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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꿈 Jul 05. 2020

재래식 화장실과 삼익피아노

- 《잊기 좋은 이름》을 읽고

'한 번 더 읽는 것'의 힘을 믿는다. 한 번만 읽을 때 나는 자주 넘겨짚고 오해한다. 편식하게 되고, 뭉뚱그려 기억하게 되고, 무언가를 더 많이 오래 좋아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간 잃는다. 책도 그렇고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하다. 더구나 요즘은 책을 한 번 쭉 읽고 나면, 책의 첫머리가 가물가물하다. 되게 좋았던 책을 같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그 디테일은 뭉개지고 되게 좋았단 커다란 덩어리만 기억나서 허무할 때도 많다.


읽는 행위란 게 절대로 손해보는 일은 없고, 어린시절 밥처럼 먹으면 먹는대로 다~ 몸속 어딘가 저장되어 있다가 피도 되고 살도 되고 훌륭한 사람의 밑거름이 되는.. 뭐 그런 막연한 믿음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점점 배신감이 크다. 그래도 자꾸만 휘발되려는 독서의 흔적을 붙잡아두기엔, 한번 더 읽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어쨌든 두 번 읽은 책은 조금 더 선명한 실루엣으로 남으니까. 책을 재독하다 보면 처음 읽을 때 그어 놓은 밑줄들, 소심하게 접어 놓은 귀퉁이들을 통해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막 참견을 하는데 그게 거슬리지 않고 반갑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잊기 좋은 이름>을 두번째로 폈을 때, 전에 내가 골라 놓은 보물같은 문장이 나를 반겼다. 재래식 화장실 속 삼익피아노 같은 것들. 내 삶에 그런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들 때, 나는 마음 한구석에 얇은 자긍심을 포스트잇처럼 겹겹이 붙여두면서 들떴고, 들뜨면서도 긴장했다. 삼익피아노 같은 것들이 '원래', '마땅히' 속해있어야 했던 더 먼 곳의, 더 완전한, 더 아름다운 상태로부터 잠시 빌려온 것들이라고 느끼곤 했다. 그러니 이 자꾸만 들뜨는 이 마음들은 숨겨야 한다고. 다만 어서 더 멀고 완전하고 아름다운 어떤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언제나 거기에 속해 있었던 듯, 태연하고 우아한 척 해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서른이나 되어서야 생각한다. 어떤 존재가 누군가의 사치이고 허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럴듯한 영광일지 모른다고. 그 피아노는 그 재래식 화장실 옆에 있어 더 아름다웠던 거라고. 아름다운 것들이 마땅히 속해야 하는 태연한 자리는 없다고. 이런 생각은 꼭 지나고나서야 찾아오고, 이 시차 때문에 나는 가끔씩 무언가를 쓰고 싶다. 별볼일 없다고 여겨지는, 살아온 순간들을 자꾸만 펼쳐 한 번 더 읽어본다.


그러고보니 피아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늘 아빠는 본가의 피아노를 팔려고 다섯 군데에 연락을 해봤다고 했다. 그나마 '덜' 헐값에 팔려고. 한때는 중산층의 상징처럼 위풍당당하게 처음 우리집에 들어와, 49평에서 17평짜리 집으로 서서히 살림을 줄여나갈 때도 제 큰 몸이 조금도 미안하지 않다는 듯 제 자리를 차지했던 크고 무거운 한 시절 같은 피아노. 나는 다섯 살때부터 거기에서...라고 이야기를 잇다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25만원에서 40만원이라는 피아노 값을 치르는 날은 엄마 아빠 옆에 같이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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