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로봇의 일자리 침공에 대한 르포르타주
5. 예술가와 운동선수는 사라질까?
얼마 전부터 지역 청소년센터에서 학습 멘토링을 받고 있다.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부족한 과목을 개인과외나 학원 수강의 방식으로 보충해주는 건데 난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예체능을 배우기로 했다. 어떻게 된 거냐면,
“아라는 친구들하고 잘 놀아?”
“요즘은 못 놀아요. 다들 학원 다니느라 바빠서요. 그냥 집에서 혼자 책 봐요.”
“그래? 어쩌니. 네 나이 때는 뛰어놀고 다양한 걸 해봐야 하는데.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은 꾸준히 해야 좋아. ”
“운동도 배우고 악기 연주도 배우고 싶긴 한데 모두 돈 많이 들잖아요. 학원 다닐 돈은 없어요.”
그래서 매일 원하는 시간에 와서 체육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일주일에 세 번 우쿨렐레를 배우게 되었다.
탁구가 쉬울 것 같아서 탁구장으로 갔다. 처음 왔다고 하니까 젊은 코치 선생님이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라켓 잡는 법을 알려주고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난 빨리 경기를 하고 싶은데 텅빈 탁구대 앞에 세웠다. 반대편엔 작은 기계가 있었고 그 주변으로 그물이 둘러 싸여 있었다.
“이 기계에서 공이 날아오면 받아서 반대쪽으로 넘기렴.”
버튼을 누르자 공이 날아왔다. 공이 내 쪽 테이블의 치기 좋은 위치로 정확하게 날아왔다. 선생님이 몇 번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치면 되는 거야. 나중에 잘 하게 되면 공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도 있고, 날아오는 공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어. 재밌겠지?”
“그런데 왜 저는 혼자 기계랑 치고 쟤들은 코치 선생님이랑 해요?”
“처음에는 반복적인 훈련으로 자세를 몸에 익히는 게 중요한데 그건 기계가 더 잘 도와줄 수 있어. 또 내가 모든 학생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치면 하루에 열 명도 못 도와줄 걸? 내 몸은 하나잖아.”
맞는 말이긴 하다. 불현듯 숙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알려준대로 기계처럼 라켓을 휘두르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질문 있는데 해도 돼요?”
“뭔데?”
“탁구로봇도 있어요?”
“로봇? 있을까? 저 훈련용 기계는 로봇이라고 하기엔 너무 단순하고. 난 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
“만약 로봇이랑 붙으면 선생님이 이길 수 있어요?”
코치 선생님은 웃었다.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나보다.
“인공지능이 바둑에서 사람을 이긴 걸 보면 뛰어난 건 맞는데 실제 몸으로 하는 운동에서 인간을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보는데? 스포츠는 단지 머릿속 계산만 빠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상대에 맞춰 빠르게 반응하면서 움직여야 하거든. 적어도 몇 십년은 걸릴 것 같다.”
공은 줄곧 같은 곳에 떨어지고 있는데 내 자세가 엉망이라 그런지 제대로 맞는 공이 없다. 이걸 며칠이나 더 해야 되나. 땀이 나기 시작했다. 찝찝하다. 그럼 다른 질문.
“그럼 저런 기계의 성능이 좀 더 좋아지고, 일방적으로 공을 쏴주는 게 아니라 라켓을 움직여서 사람처럼 경기를 할 수 있게 되면 선생님의 일자리는 어떻게 될까요?”
돌직구. 지난번 창체시간처럼 조금 미안한 감이 들긴 했지만 요즘엔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어야 대답이 잘 나오는 것 같다. 난 길게 말 돌리는 게 정말 싫다. 코치 선생님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나도 예전에 선수 생활을 하긴 했지만 여기서 어린 학생들 가르치는 건 굳이 선수 출신이 아니라도 가능하거든. 좀 더 실력이 좋은 학생이 있으면 대전 상대가 돼주겠지만 대부분은 굳이 내가 아니라도 될 것 같기는 해. 로봇이라…. 뭐 초보자를 가르치는 로봇이 등장하면 영향은 있겠지만 일자리 자체가 없어질 것 같진 않은데? 이세돌씨가 알파고에게 져도 기원이나 바둑 두는 사람들이 사라지진 않았잖아.”
뚜렷한 결론은 내리지 못하겠지만 스포츠 영역은 다른 분야보다 늦게 대체되거나 대체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서 땀을 씻고 음악실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상민이 나타났다. 얘도 여기서 공부하나?
“대부분의 스포츠는 도박과 관계가 있어서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람?
