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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호른의 길

펠릭스 클리저 리사이틀 팸플릿과 알렉산더 103 호른. 일러스트 한상엽(조선일보)

병원보에 취미로 호른을 하는 일에 대한 긴 글을 쓴 일이 있다. 이 원고는 2023년 초 조선일보에 썼던 '마부작침'에 대한 짧은 글, 일사일언을 펼쳐 확장한 것이기도 하다. 원고 작성 시기를 보니 작년 여름의 일이다. 호른을 주위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면서 연주하려면 상당한 노력 -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라야 가능한 - 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그 원리는 무척 오묘하여 늘 연구자로서, 또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세에 귀감이 된다. 병원보로 게재될 때에는 윤문 과정을 거쳐서 거치거나 날카로운 부분이 둥글려졌던 바, 윤문 전의 원고를 브런치에 저장해 두고자 한다. 


들어가며

나의 연구실 벽에는 지칠 때 마음을 다잡기 위한 여러 인쇄물이 붙어 있는데, 그중 항상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작년(2022년) 11월에 있었던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Felix Klieser)의 리사이틀 팸플릿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양팔이 없었지만, 다섯 살 때 호른 소리에 매료되어 왼발과 입술을 이용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떤 관악기보다 풍부한 음색을 내는 호른은 오케스트라 화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만, 깨끗하고 정확한 음을 내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 악기를 배우는 것은 지름길과는 거리가 멀다. 잘된다 싶다가도, 며칠만 연습을 놓으면 다시 형편없는 소리를 내게 된다. 연습 과정은 일견 지루할 것 같지만, 한 음씩 호흡에 몰입하며 소리를 만들다 보면 나를 잊는 황홀경에 빠질 수 있다. 호른 연습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몹시 피곤한 일이기 때문에, 이런 황홀경을 얻는 데에는 상당히 높은 진입 장벽이 있다. 그런 면에서, 신체적 제약을 극복하고 홀을 가득 채우는 펠릭스 클리저의 아름다운 소리는 25년간 있었던 꾸준한 몰입의 과정을 방증한다. 연습과 연주를 즐기며 매 순간에서 희열을 얻는 그는 남들이 5~10년을 보고 미래를 계획할 때, 스스로는 30년을 바라본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팸플릿의 바로 옆에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글자를 붙여 놓았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멈추지 않고 정진하면 언젠가는 성공함을 이르는 말이다.     


 내가 호른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기 시작한 지도 올해(2023년)로 20년째가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호른을 악기나 스포츠의 한가지 사례로 들어, 직업이 아닌 무언가가 어떻게 우리 삶에 통합될 수 있는지를 다루어 보려고 한다. 최근의 졸저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는 노인의학적 사고방식 중 연령 친화 의료 시스템이라는 개념에서 주창한(4M-What matters most, Mobility, Mentation, Medication)의 다면적 선순환과 악순환을 우리 모두의 일상생활에 적용해서 내재역량(intrinsic capacity,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내적 기능상태를 포괄하는 WHO의 새로운 건강 개념이다)을 강화하고 노화속도를 줄일 수 있다는 개념을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 이 개념의 가능한 적용 범위는 우리의 노화에만 머물 필요가 없다. 그 응용의 사례로 나는 이번 글에서 호른 연주를 이용할 것이지만, 이는 하나의 메타포(비유)로 받아들여도 좋은데, 왜냐하면 그것이 호른 연주가 아니라 골프, 수영, 글쓰기, 의생명과학 연구 등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인 원리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호른 연주를 통해 배운 몇 가지 원칙(사실은 일종의 개똥 철학)들을 소개하며 전문 직업인으로서 특히 필자의 직역이기도 한 이공계 연구자를 예시로 이런 원칙들이 사람의 내재역량에 어떻게 통합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려 한다.      


