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루엘라》Review
# 영화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다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패션은 미묘한 게임입니다. 옷으로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고, 어느 정도 유행의 물살을 타야 하지만, 그 한가운데 있으면 지루한 취급을 받습니다. 태양과 가까이 날면 날개가 녹고, 바다에 가까이 날면 날개가 젖어드는 이카루스의 비행처럼, 허용된 좁은 영역에서 될 수 있는 한 아름답게 비행하는 것이 패션의 아슬아슬한 목표입니다.
《말레피센트》부터 디즈니는 영화의 주인공 자리에 이전 작품의 빌런들을 올려두기 시작했습니다. 디즈니의 초기작 애니메이션은 선악 구분이 명확해, 빌런 자리의 인물은 누가 보더라도 미운털이 박힐 만한 평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인물에게 주인공 자리를 부여하며 관객과 거리를 좁히는 동시에, 빌런으로써의 정체성을 납득할 수 있도록 모난 성격을 부여하는 것 역시 패션만큼이나 미묘한 작업입니다. 그리고, 크루엘라의 두 시간이 넘는 짧지 않은 패션쇼는, 보는 내내 즐거움을 준 성공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루엘라와 에스텔라는 서로 다른 인격처럼 묘사되지만, 상대적으로 순종적인 에스텔라 역시도 남작부인의 밑에서 일한 때를 제외하고는 사회에 순응적인 적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학교에 힙한 재킷을 입고 갔다가 남자아이들한테 시비를 당하고, 엄마가 잠깐 파티에 참석한 사이에 드레스에 끌려 자기 마음대로 파티장을 돌아다니는 등 반항아 기질은 그녀의 근본입니다. 여기서부터 그녀는 패션에 끌리고, 패션으로 자기를 드러내는군요.
그녀를 보는 불안의 시선이 바뀌는 이유는, 그녀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은 남자랑 싸워서 이기네? 저택 경비를 뚫고 잘 탈출하네? 같은, 소소한 반전에서부터 그녀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도둑 집단에 너무나 잘 적응하며, 그녀가 가진 패션 재능을 활용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그녀에 대한 걱정을 접어두고, 도둑 친구 재스퍼가 느낀 그녀의 재능에 대한 아쉬움을 같이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착하다거나, 정의롭다거나 하는 명분 없이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주인공으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관객이 그녀의 편에 서고, 이야기가 진행되며 남작 부인이 악역으로 자리 잡았을 때부터, 본격적인 크루엘라의 패션쇼가 시작됩니다. 좀도둑 시절에서부터, 지능적인 작전을 계획하던 그녀답게 그녀는 단순하게 시선을 끌지 않습니다. 그녀의 도둑 크루와 함께 파격적인 옷뿐만 아니라, 계산된 쇼맨십을 더하여 영화 안에서는 관심과 예찬에 목마른 남작 부인에게서 대중의 시선을 한 번에 뺏어 오고, 영화 밖의 관객들에게는 청량감과 눈의 즐거움을 줍니다.
또한 자만이 과해서 불편함을 주는 남작 부인을, 크루엘라는 항상 앞서 있습니다. 특히 남작부인의 메인 패션쇼에 벌레를 푸는 연출은, 남작 부인이 수 싸움 역시 크루엘라의 손바닥 안에서 펼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이 악역을 이겨먹는 이야기야 널리고 널렸지만, 때려 부수는 연출 하나 없이 심리전과 화려함만으로 이런 청량감을 쉽게 느끼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루엘라의 상징은 은발과 흑발이 반반 나눠진 그녀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헤어스타일 때문에 특이한 아이 취급을 받았고, 우리도 반반 나눠진 헤어를 보며 그녀의 특별함을 부연설명 없이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좀 더 꼼꼼히 보자면, 반반 나눠진 그녀의 헤어스타일처럼 그녀의 정체성도 두 가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알다시피 그녀의 생활은 반반 헤어 크루엘라와, 붉은 머리 에스텔라 두 가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물론 에스텔라 역시 좀도둑이긴 하지만, 그녀의 도둑 크루에게 좋은 친구이자 파트너 역할을 하고, 백화점부터 남작 부인 밑에서 일할 때까지 성실하고 우수한 일꾼의 역할을 해 냅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에 분리되는 크루엘라라는 인격은, 에스텔라보다 훨씬 화려하게 그녀의 재능을 발휘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만, 안하무인의 행동으로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도둑 크루에게 상처를 줍니다.
이 양면성이 주인공에게 매력을 더해 주고, 남작 부인 앞에 크루엘라로 등장하는 모습 등은 영화를 더욱 짜릿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녀가 크루엘라로 변하며 마음속에 복수심을 피워낸 것은 이해가 되나, 그녀의 똘끼 혹은 그녀가 도둑 크루에 차가워진 정도는 완전히 설득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에스텔라와 크루엘라의 대비를 가장 크게 느낄 도둑 크루에게 태도를 보면, 그녀가 변했구나 라는 인식보다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양면성이 아주 매력적인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크루엘라의 머리 색을 보면서 동양의 음양 대비가 생각났고, 크루엘라와 에스텔라의 어원도 잔혹함과 별빛이라는 상반된 뉘앙스를 띄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모두가 알만한 《 101마리 달마시안 》의 프리퀄이지만, 그 영화의 빌런 크루엘라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상 다른 인물입니다. 프리퀄로써 미약한 연결 고리를 오히려 더욱 줄이고, 그녀의 양면성을 조금 더 짜릿하게 보여 줬다면 훨씬 더 짜릿한 영화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 부분이 크게 와닿는 것은 아니고, 매력적인 배우가 수준급으로 연기하는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화면을 채우는 화려한 패션의 향연 덕분에 두 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임에도 지루함 없이, 오랜만에 스크린을 채운 화려함을 원 없이 즐기고 온 영화였습니다. 빌런이 주인공인 영화라는 미묘한 패션쇼를 잘 해낼 능력이 디즈니한테 충분하다는 것을 느꼈고, 다른 매력적인 후속작 역시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