“전세계적으로 많은 대학과 연구소에서 축구로봇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고 매년 월드컵도 열리고 있어. 언젠간 사람하고 대결할 수 있는 축구로봇이 나올 지도 모르지. 하지만 인간 대 로봇의 승부면 모를까 로봇 대 로봇의 경기를 사람들이 지켜볼까? 프로그래밍으로 승부를 조작할 수 있는 경기 결과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하긴. 로봇도 컴퓨터로 움직이는 기계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경기 결과를 조작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도박과는 무슨 관계지?
“흔히 스포츠는 정정당당한 대결, 도전정신 같은 멋있는 말로 포장되곤 하는데 선수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스포츠 산업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규모를 가지고 있고 불법 스포츠 도박도 그에 못지 않은 시장을 갖고 있어. 승부 결과에 따라 엄청난 돈이 옮겨 다니는 거지.”
상민은 복도에서 한참동안 스포츠와 도박의 상관관계에 대해 떠들었다. 인간이 직접 땀흘리며 벌이는 경기는 일종의 우연성이 적용되기 때문에 내기를 걸 여지가 있는데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진다면 그곳에 돈을 걸 리가 있겠느냐, 로봇과 인공지능의 능력만 보자면 인간을 능가하는 경기력을 갖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곳에 돈이 모이느냐는 다른 문제다, 결국 돈이 모여야 산업이 발전하는데 스포츠 로봇 영역에는 돈이 모이지 않을 거다 같은 나로선 알 수 없는 얘기들.
“우리 숙제는 미래의 일자리에 대한 거잖아. 이야기의 폭을 좀 좁혀줄래?”
“맞다! 오케이. 최근 일본에서는 배구선수들의 블로킹을 돕는 로봇이 등장했대. 훈련하는 선수들의 스파이크 위치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네트 앞에서 공을 가로막는 거지. 그 영역은 계속 늘어날 거야. 다시 말해 훈련용 상대로는 로봇도 충분하단 거지. 오히려 인간의 능력치를 넘어서는 로봇이 훈련 상대가 된다면 인간 선수들은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계기로 삼을 수 있어서 더 반길 것도 같아. 아마 텔레비전에 안나오는 경기장 밖에서는 로봇들이 쫙 깔리고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들지도 몰라.”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선수까지는 몰라도 나처럼 초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코치부터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프로선수들에게 도움을 주는 코치, 또 일관성 없는 판정 때문에 욕 먹는 심판까지 스포츠 영역에서도 인간의 일자리는 위협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얘는 왜 집에 안 가고 음악실까지 따라오는 거지?
“지난번에 나눠줬던 악보 보고 다들 연습해왔나요?”
“네!”
자신 없지만 천천히 우쿨렐레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노래로 부르면 간단한데 악기로 연주하려니 꽤 어렵다. 아직 초보니까 괜찮아. 언젠간 나아지겠지. 의외로 상민은 연주를 잘했다. 얄밉게 말만 많은 줄 알았더니 이런 섬세한 면이 있었네? 우쿨렐레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인공지능이 음악가들의 일자리를 위협할까요?
“오우, 그럴 리가!”
음악 선생님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일은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창의성이 있기 때문이죠.”
선생님은 창의성과 독창성은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감성과 예술혼을 덧입힌 작품들은 절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낼 수 없다고. 흉내를 낼 수 있을진 몰라도 인간은 그 둘을 구분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때, 음악실을 나갔던 상민이 돌아왔다.
“선생님, 이 노래가 누구 노래인 줄 아세요?”
상민이 내민 스마트폰에서는 익숙한 느낌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흥얼거리기 좋은 곡이었지만 요즘 노래는 아닌 것 같았다.
“비틀즈? 근데 이 노래는 처음 듣네. 아마 다른 가수가 비틀즈 흉내낸 것 같은데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상민. 올 것이 왔구나.
“이거 인공지능이 만든 노래에요. 비틀즈 노래들을 분석해서 작곡 스타일을 학습하고는 스스로 만든 거죠.”
“정말?”
선생님의 표정만 봐도 놀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민은 예상했다는 듯 준비된 대사들을 읊었다.
“이미 많은 인공지능 작곡가들이 대중음악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아직 완성도가 그리 높진 않지만 단순히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기엔 충분한 수준의 음악들이 인터넷엔 매일 공개되고 있어요. 작곡가가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구분이 어려워지는 날도 금방 오지 않을까요?”
또 한 명의 선생님을 충격에 빠뜨리고 집에 가는 길에도 상민의 강의는 계속 되었다.
“어차피 많은 대중음악들이 유사하다는 평을 듣잖아. 트렌드니 장르적 유사성이니 말하며 표절, 복붙, 자기복제를 일삼는 작곡가들에게 창의성이나 독창성 같은 말이 어울릴까? 아마 공장식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곡가들은 인공지능 작곡가에게 밀려 사라질 거야. 누구 스타일의 몇 분 몇 초짜리 곡을 제작하라고 시키면 뚝딱 곡 하나가 나올 텐데. 작곡뿐이겠어? 유명한 연주자들의 스타일을 모방해서 연주할 줄 아는 로봇이 등장하면 연주자들도 밀려날 걸? 이미 미술쪽에서는 유명 화가들의 화풍을 익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등장한 지 오래야. 그러니 예술 분야라고 해서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한 일이지.”