호른은 대체 무엇인가

금관악기의 저변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는 서양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분들도 호른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계신 경우가 많다. 오보에와 비슷한 겹리드 악기인 잉글리시 호른(English horn)과 구별하여 프렌치 호른(French horn)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호른이 연주용 악기로 사용된 것은 독일(숲에서 연주한다 하여 waldhorn이라고도 한다)이 먼저이며, 오케스트라 악기로 발전하고 개량되었던 주요 국가 역시 독일인 관계로 프렌치 호른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으며, 아무래도 그냥 ‘호른’으로 칭하는 것이 낫다.     


 호른은 모든 오케스트라 악기 중에 소리를 제대로 내기가 가장 어려운 악기라고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호른은 키가 없었다. 3미터가 넘는 파이프와 옛 축음기에서 소리를 증폭하는 녀석처럼 생긴 벨 플레어(bell flare), 그리고 입술과 닿는 마우스피스가 전부였는데, 호른이 아주 긴 파이프를 가지게 된 것은 파이프의 자연배음을 촘촘하게 만들어서 호흡과 입술의 장력을 이용해서 12음계 내에서 최대한 많은 음들을 커버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손을 뺀 상태로 호흡만으로 도-솔-도-미-솔-시b-도-레-미-파#-솔-라-시b-도 이런 식으로 중간 영역에서는 대부분의 음을 낼 수가 있고(자연배음이라고 한다), 손을 벨 속에 넣으면 위치에 따라서 두세 반음 정도를 내리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웬만한 음을 다 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손을 넣어서 음정을 바꾸면 음색도 얄팍해지기 때문에, 과거에는 크룩(crook)이라는 추가 관을 사용해서 F, E, Eb, D, G, A, B 와 같은 여러 스케일의 배음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옛 호른 연주자들은 연주곡의 기본 조와 조바귐에 따라서 크룩을 준비하고 음정은 호흡과 입술의 긴장, 오른손의 위치를 조합해서 최선을 다해 만들어내는 식으로 연주를 해야 했다. 옛날의 호른은 준비와 실제 연주 모두 복잡하고 까다로운 묘기처럼 이뤄져야 하는 악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긴 관 덕분에 아주 풍성한 배음의 조합을 만들 수 있고, 부드럽게 연주하면 솜사탕처럼 포근한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음에 힘을 실으면 작곡가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가 언급한 것 처럼, 오케스트라 레퍼토리와 현대 영화음악 레퍼토리에서 가장 영웅적인 부분을 그려낼 수도 있기에, 많은 작곡가들과 지휘자들은 호른을 사랑했고, 늘 멋진 부분의 연주를 호른에게 맡겼다.     


 산업혁명 이후, 야금술과 정밀한 기계가공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연주의 복잡도도 높아졌다. 현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더블 호른은 F호른과 Bb호른을 합쳐 놓은 것인데, F호른과 Bb호른에 각기 키를 세개씩 달아서(1번 키는 2반음, 2번 키는 1반음, 3번 키는 3반음을 낮출 수 있다) 완전한 12음계 크로마틱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악음향학의 내용을 더 복잡하게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현대 오케스트라의 호른 주자들은 자연 배음을 이용한다는 파이프의 특성과 키가 존재하는 더블 호른의 특성을 모은 결과로 결국에는 키와 호흡, 입술의 긴장과 오른손의 위치를 동시에 조정해서 연주해야 하는 과업을 수행하여야 하게 되었다. 이는 어머어마한 집중력을 요구하는데, 솔로 파트를 주로 담당하는 오케스트라의 전문 수석 호른 연주자가 경험하는 스트레스 정도는 영화 스턴트맨, 자동차 경주의 레이서, 곡예 비행사 등에 못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음반에서는 편집이 되어 나오지만, 실황 연주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단체인 경우에도 호른에서는 유독 미스 톤(삑사리)이 많이 나는 것을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이유다.     


왜 호른인가

음악 애호가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호른> 에서 ‘그는 어느 날 오후, 깊은 숲속에서 호른과 우연히 맞닥뜨렸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상상해 본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따위를 하다가 아주 의기투합해서, 그래서 그는 직업적인 호른 연주자가 된 것이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오케스트라 연주 듣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특히 오케스트라 총보(스코어)를 읽으며 머리 식히는 것을 좋아했는데,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앞서 이야기한 존 윌리엄스 뿐 아니라 정말 많은 작곡가들이 호른을 오케스트라 화성의 뼈대로 사용하는 것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베토벤, 브람스, 드보르작, 바그너, 브루크너,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포함하여,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를 공부하면 할수록 이 악기와 사랑에 빠졌다.      


