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은 진짜 원테이크 영화일까

왜 길게 찍을까 그리고 길게 찍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목적과 필요 기술

Dec 21. 2016

영화 전체가 한 컷으로 촬영된(것처럼 보이는) 히치콕 감독의 <로프>

롱테이크?

장면(shot)을 전환(cut)하지 않으면서 전후의 장면보다 유독 길게 찍는 촬영기법을 롱테이크(Long take)라고 한다. 정확한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대개는 1분 정도만 장면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도 롱테이크라고 부르는데 길면 10분, 아주 드물게는 영화 전체가 한 장면으로 촬영되기도 한다. 1분에도 수 십 개의 장면이 빠른 속도로 바뀌기 일쑤인 현대 영화에서 롱테이크는 연출자의 의도나 미학적 기능을 떠나 아주 위험한 시도다.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고 멀찌감치서 한 곳을 주시하거나, 움직이더라도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누군가/무언가/어딘가를 오랫동안 따라다니는 일은 빠른 호흡의 컷 전환에 길들여진 요즘 관객들에겐 일종의 고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는 동영상(Moving picture)? 그건 형용모순을 넘어 죄악 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험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 영화가 있다.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서편제>, <마법사들>, <칠드런 오브 멘>, <러시아 방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플레이어>,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그리고 <그래비티>와 <어벤저스>, <버드맨>까지. 영화 역사 상 수많은 영화가 롱테이크를 시도했고 그중 적지 않은 작품이 롱테이크 기법을 잘 활용한 영화로 관객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이 글에서는 롱테이크의 목적과 효과에 대해 짧게 소개하고, 롱테이크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기술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왜 롱테이크로 찍는가 1 : 골라 보는 재미

많은 영화들이 이야기와 중심인물을 소개하는 도입부에서 롱테이크를 사용한다. 주인공(들)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 대해 알 수 있고, 그들의 말투나 행동을 보며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또 인물들이 잠시 스쳐 지나가며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인물 간 관계를 파악할 수도 있고,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나중에 중요해지는 핵심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물론 관습적인 편집을 통해서도 이런 내용들을 전달할 수 있긴 하다. 절대다수의 영화들이 이미 그렇게 관객과 만나고 있으니까. 그러나 컷 전환으로 필요한 장면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건 친절해 보이지만 폭력적이다. 두 사람의 설정샷. 말하는 주인공의 바스트샷. 이어지는 상대방의 반응샷 클로즈업.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군, 듣자마자 놀라는 걸 보니 매우 중요한 이야기인가 보군. 관객은 스스로 생각할 여지없이 연출자/편집자의 의도대로만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 장면을 바꾸지 않고 롱테이크로 두 사람의 대화를 보여준다면 관객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이야기 내용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마치 ‘딥 포커스(deep focus)’가 심도를 이용하여 피사체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촬영기법에 대립되는 목적으로 사용되듯 롱테이크도 관객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한다. 이런 ‘불친절한’ 편집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때때로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도 있겠지만 대신 스스로 퍼즐을 맞추는 재미나 원하는 것을 골라보는 자유로움이 제공되니 조금만 훈련이 된다면 그리 큰 손해는 아닐 것이다.

왜 롱테이크로 찍는가 2 : 사실성의 강조

‘편집의 마술’이란 말이 있다. 컷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점프컷으로 시간을 생략하고, 고속/저속촬영으로 시간을 늘리고 줄이는 건 다른 장르의 예술에선 하기 힘든 영화만의 마법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기에 그만큼 비현실적이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은, 단 한 번의 컷 없이 쭈욱 이어지고 있다. 매일 잠이 들거나 무언가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면 자연스럽게 몇 시간 뒤로 컷 전환을 하겠지만 그때조차 다른 누군가의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으니 전지적 시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인생이야말로 롱테이크이자 원테이크(one take)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롱테이크로 촬영된 장면을 보고 있으면 관습적 편집으로 이뤄진 장면들보다 좀 더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극 중 시간과 관객의 시간이 완벽하게 일치할 수밖에 없는 특성 때문에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진짜로’ 벌어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카메라를 한 곳에 세워두고 인물/사건과 거리를 둔 채 찍은 장면을 본다면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어 냉정하게 전체 그림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며,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찍은 장면을 본다면 스크린 너머 공간에서 스스로 등장인물이 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어느 쪽이든 수동적으로 관람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사실성을 갖게 된다.