“근데 네가 말한 사례들은 모두 모방한 작품들뿐이잖아. 누군가의 작품을 흉내내는 게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독교의 성경에 이런 말이 있어.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사람들이 많이 하는 착각 가운데 하나가 어떤 예술가나 천재가 내놓는 작품이나 아이디어가 온전히 그 사람만의 독창적인 것이라는 거야. 이전의 작품들과 사유에 대한 고민이나 학습 없이 어느날 갑자기 걸작이 튀어나올 수 있을까? 피카소의 그림이든 모짜르트의 음악이든 직간접적으로 이전 작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하잖아. 인간도 모방을 기반으로 창작하면서 왜 기계들이 모방하는 건 폄하하는 거지? 난 그게 이해가 안돼. 그렇게 저항하다가 나중에 더 큰 충격을 받느니 지금부터 미리미리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상민의 말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얌전히 받아들이기엔 거부감이 느껴진다. 정말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나 영역은 없는 걸까? 기술이 발전하면 인간은 자신의 일자리를 기계들에게 넘겨줘야 하는 걸까? 그나저나 상민이 얘는 왜 자꾸 내 눈에 띄는 거지?
6. 경비는 사라질까?
주말이라 여유 시간이 생겼다고 주연이가 놀러오라고 했다. 함께 숙제도 하고 달달한 것도 먹자고 했다. 주연이 사는 집으로 갔는데 입구부터 당황스러웠다. 다른 아파트들은 보통 건물 입구에만 문이 잠겨 있어서 초인종을 누르면 쉽게 들어갈 수 있는데 이 아파트는 입구 게스트하우스를 들어갈 때부터 일단 멈춰 어디로 가는지 말해야 한다. 주연이 인터폰으로 방문자를 확인해주자 젊은 경비 아저씨가 날 거주자 전용 출입구로 안내했다. 아파트가 아니라 단체 견학을 갔던 정부청사 같은 느낌이었다. 사방엔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전철역 같은 곳에서나 보던 길다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동 입구로 가서는 승강기로 갈아타야 했다. 세상에. 승강기에 버튼이 없다. 경비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출입증을 승강기 안쪽 센서에 대니 알아서 67층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귀 멍멍해.
“오느라 힘들었지? 우리 아파트가 좀 까다로워. 엄마 말로는 안전을 위해서라는데 난 예전 아파트에서 경비 할아버지들이 지키던 때가 더 좋더라. 지금은 입구 게스트하우스를 꼭 거쳐야 하고 음식을 배달시켜도 빨리 먹을 수 없어서 불편해.”
“왜? 여기엔 배달이 안 와?”
“안 오는 건 아닌데 단지 내에 배달원들이 다니는 게 위험하고 없어 보인다고 게스트하우스에서부터는 로봇이 배달해줘.”
“로봇?”
“응. 여행용 트렁크만한 로봇인데 사람 없이도 혼자서 지정한 곳을 찾아갈 수 있나봐. 게스트하우스에서 거주자의 확인이 끝나면 배달원이 음식을 로봇에 넣고 그 다음부터는 혼자 복도를 달리고 승강기를 타고 집 앞까지 와. 편하긴 한데 좀 느려.”
“아…. 그러면 따뜻한 음식은 다 식겠다.”
“꼭 그렇진 않은데 로봇에 보온 보냉 기능이 있나봐. 따뜻한 건 따뜻하게, 차가운 건 차갑게 유지시켜주더라고.”
배달하는 로봇이라니. 누가 안 훔쳐가나? 하긴. 이렇게 곳곳에 카메라가 달렸는데 훔쳐서 들고 가기도 전에 걸리겠다. 그런데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는 알바들도 다 사라지는 거 아냐? 이거 심각한 걸? 현관 인터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피자 왔다. 엄마가 예약 주문하고 가셨거든.”
현관문을 여니 야쿠르트 아줌마가 끄는 카트와 비슷하게 생긴 게 서 있었다. 저게 로봇? 주연이 뚜껑을 열고 음식을 꺼내자 로봇에 달린 화면에서 귀여운 캐릭터가 튀어나와 맛있게 드세요 라고 인사했다. 신기하다. 피자를 먹고 집에 있던 조각 케익과 주스까지 마시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맛있는 걸 먹어서 너무 욕심을 부렸나?
“혼자서는 말 걸기가 부끄러운데 네가 와서 다행이야. 우리 같이 인터뷰하러 가자.”
“그래.”