 대학에 들어가면 반드시 호른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강남역 앞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였다(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숲속은 아니었다). 당시 자주 듣던, 엘리야후 인발(Eliahu Inbal)이 지휘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드보르작 교향곡 7번 2악장을 몸과 마음이 무척 지친 상태로 듣고 있던 때였다. 그 날은 유독 호른 솔로 부분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아래 악보).    

드보르작 교향곡 7번 2악장의 호른 수석 솔로 부분


 그리고 대학엘 갔다. 알렉산더 103 악기를 구했고, 강남심포니에 수석으로 계시는 소진선 선생님께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호른은 내 삶 자체가 되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고, ‘취미자’ 로서는 과분한 경험들을 했다. 여러 연주단체와 협연을 할 기회를 가지기도 했고, 여기저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호른은 악기 자체를 넘어, 내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선생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 생각들은 흥미롭게도 내재역량 강화를 위해 살펴야 하는 4M들을 두루 포괄하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노인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더 사(Gebr. Alexander)의 모델 103. 많은 악단에서 마치 ‘표준 화기’처럼 사용되는 악기다.


첫 번째 원칙꾸준히 연습할 것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는 연습을 하루 쉬면 내가 알고, 이틀 쉬면 비평가가 알고, 사흘 쉬면 청중이 안다고 했다. 호른 연주자들은 이보다 더 급격한 경험들을 한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근육들의 협응을 이용해서 연주를 하므로, 사흘을 연달아 쉬면 그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에는 때로는 1주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벼락치기에 익숙하다. 고도성장기 이후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생각, 더 빨리, 기왕이면 더 쉽게, 그리고 그 결과를 남에게 내세우고 보여주기만 하면 끝이라는 바로 이 생각이다. 이런 일종의 ‘도둑놈 심보’ 탓에, 취미로 악기를 하는 많은 이들이 연주회가 다가오면 연주 곡을 위주로 급하게 연습하는 모습들을 본다. 노력은 조금만 하고, 연주회에서 남들에게 쉽게 묻어가면 이득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연주자 스스로의 역량과 태도에도 해가 되는 일이다.   

   

 악기 연주는 점진적으로 역량이 축적되는 대표적인 예다. 매일 펀디멘털을 강화하기 위한 연습을 챙기면 일 0.01%의 복리 이자가 발생하는 정기 예금과 비슷하다, 펀디멘털에 집중하는 꾸준한 노력은 재미있는 선순환을 가져오는데, 이는 뇌 가소성(plasticity)과도 관련이 있다. 기본 연습의 결과로 근육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고, 아주 작은 음정과 음색의 차이를 들을 수 있는 귀가 갖춰지게 된다. 이렇게 연습에 노력을 들이면, 연주자의 두뇌가 점차 고도화되며, 같은 연습을 통해서도 더 많은 정보량을 처리할 수 있게 되며, 머리는 더 많은 좋은 자극을 받고, 신경 사이에는 새로운 연결이 생겨난다. 이러한 원리는 근육을 만드는 일과 똑같다. 계단 오르기는 처음에는 힘이 많이 든다. 하지만 근력이 좋아지면 점점 더 가뿐하게 계단을 오를 수 있고, 운동량은 더 많아지며, 근력은 더 좋아지는 선순환이 생긴다.     


