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시점(POV) 영상의 대중화
2013년에 쓴 글입니다.
영화의 속성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훔쳐보기'가 있다. 굳이 관음증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쪽 의자에 앉아 저쪽 화면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일상에서 금기시되었던 훔쳐보기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건극장에 앉은 관객에게 잠시나마 허락된 일탈(guilty pleasure) 이리라.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상상력을 동원해 관객에게 온갖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스펙터클이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체험을 좀 더 친밀하게 느낄 수 있는 서비스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이를 위해 각종 기법을 개발하였다. 그중 가장 쉽고 흔하게 사용되는 것이 '1인칭 시점'이다.
1인칭 시점은 주로 관찰자의 역할을 하는 3인칭 시점에 비해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주인공이 범인의 집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조사할 때, 혹은 피해자가 악당을 만날 때면 거의 관습적으로 등장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카메라가 전환되곤 하는데, 이런 기법은 철저히 관찰자로서 화면 속 인물들을 응시하던 관객들을 한순간에 등장인물에게 이입시키기 때문에 3D 영화 못지않은 실감 나는 체험을 안겨줄 수 있어 매우 효과적으로 쓰여왔다.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볼 때처럼 카메라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거나 상대방의 눈과 직접 마주 보는 행위는 기술적으로 유용할 뿐만 아니라 화면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데려가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정서적인 효과까지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법은 몇몇 실험 영상을 제외하곤 매우 제한적으로만 쓰여왔다. 관객이 쉽게 피곤해지는 것이 그 이유 중하나이다. 카메라의 작은 뷰파인더로 볼 때야 카메라의 작은 흔들림이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촬영된 영상을 커다란 극장 화면으로 보면 몇 밀리미터의 작은 떨림이 몇 미터의 요동질로 나타나니 1인칭 시점으로만 찍은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뛰쳐나갔다는 몇몇 관객의 반응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런 연유로 로우 예 감독의 <수쥬>처럼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일반 관객과 만날 기회를 자주 갖지 못했다.
21세기가 되면서 사람들이 영상물을 접하는 스크린의 크기는 점차 작아지고 있다. 극장에서 텔레비전으로, 텔레비전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모니터에서 휴대전화로, 갈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는 화면의 크기는 작아져 왔다. 그러다 보니 큰 화면 기준의 영상 문법에도 변화가 생겼고, 매체의 특성에 맞춰 이야기의 호흡도 짧아지기 시작했다. 또 예전에는 영화나 방송 전문가들이 만든 영상이 일반인들이 소비하는 콘텐츠의 대부분이었는데 인터넷이 발달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전파될수록 조잡하지만 친근감 있는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 영상들이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마 이런 변화 속에서 21세기의 관객들은 점차 들고 찍기(Hand-held)의 멀미를 극복하도록 진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전체를 1인칭 시점으로 찍은 영화는 간혹 등장했지만 아예 대놓고 캠코더의 출렁이는 느낌을 드러내고도 성공을 거 둔 영화의 효시는 <블레어 윗치>가 아닐까 생각된다. 등장인물들이 캠코더를 들고 어떤 사건을 따라가는 이야기 형식은 일상을 담는 홈비디오의 형식과 다를 게 없었고, 카메라가 흔들리다가 땅에 떨어지기까지 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듯한 소리까지 고스란히 담아내는 기법은 마치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전해주며 관객들의 몰입감을 이끌어냈다. 이런 파운드 푸티지(참고1)류의 영상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관객들의 적지 않은 호응을 얻자 주류 상업영화계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클로버필드>라는 블럭버스터에서도 100% 캠코더 핸드헬드 촬영(참고2)이라는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이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홈비디오와 UCC 영상의 스타일을 차용함으로써 저예산 영화인들의 한계이자 자구책이었던 흔들리는 카메라를 개인들이 일상을 담은 영상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현장감과 사실성을 보증해주는 장치로 사용한 영리한 접근이었다.
1인칭 시점으로 촬영하기 위해선 특별한 카메라가 필요했다. 기존의 커다란 전문가용 카메라로는 인간의 움직임을 닮은 기동성과 현장감을 담아낼 수 없었고, 소형 카메라로는 고품질의 영상을 담아낼 수 없었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영상이라면 어느 정도의 화질의 타협이 가능하겠지만 보편적인 영상물 제작에 있어서 화질은 양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에 전문가용 장비를 개조해서 특수 장비를 개발하거나 커다란 카메라를 소형 카메라처럼 휘두르는 것 이외의 특별한 대안이 없었다.