다시 1층 게스트하우스로 내려가서 경비 아저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좀 휑해보였다. 한쪽에는 방문자들을 위한 편안한 소파와 탁자가 놓여 있었지만 좀 삭막했다. 너희들의 방문을 환영하진 않는다는 느낌이랄까. 잠시 후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은 언니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안녕. 네가 3동 6701호 사는 주연이니? 인터뷰를 도와주러 왔으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봐. 우선 컨트롤룸부터 견학해볼래?”
복도를 걸어 도착한 컨트롤룸은 거대했다. 게스트하우스 옆에 동주민센터와 파출소가 있었는데 거기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았다. 극장 스크린만한 한쪽 벽엔 작은 화면이 쫙 깔려 있었고 그 앞에는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는 직원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미항공우주국 관제센터를 보는 듯 했다. 대체 몇 명이나 사는 아파트길래 이런 시설이 필요한 걸까.
“이곳은 우리 아파트의 모든 감시카메라 영상과 보안시스템의 신호가 들어오는 컨트롤룸이야. 누군가 우리 아파트에 들어오면 나갈 때까지 이 화면들에 나타나게 되지. 물론 집에 들어가 있을 때는 예외고. 사생활은 중요하니까.”
어떤 화면에는 감시카메라의 화면들이 주기적으로 바뀌고 있었고, 어떤 화면에서는 승강기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중 몇 개의 화면에선 빨간 점들의 움직임이 보였는데 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저 빨간 점들은 뭐예요?”
“저건 단지 내에서 이동 중인 로봇의 위치야. 청소 로봇은 네모, 경비 로봇은 세모, 음식 배달 로봇은 동그라미. 저 로봇들은 24시간 움직이며 각자의 일을 하고 있어. 청소 로봇은 티끌 하나 그냥 넘기지 않고 빨아들이고, 경비 로봇은 감시 카메라가 닿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다니며 이상한 점이 있나 살펴보고, 음식 배달 로봇은 신속하게 여기부터 각 집앞까지 배달을 하지.”
70층쯤 되는 건물이 여러 개 있지만 이렇게 전자식으로 관리를 하면 많은 사람이 필요할 것 같진 않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총 몇 분이에요?”
“워낙 분야도 다양하고 외부 업체에서 파견 온 분들도 있어서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기존 아파트 대비 십분의 일 정도라고만 말할게. 일상적인 청소는 로봇이 하니 주기적인 대청소를 제외하곤 사람이 필요 없고, 각 동 앞에 놓여있던 경비실도 모두 없앴고, 아파트 단지 출입구를 한곳으로 통합하고, 생체 인식 보안시스템을 모든 건물 출입구에 설치해서 완벽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단다. 각종 시설 관리에도 인공지능 시스템이 적용되어 적은 비용으로도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졌지.”
“경비실이 없으면 누가 택배를 받아줘요?”
“게스트하우스 옆에 무인택배보관함이 있으니까 그곳을 이용하면 되겠지? 집에서 받아보고 싶으면 배달 로봇에게 시켜도 되고.”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감시카메라를 비롯해 철저한 출입 통제 시스템은 물론이고, 인근 경찰서와 소방서와 연결된 각종 감지 시스템 때문에 어떤 사고가 나도 5분 안에 출동이 가능하다, 보호가 필요한 노약자에게는 NFC칩이 내장된 스마트밴드가 보급되어 현재 위치와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사전에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거나 이상 행동이 감지되면 가족에게 즉각 연락이 간다.
“사람은 피곤하면 자기도 모르게 잠들 수 있잖아. 하지만 로봇들은 24시간 우리를 지켜줄 수 있어. 멋지지?”
안전할 것 같아 좋아 보이면서도 어딘지 차갑게 느껴진다. 이런 곳에서 살면 동네 벤치에 앉아 쉬다가 우연히 만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대화를 나누던 도중 컨트롤룸에 귀엽게 생긴 하얀 로봇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카메라가 달린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무언가를 조사하는 것 같았다.
“저 경비 로봇은 뭘 할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순찰을 해. 카메라 뿐만 아니라 각종 센서가 달려 있어서 이상한 열이 감지된다던가 진동이나 요란한 소리가 나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주변의 로봇들과 연락을 주고받아 한 곳에 모여 안전을 위해 길을 차단하기도 해.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어서 사람들과 대화도 할 수 있고. 말동무가 필요하면 쟤랑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단다. 의외로 똑똑해서 어색한 목소리만 아니면 사람과 대화하는 걸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야.”
하긴, 내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 비서 Ya도 사람 같은 면이 있긴 하니까. 조용히 듣기만 하던 주연이가 처음 질문을 했다.
“그럼 경찰이나 군인도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요?”