 반대로, 연습을 수 일 이상 건너뛰면 그 손실은 수십 퍼센트에 달할 수도 있다는 자세로 꾸준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 점진적인 수련 과정을 하나의 도(道)나 무예, 규율로 생각하면 매일의 연습 시간은 일종의 명상 시간이 되어, 바쁜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매일 빠짐없이 6개월, 1년이 지나 뒤를 돌아보면 연주 기량에 상당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렇게 5년, 10년이 지나면 음악이 삶에 점차 통합된다. 펀디멘털이 충분한 연주자는 대부분의 오케스트라 레퍼토리에서 소위 ‘곡 연습’ 자체는 거의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연주회를 중심으로 벼락치기 연습만 하는 이들은 악기를 10년 해도 1년씩 똑같은 모습으로 열 번 흘려 보낸 모습으로 남기도 한다. 펀디멘털 개선이 없이 매번 벼락치기 ‘곡 연습’만 반복하며 발전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벼락치기 연습만 하는 연주자들은 사실 다수의 청중을 상대로 연주를 감행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항공기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안전하게 비행을 수행할 능력인 감항능력(airworthiness)이 없다고 판단하는데, 마찬가지로, 펀디멘털이 갖춰지지 않은 연주자는 연주자격(concertworthiness)이 없는 것과 같다. 이런 형태의 연습/연주 태도는 청중과 주변 연주자들에게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삶의 규율과 내재 역량을 개선할 기회도 잃게 만든다.      


 이렇게 오랜 기간 유지된 꾸준함의 위력은 비단 악기에서 뿐만 아니라 몸 건강과 인지 건강, 직업인으로서의 역량 등 현대인의 삶에서 필요한 다양한 기량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면에서, 펀디멘털에 집중하는 꾸준한 노력은 평생 공부하고 평생 일하며, 또 동시에 늘 은퇴한 것과 비슷한 앞으로의 100세 시대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습관이 될 수 있다. 호른을 만났기에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던 삶의 원리다.          

두 번째 원칙느는 연습과 쓰는 연습이 있음을 알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과를 중시하고,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을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한국 연주자들이 특히 콩쿨에는 강하지만 연주자로서의 폭넓은 내재적 펀디멘털은 다소 취약한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더러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문제는 음악에만 머물지 않는다. 엘리트 스포츠 영역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이 관찰되며, 취미로 음악이나 스포츠를 즐기거나 건강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펀디멘털에 대한 노력을 아끼는 것인데, 이 현상을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에서는 이동성(mobility)에 대한 내재역량의 올바른 구성과 취약한 구성의 사례로 아래 그림에서처럼 비교하였던 바 있다.    

이동성 내재역량 강화를 위한 올바른 구성의 예(A)와 부실한 가분수형 구성의 예(B)


  악기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고품질의 연습노동을 통한 호흡, 소리 등연주기량의 확보가 최우선이며, 이후 테크니컬 스킬의 개발이 따라야 하고, 마지막으로 비로소 표현, 해석 등 음악가적인 면(virtuosity)을 확보하는 단단한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설령 매일 꾸준히 연습을 하더라도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자세로, 선율이 있는 곡이나 연주가 쉽게 잘 되니까 흥미로운 부분 위주로 연습을 하는 이들이 많다. 러닝이 잘 되고 재미있으면 러닝을 더 하고, 축구가 잘 되고 재미있으면 축구를 더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꾸준한 연습으로 펀디멘털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취약한 부분, 연습하기 불편한 영역의 비중을 늘여야 한다. 기술자(technician)로서의 면과 예술가(artist)로서의 면 모두에 있어서 더 나은 연주를 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살펴보고,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대로, 잘 되고 재미있는 것을 연습하는 것은 실제로는 펀디멘털을 사용해서 놀고 있는 자각이 필요하다. 잘 되는 것만 하다보면 사상누각형 연주자가 된다.

 