그러던 중 고프로(GoPro)라는 괴물이 튀어나왔다. 원래 스카이 다이빙이나 파도타기, 산악자전거 등의 익스트림 스포츠 촬영에서 쓰이는 소형 디지털카메라는 많았다. 방수나 방진 기능까지 들어 있으면서 크기도 작아 촬영자의 헬멧이나 서핑 보드에 간단하게 부착하여 사용하다 보니 기존의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시선으로 다양한 공간과 피사체를 담아낼 수 있었는데 이런 카메라들은 가격이 비싸거나 화질이 떨어지거나 내구성이 떨어지는 등의 한계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고프로는 첨단기술의 발전 덕분에 가장 최근에 출시된 3세대 기종의 경우 1080p 해상도를 넘어 4K까지 지원할 정도로 방송용으로도 전혀 손색없는 화질을 제공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200달러부터 400달러(미국 기준 가격)라는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영상 제작 현장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추세다. 한국의 경우만 해도 이젠 대세가 된 리얼리티쇼에서 다수의 출연자들의 시점에서 일일이 영상을 기록하게 해주었고, 촬영감독이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또 테이프와 배터리 교환 없이도 몇 시간을 연속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한 프로그램에서 십수 대의 고프로 카메라가 쓰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더 이상 촬영감독이 배우인 것처럼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배우가 직접 카메라를 달고 그들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게 곧 영상 속 주인공의 시점으로 바라 본 영상이 되니 그동안 그토록 원하던 1인칭 시점 촬영이 완성된 것만 같아 보인다. 아직까지는 카메라 떨림을 보정하는 기술이 전문가용 카메라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급격한 이동시 다소 어지러울 수는 있으나 향후 관련 기술이 발전하여 기능이 보강되면, 또 들고 찍기 영상에 어울리는 영상문법이 발전되고 손바닥 크기 화면이 더 친숙한 관객들의 진화가 계속된다면 이는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2012년 구글에서 발표하고 2013년에 시험용 제품으로 출시된 구글 글래스(Google Glass)란 제품이 있다. 스마트폰 이후의 새로운 시장을 찾던 IT기업들이 차기 제품군으로 밀고 있는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의 대표주자로 스마트폰의 기능을 안경에 이식했다고 보면 된다. 이 제품은 무선 통신망과 GPS 기능을 이용하여 증강현실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손이 아닌 목소리만으로도 기기의 조작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기 때문에 사용자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고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서는 그저 말만 하면 되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빨라지고 두 손이 자유롭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제품에는 사진과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가 달려 있는데 이 기능 역시 목소리만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나 전화기를 주머니에서 꺼내느라 멋진 순간을 놓칠 걱정이 없고,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는 부자연스러움을 줄일 수 있어 일상을 기록하는 도구로서 최고의 기기로 등극할 것이 예상된다. 물론 모든 것이 기록된다는 점 때문에 타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나 빅브라더의 감시 같은 이슈가 논의될 수도 있겠으나 폐쇄회로 카메라나 자동차 블랙박스가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 잡은 것처럼 구글 글래스 같은 새로운 기록장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선행된다면 파생될 피해와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앞서 고프로가 1인칭 시점의 완성형 장치 같다고 말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컨택트 렌즈형 카메라가 나오지 않는 이상 촬영자의 시선에 담기는 영상을 100% 온전히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눈과 카메라 사이에 시차(視差)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촬영자의 시점 상에 둘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엔 카메라가 사람의 시선을 방해하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촬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촬영자의 1인칭 시점에 가장 근접해서 촬영할 수 있는 기기로는 고프로보다는 착용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눈과 최대한 밀착할 수 있는 구글 글래스가 더 적합하다. 현재 이 제품의 동영상 촬영 해상도는 720p 수준에 불과하고 연속 촬영 시간에도 제약이 있는 등 전문 촬영기기를 대체하기엔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한낱 전화기였던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영화가 나올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현재의 추세라면 '입는 카메라'의 등장도 멀지 않았으리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흔해지면서 이용자들 대다수는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자신의 일상을 충실히 담기 위해 값비싼 DSLR과 스마트폰을 구입할 정도로 자발적이기까지 하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순간을 자신만의 1인칭 시점으로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동안 전적으로 관객의 입장에서 모든 걸 바라보던 대중의 지위를 바꿔버렸다. 훔쳐보기의 주체에서 보여주기의 주체로 대중의 입장이 전환되면서 그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그러면서도 촬영자의 개성을 듬뿍 담은 영상물들을 쏟아낼 것이고 <클로버필드>의 사례처럼 이제는 기존의 영상업계에서 부지런히 그들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쇄술의 발달로 소수가 독점하던 성경과 학문이 대중에게 보급된 것처럼,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발달이 UCC라는 방식으로 대중을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전환시킨 것처럼, 1인칭 시점 영상의 대중화는 알렉산드르 아스트뤽(Alexandre Astruc)의 '카메라는 만년필이다'라는 말의 본뜻처럼 대중이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자기만의 관점으로 타인에게 전달하는 유용한 도구로 자리를 잡으며 영상 민주주의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끌어 낼지도 모른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표현 수단은 지니게 되는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변화에 대해 기대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참고1) Found footage: 어쩌다가 발견된 영상이라는 뜻으로 하나의 장르를 이룰 정도로 대중화 되었다.http://mirror.enha.kr/wiki/파운드%20푸티지
참고2) 극중에서는 주인공이 가정용 소형 캠코더로 촬영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촬영에서는 영화용 카메라인 Sony의 F23과 프로슈머 캠코더인 Panasonic의 HVX-200이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