사님, 정말 미치겠습니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계속 재판을 거네요.”
사무실을 찾아 온 고객에게 차분히 내용을 정리하고 대응책을 설명해 주었다. 다시 1심 재판이 개시되었다. 1심 판사는 매우 신중했다. 지난번과는 다른 사유로 재판을 하는 것이라 나 역시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승소했다. 상당히 장문의 판결문에 우리 측 주장이 타당한 이유가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상대방은 여기서 분쟁의 수레바퀴를 멈출만했으나 역시 이번에도 가만있지를 않았다. 다시 2심 재판으로 넘어갔다. 재판정에 가보니 사람들로 붐볐다. 사촌동생이 마을 사람들을 여러 명 대동하고 나왔다. 상대방 변호사는 마을 사람 2명을 증인으로 내세웠다가 막판에 증인이 사촌동생과 친인척 관계라는 점이 드러나 결국 증인신문을 취소했다. 2심도 승소했다. 사촌동생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재판을 기다리는 당사자의 심정은 어떨까? 변호사로서 지금까지 고객을 대신하여 고객의 재판을 수백 건 해오고 있지만 내가 직접 재판의 당사자가 되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는 나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패소한다면 고객의 실망감은 얼마나 클까?
장기간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소송을 했는데 건진 것은 하나 없고 오히려 재산을 빼앗겨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병원에서 초조하게 의사의 진단을 기다리는 환자의 마음 보다는 덜하지만 고객이나 변호사 모두가 판사의 선고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한 해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12월 어느 날 대법원은 고객 승소를 최종 확정했다. 친족인 사촌동생과 무려 5년 동안 6차례 벌인 민사 재판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고객과 더불어 내 어께에도 매여진 5년 동안의 기나긴 짐이 스르르 풀어졌다.
강아지와 뒷산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고 있었다. 고객으로부터 문자가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내게 보낸 문자 메시지의 내용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였다.
“변호사님, 문자 보셨죠?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무시하고 싶은데 말같이 쉽지 않네요. 만약 형사 고소장이 들어오면 그를 무고죄⁴로 역고소해야 할까요?”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냥 무시하세요. 아직 수사기관에서 정식으로 문서가 온 것도 아니잖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사촌 동생이 민사로는 안 되니까 형사 건으로 선생님을 한번 엮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을 겁니다.”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은 오기를 단단히 돌에 새기고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것일까?
(법률 용어 해설)
1) 부동산 명의신탁
다른 사람의 이름(명의)을 빌려서 등기하는 것을 말한다. 명의를 빌리는 자를명의신탁자, 명의를 빌려주어 부동산 등기를 하고 있는 자를 명의수탁자라고 한다. 지금은 부동산실명법이 제정되어서 원칙적으로 명의신탁이 금지되어 있고, 이에 위반하여 명의신탁을 하면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모두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민사적으로 상황에 따라 명의신탁자가 등기를 되찾아 올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2)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
등기가 실제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특별절차에 의해 간편하게 실제에 맞게 등기를 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본래 부동산에 대한 권리가 변동되면 그에 맞추어 등기도 알맞게 변경을 해 주어야 하는데(실체와 등기의 일치), 예전에는 등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그리 높지 않아서 잘못된 등기를 그냥 내버려 두고 방치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선조로부터 상속받은 부동산도 상속 발생 시마다 그에 맞추어 당시의 상속인으로 등기 명의를 적절하게 바꾸어 주지 않아서 문제가 많았다.
이와 같이 실체와 다른 내용의 등기를 그냥 내버려 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부동산에 대한 권리관계에 더 복잡한 문제가 파생되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시로 임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서 그 동안의 권리변동 관계를 모두 생략하고 가장 최근의 현재 존재하는 권리관계를 등기부에 곧바로 기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에 의한 등기이다.
이 법에서 정하는 절차는 현재 정당한 권리자라고 주장하는 자가 해당 부동산 소재지의 마을 거주자 3인(지방자치단체장이 위촉함)로부터 자신이 정당한 권리자는 점에 대한 보증서나 확인서를 받아 등기소에 제출하면 과거의 권리변동 내역을 모두 생략하고 현재 권리자 명의로 단숨에 쉽게 등기할 수 있게 된다. 즉, 중간에 있어야 할 등기 과정들을 모두 생략하고 현재 권리자 명의로 곧장 등기하는 편리한 제도이다. 이 법은 필요할 때마다 임시법으로 제정된다.
3) 부동산의 점유취득시효
부동산의 진정한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소유자처럼 부동산을 20년 이상 평온하고 공연하게 점유하고 있으면 부동산의 소유권을 새로 취득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장기간 권리를 행사 하지 않은 소유자는 반사적으로 소유권을 상실하게 된다. 등기부취득시효는 점유자가 점유뿐만 아니라 등기도 점유자의 명의로 하고 있는 경우인데 이때는 10년만 점유하여도 시효취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