 호른을 취미로 하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연습은 무엇일까? 우선 톤 연습을 들 수 있다. 한 음을 상당히 오랜 시간 (예를 들어서 4초나 8초씩) 가장 정확한 음정과 풍성한 음색으로 집중해서 연주하는 것이다. 반음 간격으로 최저음부터 최고음까지를 오가며, 피아니시모(가장 여리게)부터 포르테시모(가장 크게)를 포함한 음량과 아주 부드러운 호흡 어택, 레가토, 마르카토, 스타카토를 비롯한 다양한 ‘발음’의 조합을 만들어 연습을 하면, 30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두 번째로는 기본적인 테크니컬 스터디를 들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심지어 호른은 한가지 키를 잡으면 수십개의 음이 난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연주하면 미스톤을 잔뜩 만들게 되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한 음에 진입하는 연습(entrance),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전이를 하는 연습(lip-slur), 이외에도 아르페지오(arpeggio), 립 트릴(lip-trill) 등 수많은 테크니컬 스터디가 필요하게 된다. 립 트릴은 아르페지오의 극단적인 버젼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한 키에서 도와 레를 다 연주할 수 있는 고음 영역에서는 키를 사용하지 않고 호흡과 입술의 긴장만으로 트릴을 내는 것이다. 문제는 호른을 취미로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몸에 좋지만 재미없는 연습은 피하려 든다는 것이다. 일단 일주일에 한 시간도 연습을 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앞선 문제가 있지만, 간혹 연습을 한다 할지라도 펀디멘털 연습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는? 듣기 참혹한 음색과 무지막지한 빈도의 미스 톤이다.      

 악기를 즐겁게, 오랬동안 할 수 있기 위해서라면 연습 루틴을 잘 짜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하루에 연습을 1시간 하기로 계획하면 첫 20분은 웜업, 나머지 20분은 테크니컬 스터디, 마지막 20분은 연습곡으로 채우면 된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것 처럼, 펀디멘털 개선에 도움이 되는 루틴은 그다지 재미가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연습을 피하는, 취약한 습관을 들이면서도, 오케스트라에 나가서는 한 판 신나게 불어제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기본기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합주에 나가면 입술과 주변 근육에 불필요한 긴장이 생기거나 때로는 부상을 입기도 한다.  결국 악기 실력은 더 곤두박질치고야 마는 것이다. 허접한 기초체력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등산을 감행하다가 발목에 무리가 가게 되고 상당기간 목발 신세를 지며 기초체력은 더욱 추락하는 것과 비슷하다.특히 호른은 기본기 연습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다 보니, 이런 악순환을 반복해서 겪으며 연습과 연주에 흥미를 잃고 몇 년 만에 악기를 접게 되는 이들이 많다. 소리가 좋고, 악기도 멋지게 생겼으니 피상적인 관심으로 취미 호른 생활을 시작했다가, 진득하게 몰입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전문성이 높고 잘 하는 분야를 더 깊숙히 파고들며 연구의 전선(research frontline)을 확장하는 것이 주요한 일이지만,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결국 가장 취약한 요소들이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여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효과적인 시스템 중에, 얼핏 비효율적이라고 치부되어서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것이 있다. 종설이나 단행본 등 누군가가 소화시켜 놓은 지식뿐 아니라, 1차 자료에 가까운, 소화되지 않은 자료까지 찾아들어가서 해당 분야의 연구자나 전문가들이 지난 수십년간 어떤 발견들을 통해 어떤 생각을 전개했는지를 조망해 보고, 조감도를 머릿 속 마인드맵 형태로 만드는 훈련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자신의 언어로 글의 형태로 정리해보는 것은 연구자의 식견을 가장 효과적으로 넓힐 수 있는 방법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과업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쓰기를 외주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텍스트를 자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출현에 수많은 이들이 열광하지 않던가. 


 학습을 함에 있어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식의 요약본들의 엣센스만 만든 것인 ‘교과서’를 다시한번 키워드만 모은 것(의대에서는 족보집이라 부르던 것들)을 위주로 시험을 대비하여 외우는 것이 현실인데, 이런 방법으로는 다만 시험을 넘긴다는 한 가지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이전의 사람들이 어떤 로직에 따라서 연구의 전선을 넓혀왔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반대로, 일견 번거롭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사실관계와 전문가들의 사고 과정을 따라가보는 연습을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생각의 틀을 만들수 있게 되며, 학문적 지식이 형성되어간 과정 아래에 깔려 있는 사람의 생각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투자자인 찰리 멍거(Charlie Munger)가, 아주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을 읽기를 통해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우리들의 머릿속에 생각의 격자틀(latticework)을 만드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고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하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의 시각이다. 이처럼, 당장은 결과로 눈에 보이지 않고 멀리 돌아가는 것 같은, 일견 비효율적인 노력이 결국에는 튼튼한 펀디멘털로 이어진다는 생각이다.