“내가 볼 땐 완전히 대체할 순 없을 것 같아. 순찰이야 로봇이 할 수 있다고 해도 수사를 하고 범인을 검거할 땐 사람이 나서야 하니까. 하지만 범죄 현장이나 전쟁터, 화재 현장처럼 위험한 곳에 실수를 할 여지도 적고 위험한 일을 하다가 다쳐도 문제가 되지 않는 로봇이 보급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미군들은 작전할 때 정찰용 로봇이나 폭탄 해체 로봇, 날아다니는 드론을 사용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로봇들이 도입될까? 그럼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군대를 안 가도 되겠네? 남자애들은 좋아하겠다. 그런데 그럼 이제 사람과 로봇이, 로봇과 로봇이 싸우는 세상이 되는 걸까? 주연의 손목 밴드에서 알림이 왔다.
“아라야, 집에 올라가자. 엄마 왔대.”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직원 언니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승강기에 올라탔다. 올라갈 땐 카드도 대지 않았다. 아마도 주연의 스마트밴드를 인식해서 자동으로 목적지를 인식했나보다. 좀 무섭다. 그런데 다른 층에 가고 싶을 땐 어떡하지?
7. 전문직은 사라질까?
주연이네서 아까 했던 인터뷰를 정리하고 있는데 주연 엄마가 귀가했다.
“안녕! 네가 아라니? 키가 왜 이렇게 커? 꼭 대학생 같다. 아라는 공부 잘 한다며? 주연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숙제도 함께 하고 그러렴. 자주 놀러와.”
“네.”
저도 자주 놀고 싶긴 한데 주연이가 학원 여러 개를 다니느라 좀 바빠야 말이죠, 라고 말하고 싶었다. 안방으로 엄마가 들어간 후 주연에게 물었다.
“와, 너희 엄마 되게 멋있다. 무슨 일 하셔?”
“무슨 증권방송에서 진행자 하셔. 텔레비전 틀면 가끔 보여.”
“오… 주연이네 집 되게 잘 나가는구나.”
“잘 나가긴. 만날 바쁘다고 얼굴 보기도 힘든데.”
“너희 엄마 인터뷰 해도 재밌을 것 같다.”
“그래? 난 엄마한테 물어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잘됐다.”
주연이 졸라서 주연 엄마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서재로 자리를 옮겼는데 책도 많고 가구들도 고풍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차분해졌다.
“일자리의 미래가 궁금하다고?”
“네. 앞으로 사람들의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 조사하는 게 숙제인데요, 방송국의 일자리는 어떨까 궁금해요.”
“난 처음엔 증권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방송국의 미래까진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단순한 진행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캐릭터에게 맡겨도 될 것 같긴 해. 너희 하츠네 미쿠란 일본 가수 알아?”
“아뇨. 처음 들어요.”
“그래픽으로 그린 가상현실 속 캐릭터인데 노래도 부르고 광고도 찍어. 심지어는 대형 공연장에서 콘서트도 한단다.”
“공연이요? 컴퓨터 그래픽 캐릭터면… 극장 화면 같은 걸 단체로 보는 건가요?”
주연 엄마가 태블릿으로 보여준 영상을 보니 놀라웠다. 무대 위에서 가수가 춤추며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뭔가에 반사된 홀로그램 영상이었다. 일반적인 스크린 속 영상이 아닌 실제 무대와 겹쳐져서 보이는 기법 때문에 실제로 무대 위 공연이라고 생각할만도 했다. 청중들도 진짜 가수를 보듯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화면 속에서만 살던 캐릭터들이 현실 세상에서도 이 정도로 실감나게 활약하는 수준이니 이제 방송 진행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술적 한계 때문에 지금 당장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는 역할을 하기는 힘들겠지만 준비된 원고를 읽는 리포터 정도는 충분히 맡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그런 가상의 리포터도 인간이 준비한 원고를 읽어야 하지 않나요?”
“오히려 그런 분야에서야말로 인공지능은 실력을 발휘할 걸?”
이미 인공지능이 뉴스 기사를 쓰고 있다고 했다. 취재를 나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각종 자료를 수집해서 기사를 쓰는 시스템은 국내에도 벌써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다, 스포츠 경기나 증권시장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아 자동으로 기사를 쓰는데 대부분의 기사는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작성되고 업로드되기 때문에 기존의 인간 기자들을 능가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어차피 사실을 전하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대부분 정형화된 양식이 있거든. 거기에 맞춰서 정보와 수치만 바꾸는 건 아주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도 할 수 있지. 아마 사람들은 어떤 기사를 사람이 썼고 어떤 기사를 로봇이 썼는지 구분하지 못할 걸? 그리고 해외에선 인공지능이 소설이나 시나리오 같은 창작 영역까지 진출해서 글을 쓰고 있으니 대부분의 언론사가 이 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명약관화지.”