왜 롱테이크로 찍는가 3 : 분위기 조성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바쁘게 걸어 다니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없는 평온함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생하는 엄청난 사건. 관객들은 일순간 긴장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사건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롱테이크는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이야기를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에 사용된다.

다른 사례도 있다. 정신없어 보이는 <살인의 추억> 초반 범죄현장 씬이 좋은 예다. 박두만 형사(송강호)가 등장하여 범죄 현장 주변을 돌아다니는 게 내용의 전부고 범인에 대한 증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지만, 주인공을 열심히 따라다니는 카메라는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어울릴 만한 그림들을 잡는다. 과학수사 따윈 어림도 없는 열악한 현장 보존, 구경하는 동네 주민들, 비탈에서 넘어지는 수사반장, 시체 주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증거를 밟고 지나가는 경운기... 이 영화가 말하려고 했던 모든 요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장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 한 장면으로 충실히 전달되고 있다. 정보와 의도가 가득 들어있는 전통적 컷 편집과는 달리 이미 사실성을 담보한 롱테이크 촬영은 길이와 장면 내부의 호흡만을 가지고도 이야기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조성할 수 있다.

덤으로 롱테이크는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샷을 잘게 나누고 이야기나 감정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제작 일정과 편의를 위해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 섞인 연기를 하다 보면 배우도 최고/최적의 연기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하지만 롱테이크에서는 한 장면이 연극 무대의 한 장과 같기 때문에 오롯이 몰입하여 배역을 연기할 수 있다. <올드보이> 장도리 액션 씬에서처럼 싸우면서 점점 지쳐가는 배우의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고, <비포 썬라이즈> 대화 씬에서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적으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도 있다.

롱테이크에 필요한 촬영 기술들

간혹 롱테이크로 길게 이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호기심이 발동한다. 저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촬영에 동원된 비법이나 떠올리는 건 작품에 대한 예의는 아니겠지만, 화면 뒤에서 여러 모로 노력한 제작진에 대한 존중은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보며 몇 가지 기술에 대해 알아보겠다. (대단한 비법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특별한 장비가 아닌 이미 흔하게 쓰이고 있는 장비들이기 때문이다.)

삼각대: 너무 흔하게 쓰는 도구라 무시하기 쉽지만 크든 작든 카메라를 흔들림 없이 몇 분씩이나 손으로 들고 찍는다고 생각해보면 이것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찍듯 그림을 그리듯 가만히 세워 두는 것부터 시작해서 상하좌우로 움직이거나 줌까지 동시에 활용하면 굳이 컷을 나누지 않아도 충분히 역동적으로 찍을 수 있다. 많은 예술영화들이 오랫동안 삼각대만 사용한 채 ‘얌전히’ 롱테이크를 촬영했던 과거 사례 때문에 ‘롱테이크 = 지루함’이란 오명을 불러온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올드보이> https://youtu.be/Ufss5ot_vGE?t=55s

스테디캠: 달리는 안정적으로 촬영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사람이 가는 모든 곳에 갈 순 없다. 그렇다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걸어 다니며 촬영을 하면 흔들림이 심해서 보는 사람들은 쉽게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위해 스테디캠이 나왔다. 스테디캠은 일종의 충격 흡수 장치인데 다양한 기술을 동원하여 카메라를 붙잡고 있는 손이나 마운트에 전달되는 충격을 없애는 용도로 쓰인다. 달리 못지않은 안정감을 구현하면서도 달리가 가지 못하는 계단이나 좁은 길, 고르지 못한 지면으로도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배우가 다니는 거의 모든 경로를 따라다니며 촬영할 수 있게 도와준다. 초기에는 장비가 거대하고 무거웠기 때문에 활용도가 떨어져서 많이 쓰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작고 가벼우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성능 좋은 제품이 많이 나와서 달리를 대체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영화에서 기본으로 쓰이고 있다. 배우들의 뒷모습을 담으며 이곳저곳을 드나드는 대부분의 롱테이크 촬영은 이 스테디캠으로 촬영되었다고 보면 된다.