세 번째 원칙건강하고 마음챙김된 상태로 몰입된 고품질의 연습을 할 것

느리게 나이드는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무언가에 집중을 하는데에도 아주 중요한 것들이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충분히 운동하고, 술 담배는 삼가는 일. 결국 몸 건강과 마음 건강을 만드는 모든 요소들이 조화로운 상태가 될 때에 비로소 연습 효과는 최고조에 달하고, 하루 단 10분의 연습을 하더라도 몰입된 연습 경험이 쌓여갈 수 있다. 나는 악기를 하는 데 있어서 몰입에 영향을 주는 이러한 요인들이 가지는 위력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였던 적이 있다.      


 호른으로 동아음악콩쿨에 출전하였던 적이 있다. 과제곡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악기 연습 시간을 가능한 한 늘이려던 때가 있었다. 본업에 영향을 줄 수는 없고, 업무 시간 외의 시간을 확보하려다 보니 자는 시간을 줄이고, 운동 시간도 빼내고, 끼니도 걸러 가며 연습 시간을 마련한, 지금 돌아보면 무척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매일 연습을 했지만 연주의 질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퇴근 후에 달리듯 연습실에 갔고, 허겁지겁 연습을 했다. 그렇게 연습을 하면 할수록 소리는 더욱 거칠어졌고 실수는 늘었다. 마음에는 긴장과 불안이 깃들었다. 그럴수록 더욱 더 오기가 생겨서 매일매일의 연습량을 더욱 늘이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수 개월간 이러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중, 노르웨이 음악원의 호른 연주자 율리우스 프라네비키우스(Julius Pranevičius)교수의 글을 읽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좋은 호른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저 악기를 연습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스트레칭과 명상, 요가, 알렉산더 테크닉을 연습하고, 수영과 조깅 등의 운동을 챙기고, 기본적으로 항상 잘 먹고 잘 자야 함을 이야기했다. 그는 건강의 여러 도메인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만드는 선순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조언을 따라 내 삶의 불균형을 점검했고, 오히려 연습시간은 줄였음에도 이후 몇 달에 걸쳐 연주 기량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런 경험 이후, 이제는 짧은 시간을 내더라도 반드시 마음챙김된 상태,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들고 산만한 자극을 제거한 후에 연습을 시작하는 습관이 생겼다.

     

 우리나라에는 무엇이든 더 잘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그 일에 대해서만 뼈빠지게 노력해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 호른으로 입시를 보려 한다면, 예컨대 매를 두드려 맞아가면서 하루종일 호른만 연습해야 하는 식이다. 모든 계량적 지표는 매년 우상향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이공계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더 좋은 결과를 더 많은 볼륨으로 쏟아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런데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행정 부담과 계량 지표 충족에 시달리는 연구자가 ‘연구를 위한 연구’를 넘어선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고 수십 년을 내다보며 그 아이디어에 몰입할 수 있을까? 몰입에 빠질 수 있기는커녕, 사방에서 전화, 메일, 메신저를 통해 마음놓침 상태로 허겁지겁 잡무를 해치울 수밖에 없는 것이 연구자들의 현실이다. 몸과 마음이 고장난 상태로 한 가지 기예에만 모든 노력을 쏟으면, 설령 천재라도 ‘조로’(早老), 가속노화에 빠질 수 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잠을 줄여가며 넘치는 업무를 처리해내기 바쁘다. 잠이 줄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 많은 조직이 구성원들의 스로틀(throttle)을 밀어올리기 바쁘지만, 정작 그 조직이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하고 사람들은 번아웃과 가속노화에 빠진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에서처럼,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된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자기효용감이나 성취감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과업의 경험이 보상과 내적 동기 부여가 아닌 스트레스호르몬 축적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갉아먹고, 종국에는 업무 효율마저 떨어뜨리니, 조직의 안녕도 해친다. 비행기도 안전을 위해서 최대 출력으로는 이륙하지 않는다. 최상의 결과와 지속가능한 과정 모두를 위해서는 오히려 스로틀은 약간 낮추고, 그 여유를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살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 번째 원칙메타인지를 키운다