불 보듯 뻔하다…. 믿을 수 없었다. 벌써 그 정도라니. 그럼 현장에 나가지 않는 기자들의 일자리는 사라지는 건가? 아니,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글을 쓰는 인간들도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건가?
“엄마, 그럼 기자 뿐만 아니라 교수나 의사, 법률가, 학자 같은 사람들의 일자리는?”
“시기와 정도의 문제겠지?”
주연 엄마는 인공지능 의사 왓슨의 사례를 설명해주었다. 수많은 환자들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꽤 높은 정확도로 질병에 대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모든 자료를 꼼꼼히 분석하고 다양한 사례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가끔은 인간 의사들이 놓치는 점까지 찾아내곤 한다, 신뢰도와 책임성 때문에 단독으로 사용되진 않지만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로는 충분히 활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법률적 판단도 마찬가지로 데이터로 입력된 과거 판례들을 바탕으로 내릴 수 있을 거고, 단순한 수준의 학술적 지식과 새로운 정보도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거다. 아직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력을 갖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권한까지 갖는 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조력자로서는 충분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의사나 판검사 같은 전문직들의 권위도 지금보단 떨어지지 않을까, 라고.
“그럼 아줌마는 불안하지 않으세요? 방송이든 금융이든 모든 전문영역까지 인공지능이 확산되면 아줌마 일자리도 사라지는 거잖아요.”
잠시 생각하던 주연 엄마는 멋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장 몇 년안에 위기에 처할 것 같진 않지만 나도 준비는 해야겠지? 어쩌면 주연이랑 아라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될지 모르겠다. 주연이도 의사를 하고 싶다고는 하는데 요즘엔 수술실에서도 로봇을 쓰고 있고 원격 진료도 확산되고 있으니 아주 뛰어난 전문성을 지니지 않으면 그것도 쉽진 않을 것 같다.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직업 분야를 불문하고 인공지능과 로봇을 도입할 게 분명하니까.”
여러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암담해진다.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외교관이란 직업은 남아있을까? 할머니는 좋겠다. 잔치 음식 만드는 건 아직 로봇이 대체하긴 어려울 테니까.
“분명한 건,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우리 생활 도처에 파고들 건 분명한데 그에 대한 대책을 개인들에게만 맡겨선 안된다는 점이야. 모든 사람이 지금처럼 재취업 교육을 받을 수도 없고, 설사 그게 가능해도 일시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어쩔 수 없는 경쟁 때문에 그들의 소득 수준은 더 열악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지.”
이후로도 주연 엄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사회의 노력에 대해 열심히 알려주셨다. 주연이네 놀러오길 잘한 것 같다.
8. 인간은 사라질까?
오랜만에 할머니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수다를 떨었다.
“요즘 바쁘더라. 놀러 다녔냐?”
“아니, 숙제 하느라 바빴어.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지에 대해 조사하라고 해서.”
“컴퓨터가 아무리 잘나봤자 기계지, 그것 때문에 사람이 일자리를 잃겠어? 다들 열심히 노력만 하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아라 너도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알았지?”
기승전공부. 잔소리를 한쪽 귀로 흘려보내는 기술은 일찌감치 터득했지만 이렇게 불쑥 치고 들어오는 할머니의 공격은 여전히 데미지를 준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현실은 만만하지 않더라고. 당장 몇 년 안에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진 않을 건데, 십 년 이상의 미래를 보면 장담 못 하겠던데? 앞으로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거래.”
“인공지능이 그렇게 대단하디? 뉴스에서 툭하면 나오긴 한다만.”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스스로 공부하면서 소설도 쓰고 뉴스도 작성하고 음악도 작성하고 있대. 앞으로는 방송도 하고 영화도 만들고 병도 치료하고. 사람이 하던 일 대부분을 대신 한다고 하더라고. 또 로봇들은 공장에만 있는 게 아니라 편의점, 도서관, 병원, 전쟁터 등 어디에나 보급될 거래.”
“그런 세상이 되면 사람은 뭐하나?”
“모르겠어.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데 편하게 쉬면서 로봇이 해주는 걸 누리기만 한다는 주장부터 지금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이 와도 로봇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힘들게 일하고 로봇 관리나 할 거라는 주장도 있고,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미래가 올 거라고도 하고. 지금은 그냥 상상으로만 떠들 뿐이지.”
할머니는 내 말을 다 알아듣는 걸까? 항상 텔레비전을 본다고는 해도 요즘 나오는 소식들은 너무 어렵고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할머니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잖아. 그런 내 생각이 느껴졌는지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차분하게 말을 했다.
“옛날옛날엔 동물들은 식량이었어. 산과 들에서 뛰노는 걸 잡아서 먹었지. 잡아서 가축으로 기르다가 소나 말 같은 힘센 동물들은 일을 시켰어. 덕분에 걔들은 야생에서 살 때보다 먹을 걱정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었지. 요즘은 애완동물이다 반려동물이다 부르며 집 안에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사람들하고 잘 살고 있잖아. 그걸 떠올려봐.”