<어톤먼트> https://youtu.be/QijbOCvunfU

지미집: 달리나 스테디캠은 2차원 평면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지미집에 매달린 카메라는 입체적인 촬영을 할 수 있다. 삼각대의 높이보다 훨씬 더 올라갈 수 있고, 달리와 결합하면 전후좌우 위아래까지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점 때문에 역동적인 움직임을 끊지 않고 한 번에 잡기 위해 많은 영화에서 활용하고 있다. 방안을 찍던 카메라가 창문으로 빠져나와 길을 걷는 주인공을 따라 이동하는 식의 움직임도 가능해서 여러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 번에 포착할 때에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더욱 자유로운 촬영을 원하는 카메라맨들은 지상에서 걷다가 크레인에 올라타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 뒤에 다시 걸어 다니며 촬영하는 변종 지미집+스테디캠 기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대사건> https://youtu.be/CJlCYNt2z9k

항공촬영: 비행기나 헬리콥터에서 촬영하는 방법으로 지미집으로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촬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지상 촬영에 비해 상대적으로 촬영의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원거리 샷이나 전지적 시점의 촬영이 아니면 길게 쓰이지는 않으나 때에 따라서 인물에게 다가가는 롱테이크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이탈리아 영화 <리얼리티>나 <맨 인 더 다크>에서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롱테이크 항공촬영 오프닝으로 관객들을 시작부터 집중하게 만들었다.

드론: 기존의 항공촬영은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공간의 제약이 심하고, 헬리콥터로 촬영할 때는 날개가 일으킨 바람 때문에 영상이 부자연스럽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각광받고 있는 소형 무인항공기 드론을 이용하면 기존 항공촬영의 단점 대부분을 극복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운용할 수 있고, 소음이나 바람이 적어 배우에게 가깝게 다가가도 연기에 방해를 주지 않을 수 있다. 또 흔들림 보정(stabilization) 기능이 강화되어 스테디캠처럼 오랫동안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촬영할 수 있고 크기가 작기 때문에 많은 장비를 갖고 다니기 어려운 로케이션 촬영에 최적화되어 있다. 최고의 장점은 작으면서도 고화질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참고 영상의 롱테이크 샷처럼 과거에는 상상만 하던 그림을 한 번에 잡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삼시세끼 어촌 편 1화 (13:00~)’ 참고)

케이블캠: 항공기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항공촬영은 기상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 아직까지는 지상 촬영만큼 정밀한 제어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항공기를 띄우기 어려운 곳에서는 케이블에 카메라를 매달고 촬영하기도 한다. 운동경기가 벌어지는 경기장이나 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는 숲 속에서 인물과 공간을 움직이며 보여주기 위해 줄과 모터가 달린 장치를 이용해서 카메라를 세밀하게 조종하며 촬영을 한다. <반지의 제왕>의 숲 속 질주 씬들 대부분이 케이블캠을 이용해서 촬영되었고, 축구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중계에서도 하늘에서 경기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동안 볼 수 없던 멋진 그림을 잡아내고 있다.

‘축구경기 중계’ https://youtu.be/9E74Dq11vio

그 밖의 기술

지금이야 <마법사들>이나 <러시아 방주>처럼 한 시간이 넘는 롱테이크 촬영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디지털카메라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필름 한 통 분량인 10분 이상을 연속으로 촬영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아무리 긴 롱테이크 촬영도 10분을 넘길 수 없었고, 간혹 그 이상 이어지는 영화가 등장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히치콕 감독이 <로프>에서 한 것처럼 카메라 렌즈 앞을 피사체가 잠시 가리며 자연적인 암전을 만드는 식으로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기록 시간의 제약은 없지만 좀 더 실감 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롱테이크를 구현하고 있다. 장면을 나누어 찍으면 간단하게 해결될 장면을 굳이 한 장면으로 담겠다는 일념 때문에 ‘유사 롱테이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처음에 언급했던 롱테이크를 사용하는 이유와 관련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기술적 과시를 위한 목적도 있으리라 추측한다. 이야기에만 어울린다면 목적이나 방법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CGI(Computer Generated Image). <패닉룸>에는 도저히 촬영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롱테이크 장면이 나온다. 2층 난간 사이로 빠져나온 카메라가 1층으로 내려가서 지미집 촬영처럼 움직이더니 현관문 열쇠 구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이다. 아무리 카메라가 작아도 불가능했을 이 장면은 건축물의 일부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뒤에 절묘하게 합성해서 완성했다. 약간의 특수효과가 들어가긴 했지만 적어도 이 장면은 실제로 끊지 않고 찍기는 했으니 롱테이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따로 찍은 뒤에 하나로 붙여서 ‘가짜 롱테이크’를 구현하기도 한다.

