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운동하는 체육관에서 내 아이가 다닌 지 몇 주만에 또래 아이들과 말을 트고 친해진 날. 전화번호를 교환하는데 내가 내 번호와 함께 <내 이름+아이 이름> 순서로 입력해주었으나! O.M.G! 그걸 받아 든 아이가 내 이름을 바로 삭제하더니 'OO 엄마'로 수정한 후 저장 버튼을 '띡' 누르는 거다. 지져쓰! 아이들까지 여자들의 이름을 삭제해버리다늬!! 그래도 난 내 이름을 쓸 것이고 저런 실수를 하는 아이가 있으면 잘못된 것이라 계속 말해 줄 거다. 학교 담임, 방과 후 교사, 과외 선생님, 아이들 친구들 엄마들에게도 나는 내 이름을 말하고 메시지 마지막에도 항상 밝힌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가장 이상 현상의 기형적 호칭은 아이 이름이 들어간 <OO 언니>다. 나의 경우는 남자인 아이 이름 뒤에 <언니>가 붙어진 채 불리는 식이다. WTF. 친한 친구 엄마들에게 <이모>하고 부르는 호칭도 이해가 안 가는데, 수년 전 처음 <이든 언니>로 불린 날 난 얼굴에 티가 날 까 봐 발가락에 온 힘을 다해 주먹 쥐듯 오므려 최대한 당혹스러움을 감추려 애썼다. 다들 그렇게 부르고 불리는 상황에서 내 생각을 설파하고 강요했다간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 되기 십상이라 꼬리를 내리고 똬리를 틀어 감추었다. 우리 한국도 상대방을 호칭할 때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정착해야 한다. 온대 간데없는 엄마들, 며느리들, 아내들의 이름이여.
그림=Artist @jakerobindavies 오전에 이 글을 썼고, 조금 전 며칠간 그린 내 얼굴을 완성했다며 보여준 작가님 작품을 함께 기록한다. (2021.4.20)
오래전 한 번의 설득과 약간의 푸시로 어릴 때부터 친한 아이들 부모들과는 그래서 서로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여기까지. 학교에 입학하고 눈인사 정도 혹은 몇 달에 한 번도 어렵게 만나 어울리는 상황에선 이런 내 생각을 설파하기엔 역부족이고 나만 '별난년'이 돼버리는 사회다.
보통 직장에서는 <김 과장> <서 교수>처럼 대부분 성과 직급이 붙어져서 불리거나 신생 스타트업의 경우는 닉네임이나 그 사람 이름 뒤에 <님>이란 걸 붙이거나 할 터다. 퇴근하는 순간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반면 맞벌이를 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OO 엄마>로 신분과 호칭이 바뀌어 직장에서 퇴근을 하는 동시에 육아 출근이 시작된다.
나는 내 사업자의 대표임에도 인터넷 설치 기사, 벽지 기술자, 가스 검침, 하수구 청소 사장님 등에게 <사모님>이라 불린다. 기업용 인터넷 설치를 하면서 내 이름이 대표자로 표기된 사업자등록증과 함께 계약서를 작성하는 한 시간이 넘는 순간에도 <사모님>으로 불렸고, 당시 무직이었던 배우자는 <사장님>으로 불리는 이상 현상 혹은 게으른 지정 호칭이 오가는 상황을 맞닥드려야 했다. 이해불가다. 고음불가처럼 타고난 한계로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닌데 말이다. 상대를 상대의 이름으로 부르면 될 일을. 가족과 자식에게 희생해야 하는 여자들의 삶을 당연시 여기는 오래된 문화가 이름을 잃고 또 잊게 만들어 버렸다. 세대를 거스르며 계속되고 있는 여자들의 이름이 잊히는 현상을 경험한 주말의 기분을 쓰자니 씁쓸하구나.
어젯밤 푸시업 좀 했다고 하루아침에 식스팩 복근이 생기지 않는 진리. 영어 공부 3개월 진짜 열심히 했다고 원어민과 똑같을 수 없는 현실. 주 1회 바이올린 레슨 받은 게 1년이 넘었다고 해서 <헨리>처럼 신들린 천재의 모습과 실력으로 연주할 수 없는 사실. 성인이 되어 수년씩 취미 발레를 하거나 요가를 했다고 해서 발뒤꿈치가 뒤통수에 닿을 순 없지 않은가. 간혹 한둘 은 할 수도 있겠지만, 매우 적은 확률일 터. 운동도 언어 공부도 기를 쓰고 잘하고 싶어서 돈도 내고 시간도 내어 노력해도 시간이 아니 세월이 흘러야 뭔가 조금씩 이루어지거늘. -뭔가 심오하고 답답함이 밀려오니 말투가 사극이로다._무심코 상대를 부르는 호칭에 '이름을 부르고 말 거야!'를 다짐하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 노력하지도 아니할 것임을 알기에 고정관념, 성별을 떠나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자리 잡기를 바랄 뿐이다. 마이크로 먼지 같을 테지만 나는 항상 일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