갑자기 동물 이야기는 왜 하지? 무슨 관계가 있다고?
“동물한테 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일자리도 앞으로 하기 나름이지 않을까? 지금까진 일방적으로 일 시키고 부려먹었다면 앞으로는 친구처럼 지낼 차례야. 그 인공지능인지 뭔지도 사람한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최대한 이용해야지. 아마 걔들도 혼자 살기는 어려울 거고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그러다보면 서로에게 어울리는 적당한 관계를 찾겠지.”
“그러다 사람보다 똑똑해져서 다 죽이면 어떡해?”
“설마 로봇 따위가 사람을 멸종시키겠냐만 만약에 걔들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건 인간들이 잘못 산 업보야. 전쟁이나 하고 굶어죽는 사람을 보고도 등돌리고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악행들 때문에 죄받아 죽는 거라면 할 말 없다. 다 인간이 잘못한 거니까 누굴 원망할 필요도 없어.”
할머니, 인류의 미래가 곧 손녀의 미래라고요! 너무해.
“그러니까 아라 너도 공부 열심히 해. 그러면 로봇들이 몇몇 사람 살려줄 때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왜 거 사람들도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호해주잖아. 천연기념물.”
또 공부 이야기다. 결론은 공부 열심히 해서 인공지능 로봇의 애완견이 되란 이야기인가?
9. 기계는 인간을 남겨둘까?
주말이 되었다. 해온 언니가 밀린 잠을 자고 있다. 불쌍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언니는 너무 바쁘다. 공부하고 일하고 틈틈이 운동하고. 나도 크면 저렇게 살아야 되나. 아니, 노력한다고 해서 꿈이나 목표를 이룰 수는 있는 걸까.
“나도 별다른 해결책은 없는데?”
낮잠에서 깬 언니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언니는 첨단기술에 대해 잘 아니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답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그동안 과학기술은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해줬어. 불이 그랬고 바퀴가 그랬고 문자가 그랬고 증기기관이나 전기가 그랬지. 이런 기술의 발전 속도는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야. 눈으로 볼 수 있고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지. 하지만 인터넷은 어때? 인공지능은? 우리가 느낄 새도 없이 계산이 이뤄지고 신호가 이동하고 결과가 도출돼. 필연적으로 이 과정에서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어. 모든 속도가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니까. 그럼 남는 게 뭐게?”
“로봇? 인간은 아닌 것 같고. 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다. 언니를 바라봤다.
“기술 그 자체야. 인류는 이 시점에서 모든 기술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돼. 자동차를 굴리자고 전기를 만들자고 불태운 화석연료가 대기를 망가뜨리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자고 개발한 무기가 인류를 죽이고 있다면 그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야.”
어딘가 할머니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 할머니가 언니처럼 이런 분야에 대해 공부했을 린 없는데.
“아라 넌 전기를 포기하고 살 수 있어? 원시인들처럼 나무를 비벼 불 피우고 사냥하고 살 수 있어?”
“생각은 안 해봤지만 그러긴 싫어. 아니,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아.”
“모든 기술이 그런 거야. 한 번 길들여지면 포기하기 어려워. 아직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만들 미래에 대해 이런 걱정이라도 할 수 있지만 한 번 속도가 붙으면 멈출 수가 없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멈출 가능성조차 사라지는 거지. 그때부턴 그냥 우리의 일부가 되는 거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하잖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장치가 연결되고 인공지능이 그 안에 들어가면 우린 무엇과 싸우는지조차 모른 채 끌려다니게 될 거야. 일자리? 누군가 일자리를 잃는다면 그건 인공지능에게 밀려서 쫓겨나는 게 아니라 유령에게 쫓겨나는 셈이야. 사회 전체가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의 판단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그냥 세상이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무슨 SF영화 줄거리 같아. 정말 그렇게 걱정해야 돼?”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해.”
해온 언니가 가장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명심해, 구글이 스카이넷이야. 인류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모든 네트워크와 인공지능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언제든 시스템을 중단시킬 수 있는 킬스위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돼!”
이 말을 하며 언니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몇 분간 혼자 자지러지게 웃더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계속 자려고 했다. 영문을 몰라서 언니를 한참 흔들었다. 무슨 소리야? 그러자 언니 왈,
“터미네이터 대사 패러디야. 으하하하.”
난 몹시 진지했는데 언니가 농담이나 해서 기분이 나빴다. 사람이 왜 그래! 내 방에 누워있는데 잠시 후 언니가 문자를 보내왔다. ‘기본소득을 찾아봐.’ 응? 기본소득? 처음 듣는 말인데? 스마트폰을 켜서 Ya에게 물어봤다.