<어벤저스>의 마지막 전투 시퀀스에서는 각 주인공들이 한 공간에서 한 몸이 되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아주 역동적인 롱테이크 촬영을 한다. ‘블랙 위도우 - 아이언맨 - 캡틴 아메리카 - 호크아이 - 헐크 - 토르’의 순서로 카메라가 움직이는데 이동속도나 고도 차이를 감안하면 도저히 촬영이 불가능한 장면이다. 제작진은 이를 구현하기 위해 역시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했다. 각 인물들마다 따로 촬영을 하거나 ‘그린’ 후에 3차원 모델링으로 만든 도시에 넣고 하나로 꿰맨 것이다. 결과물은 보시다시피 관객들이 한눈을 팔 수 없는 멋진 장면으로 탄생했다. https://youtu.be/iG8reLPjAo0?t=428

<버드맨>도 스테디캠을 이용한 롱테이크가 여러 번 나오는 영화다. 얼핏 보면 <플레이어>나 <매그놀리아>의 스테디캠 팔로잉 샷을 연상시키지만 중요한 차이점 하나가 있다. 바로 거울이다. 이 영화에서는 극장이라는 공간적 특성상 거울에 반사된 배우 얼굴을 비추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각도 상 도저히 촬영자가 거울에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게다가 움직이는 스태프들의 그림자를 감추려고 이동식 조명기와 디퓨전까지 운영했다고 하니 거울에 비칠 사람들 숫자도 한 두 명이 아니다. 제작진은 ‘일단’ 찍은 뒤에 후반 작업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배경을 거울에 갖다 붙였다고 한다. 그밖에는, 카메라가 벽을 패닝할 때마다 컷을 바꾸는 <로프>식 장면 전환 기법을 사용해서 영화 전체가 한 시퀀스인 것처럼 찍기까지 했다고 하니 첨단기술과 구식 기술을 적절히 사용한 멋진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7O8wiwu0elA

*(2020년 추가 내용)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을 받은 전쟁영화 <1917>도 장면을 바꾸지 않고 롱 테이크로 찍은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로프>나 <버드맨>처럼 갖가지 아날로그/디지털 기법으로 최소 35개의 컷을 교묘히 이어붙인 영화다. 그래서 원 테이크 영화라 부르지 않고 '컨티뉴어스 숏 continuos shot' 영화라고 홍보하고 있다. 진짜 원 테이크 영화는 아니지만 뭐가 중요하겠는가. 주인공의 감정과 관객의 몰입감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면 그걸로 충분한 것을.

(언제 장면이 바뀌는지를 친절히 알려주는 글 https://screenrant.com/1917-movie-secret-cuts-one-shot-trick-scenes-where )

(언제 장면이 바뀌는지를 친절히 알려주는 영상 https://youtu.be/ZAQoY3ioci0)

<1917> 촬영 중

롱테이크? 원테이크!

지금까지 롱테이크를 사용하는 이유와 롱테이크 촬영을 위해 필요한 기술 몇 가지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롱테이크여야만 할까. 다른 방법으로도 의미와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면 굳이 롱테이크를 쓰지 않아도 될 텐데 왜 그렇게 힘들게 고생해야 할까. 수많은 스탭과 배우와 촬영장 주변 상황 중에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처음부터 다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왜 굳이 그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아마도 그건 제작진과 출연진의 욕심 때문이 아닐까. 서로에 대한 굳은 믿음을 바탕으로 수없이 연습한 성과물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의욕, 연기를 하며 촬영을 하며 딱 한 번만 맛볼 수 있는 최고 순간의 감동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겠다는 고집, 혹은 장인정신. 그것이 있기에 롱테이크가 가능하고 의미 있는 것이리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 번쯤은 멋진 롱테이크 샷을 찍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