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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지식박사 Apr 11. 2024

나의 노동

마라톤 글쓰기(1) - 돈의 가난과 시간의 가난 사이에서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중.



나는 월 130만원을 번다.

주 5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한다.

일하는 날은 일 5.5시간, 휴식시간 30분 포함 오후 3시부터 8시 30분까지 근무한다.

통근 시간은 왕복 2시간.


월 130만원으로는 ‘살 수 있는’ 정도다. 아끼고 아끼면 다음 달 월급이 들어올 때까지 쓸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할 일은 없다. 하지만 저축은 전혀 하지 못하고, 모아놓은 돈도 없어서 아프거나 사고가 생기면 큰 일이라는 걱정은 있다.


돈은 전방위적으로 아낀다.

주거비는 다행히 월세가 아니라 전세여서(중소기업재직청년전세대출 만세!) 주거비로는 전세대출 이자만 월 12만원 정도 나간다.

식비도 많이 아껴야 한다. 집에선 밥을 해 먹고, 출근할 땐 가능하면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좀 질리거나 도시락을 싸지 못한 날에는 한솥에서 4,800원짜리 ‘돈까스 도련님 도시락‘을 사 먹거나, 한솥이 문을 안 연 날에는 편의점 도시락(김혜자 도시락 만세!)이나 김밥을 사 먹는다. 야식은 자주 먹지만, 동네 빵집에서 싸게 파는 빵을 사와서 먹거나, (컵)라면, 토스트, 만두 같은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걸로 먹지 치킨을 시키는 일은 없다. 외식은 한 끼에 1만원이 넘어가기 일쑤여서, 자발적으로는 거의 하지 않는다. 아낀 돈은 홍예당 사람들과 먹어야 하거나 친구를 만날 때 써야한다.

옷은 거의 사지 않는다. 사더라도 탑텐이나 유니클로 같은 곳에서 오래, 자주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산다. 그래도 계절이 바뀌고 귀여운 옷이 눈에 들어오면 사기도 하는데, 살 때마다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미용실도 안 간다. 19,000원짜리 전기 이발기를 사서 화장실에서 거울 두 개로 직접 깎는다.


아끼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연애(다른 이유도 많지만), 평생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개 키우기, 따뜻한 남쪽 나라로의 휴가, 문화생활비 지출(넷플릭스랑 왓챠만 4인팟 만들어서 보고 있다. 영화 보러도 안 가고, 책도 안 산다), 비싼 음식점에서 돈 값 하는 음식 먹기 등.


저축이든 보험이든 돈이 남아야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안 한다. 주택청약저축은 옛~날에 해지하고 다시 가입하지 않았다. 아프거나 다쳐서 병원 신세를 져야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자가가 없어도 괜찮은 걸까 잠깐씩 고민하기도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아서 금방 그만둔다. 이런 건 나라가 책임져야 마땅한 거니까 그런 상황이 되면 그냥 죽어버려야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가끔 통장 잔고가 0이 될 때면 가슴 한 쪽이 내려앉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돈을 더 벌면 되잖아?”


월 200을, 그보다 더 벌 수도 있다. 풀타임으로 일하면 최저임금 일자리여도 200은 벌고, 학벌이든 시민사회활동 경력이든 잘 포장하면 그보다 더 주는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다는 거다.


일단은 주 5일 하루 8시간 일을 한다는 게 너무 지친다. 예전에 풀타임 직장을 다녔을 때 확실히 느꼈다. 시 외곽에 사는 나는 왠만한 일자리는 다 통근 시간이 왕복 2시간이 넘는다. 저번 직장은 3시간이었다. 7시쯤 일어나 8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서고, 7시 반쯤 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 먹고 티비를 켜면 9시가 넘는다. 하루에 9시간은 자야하는 나는(9시간은 결코 많이 자는 게 아니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니까, 오로지 나만의 시간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은 밤 9시부터 10시까지 1시간 뿐이다. 물론 그 시간에 뭔가 다른 걸 할 수는 없다. 지쳐서 티비 보면서 멍때리는 것 외에는.

규칙적으로 운동할 시간도 없고, 혼자사는 집을 치우거나, 요리를 하거나, 키우고 있는 식물을 돌볼 시간도 없다. 사람을 만날 시간도, 강아지를 키울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렇게 빨래도 청소도 못한채 더러워지고 있는 집을, 싱크대에 쌓여가는 설거지거리들을, 죽어가는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돌봄 없이 방치되고 있는 건 집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이 모든 행복의 유예를 내 월급이 보상해줄 수 있나?’

그런 생각을 안 하는게 오히려 더 이상한 거 아닐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

  ‘주말 있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다. 근데 남들이 어떻든 나는 이게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느낀다. 오히려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가 의아하기만 하다. 운동은 하고 사나? 가사노동은? 취미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 수 있나? 책임있는 시민으로서 사회문제에 관심도 갖고 참여도 할 여유는?


시간의 가난도 가난이다. 돈을 아무리 벌어도 자기 시간도 없이 살면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버티는 건 행복을 유예하는 건데, 그렇게 유예만 하다가 늙어 죽는 게 대한민국의 ‘평범한 삶’ 아니던가.

제일 좋은 건 돈도 넉넉하게 벌고 시간도 많은 거겠지만, 그런 조건은 아무에게나(혹은 아무 일에나) 허락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냥 가난하지 않은 정도로만 벌면서, 내 삶을 지키고 있다.


월 130을 버는 삶은 여유롭다. 9시쯤 일어나서, 소파에 앉아서 TV보며 느긋하게 아침 먹고, 운동 갔다가, 집에 와서 점심 먹고 출근, 3시부터 8시반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와 쉬다가 자고 싶을 때 자는 삶. 하루 8시간이 아니라 5시간 밖에 일하지 않아서 월급도 그만큼 줄지만, 돈의 가난이 시간의 가난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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