“야! 기본소득이 뭐야?”
“기본소득? 아…. 그건 말이야.”
너무 어렵고 생소한 내용이었다. 그냥 돈을 줘? 왜? 돈을 일해야 받는 거 아냐? 국민들이 공평하게 받은 소득을 소비에 쓰면 경제구조가 돌아갈 수 있다고? 직업을 잃거나 노동시간이 줄어든 사람들이 돈을 더 받을 수도 있네? 일을 덜 하는 대신 하고 싶은 걸 하고 공부하며 좀 더 인간적으로 산다고? 하나도 모르겠다. 공부를 더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아무리 적응하려고 해도 휴대폰 속 비서의 말투가 너무 기분 나쁘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10. 숙제 발표하는 날
한 주간 열심히 숙제를 해서 그런지 학교 가는 발걸음이 힘찼다. 매일 이러면 좋을 텐데. 분명 창체 선생님이 나부터 발표를 시키겠지? 사과하는 마음으로라도 멋지게 발표해야지. 그리고 수업 후엔 미안하다고 말하고.
4교시가 되었다. 컴퓨터실로 이동하려고 준비중일 때 반장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얘들아, 다들 자리에 앉아봐. 오늘 창체 시간은 교감 선생님이 들어오신대. 우리 반에서 기다리면 되니까 컴퓨터실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수업종이 치고 교감선생님이 들어왔다.
“컴퓨터 선생님께서 지난주 금요일에 학교를 그만 두셨어요. 그래서 다른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임시로 제가 창체 시간을 맡기로 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바로 수업을 시작했고,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봤지만 아무도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궁금해 할 뿐이었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상민이 슬쩍 다가왔다.
“내가 컴퓨터 선생님 소식 알려줄까?”
“너 뭐 들은 거 있어?”
“응. 어제 교무실 근처를 지나다가 우연히 들었는데 컴퓨터 선생님은 고향으로 돌아갔대.”
“갑자기 왜? 무슨 일이 있었나?”
“교사 생활이 허무해졌다나. 어릴 때부터 하고 싶던 동물 관련 일을 할 거라던데? 반려동물관리사인가. 아마 네가 교사가 사라질 거라고 해서 충격받으셨나보다. 하긴, 동물쪽 일자리는 아직 사라질 리가 없지. 최근 반려동물 산업의 성장세만 봐도….”
진짜일까. 나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걸까.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 하지만 이미 그만두셨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사과할 수도 없잖아. 어떡해야 좋지? 그나저나 상민이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날 졸졸 따라다니는 거지? 설마 날?
참고하면 좋을 자료
- 탁구로봇 2011년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t_qN3dgYGqE
- 탁구로봇 2014년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RbNz6gD5k
- KUKA탁구로봇 홍보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tIIJME8-au8
- 스포츠 도박 규모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22/0200000000AKR20160722156400052.HTML
- 배구 블로킹 연습로봇 기사(영문) https://www.engadget.com/2017/04/13/japan-s-volleyball-team-test-their-spikes-against-robot-blockers
- 인공지능 작곡 기사 (해외) http://www.huffingtonpost.kr/2016/09/29/story_n_12242300.html
- 인공지능 작곡 기사 (국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242122005&code=960100
- 인공지능 클래식 작곡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092100005&code=960313
- 인공지능 작곡가 에밀리 하웰 작품 모음 https://www.youtube.com/watch?v=mnBUxG-wSVg&list=RDmnBUxG-wSVg
- 인공지능 미술 뉴스 http://www.itfind.or.kr/publication/regular/weeklytrend/weekly/view.do?boardParam1=7003&boardParam2=7003
- 경비로봇 인간폭행사고 기사 http://www.irobo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109
- 경비로봇 폭행사건 기사(영문) https://www.engadget.com/2017/04/26/man-arrested-attack-robot-k5
- 무인경비시스템 도입 철회 사례 기사 http://v.media.daum.net/v/20170418093833202?f=m
- 노인 요양 도우미 로봇 기사 http://www.sciencetimes.co.kr/?news=말벗이-되어주는-일본-로봇형제
- 철책 경비 로봇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cp_art_view.html?artid=20100923210308A&code=910302
- 각종 군사용 로봇 사진 https://kr.pinterest.com/bizzyjoe/military-robot/
- 하츠네 미쿠 콘서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94vkYUDPYgI
- 인공지능이 쓰는 기사 http://www.g-enews.com/view.php?ud=201603141112006484047_1&ssk=g010000
- 로봇저널리즘의 시작 기사 http://www.wiz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7
인공지능의 시나리오로 만든 단편영화 기사 http://h2.khan.co.kr/201606141418001
- 의료 진단에 활용되는 인공지능 왓슨 기사 http://www.sciencetimes.co.kr/?news=왓슨-정밀의료-시대-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