악기 수련은 곧 연주자로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지난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차치하고 일단 현재의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런데, 스스로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의미있게 깨닫기 위해서는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오케스트라에서 음정이 나머지 호른 섹션 전체와 맞지 않는 호른 연주자 한명은 호른 섹션 전체의 화성을 와해시킨다. 호른 섹션의 화성은 마치 지용성인 현악기와 수용성인 관악기를 섞을 수 있는 유화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하다. 결국 음정이 좋지 않은 연주자 한 사람은 오케스트라 전체의 음정을 삐걱거리는 파급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음정이 좋지 않은 연주자는 자신의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메타인지가 되지 않는 것이다. 연주자격(concertworthiness)이 없음에도 특히 취미 연주단체에서는 이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경우가 많지 않아 청중과 동료 연주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그 메커니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뭔가 뜨는 음정으로 삐걱거리는 연주를 경험해야 한다. 때로는 고식적인 해결 방안으로 합주 시간이나 횟수를 늘이거나, 출석을 빡세게 체크하는 단체들도 있다. 하지만 펀디멘털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로 발생하는 불협(cacophony)은 합주량을 늘인다고 나아질 리가 없다. 야경등 효과(streetlight effect)라는 것이 있다. 동양의 '각주구검'과 비슷한 것이다. 지갑을 저쪽 어두운 데서 잃어버린 사람이, 일단 불이 밝은 이쪽의 야경등 밑을 뒤지는 오류를 말한다. 불협을 합주로 해결하려 드는 것은, 이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취미 음악인들은 특히 처음에는 렛슨을 받다가도 연주할 곡의 음형을 어떻게든 플레이해낼 수 있는 정도만 되면 교만에 빠져 배움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배움이 멈추고 문제의식이 멈추면 역량은 좋지 않은 상태에서 고착되고 만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고, 더 나은 연주자들과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공부와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번거롭더라도 스스로의 연습을 꾸준히 녹음해 들으며 문제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귀가 열리면 열릴수록 스스로의 문제점이 세밀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역량 개선의 선순환을 만들게 된다.      


 이는 연구자나 의료인을 비롯한 전문 직업인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적용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초심을 잃고 ‘조로’에 빠진 연구자들은 점차 ‘연구를 위한 연구’를 좇고, 계량 지표 충족을 중시하며 깊은 과학적 사유와 문제 해결의 본질적 과정을 소외시키는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연구 지형에 오히려 차츰 가담하게 되어가는 경향이 생기는 것 같다. 점차, 전문가로서의 본질적 가치는 상실하고 현실의 문제를 조감하는 능력은 거세당한 한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연구의 성과를 논문 지표나 특허의 개수로 환원시킨 후, 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에 연구자를 끼워 맞추는 우리나라의 형태는, 본질을 보지 못하는 또 하나의 야경등 효과라 할 수 있다.  반대로, 연구자들과 정책가들이 연구 과정 자체, 곧 질문하고 공부하기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면 할수록 연구 역량은 더욱 높아지고, 또한 안목은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호른을 공부하며 개인적으로 생각해 두었던 네 가지 원칙들은 삶의 여러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선순환을 만들 수 있는 특성이 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에서 마음챙김된 상태, 몰입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 수 있고, 메타인지를 생각할 머릿속의 여유를 얻을 수 있다. 연습의 이유와 목표를 실재감 있게 깨달았을 때 느는 연습을 꾸준히 할 수 있다. 꾸준한 연습이 만든 예민한 귀는 연습의 이유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준다. 이처럼 장기적인 역량 축적의 선순환에 따르는 자기 효능감과 몰입감은 직업과 취미의 여부를 넘어 어떤 기예든 풍요로이 즐길 수 있는 낙도(樂道)의 삶을 선사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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