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집에 스테로이드 연고 있어요."
아이 피부 때문에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하려고 하면 가끔 듣는 이야기다.
"어떤 연고인지 이름을 아시나요?"
"아, 그 뭐지.. 뭐더라... 그 하얀색 튜브에 짜서 쓰는 건데..."
그렇다. 이 정보만으로 어떤 연고인지 단정 짓기엔 부족하다. 나는 슬쩍 미끼를 던져본다.
"혹시... 리도멕스?"
"아! 네, 맞아요. 그거!"
역시나다.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냉장고나 구급상자에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만한 연고, 바로 '리도멕스'다.
도대체 리도멕스는 어쩌다 이렇게 엄마들 사이에서 대중적인 '국민 연고'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이 글은 리도멕스 광고글도 아니고, 제조사인 삼아제약과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다만 리도멕스라는 친숙한 약을 통해 환자분들의 스테로이드 연고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 더 높여보고자 작성한 글이다.
1. 1988년생, 꽤나 긴 역사를 가진 연고
리도멕스는 사실 1988년에 국내에 출시된, 상당한 역사를 지닌 연고다.
원래는 일본의 대표적인 위장약 '카베진'으로 유명한 *코와(Kowa)사*에서 개발하여 1982년에 출시한 제품이다. 이를 우리나라의 삼제약에서 기술 제휴를 통해 들여왔다.
2. 이름의 비밀: 리도멕스(Lidomex)는 무슨 뜻일까?
리도멕스라는 이름의 정확한 어원은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약의 성질을 통해 합리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바로 **Lipophilic(친지질성) + Max(최대)**를 합친 말이 아닐까 싶다.
Lipophilic: 기름을 좋아하는 성질
Max: 이를 극대화했다는 뜻
즉, **"기름과 친한 성질을 극대화해서 피부 흡수 속도를 높이고, 빠르게 증상을 호전시킨다"**는 자신감이 담긴 작명인 셈이다.
3. 흡수가 잘 되는 비결 (feat. 두 개의 꼬리표)
실제로 리도멕스의 주성분인 **'프레드니솔론 발레로아세테이트(Prednisolone Valeroacetate)'**의 구조를 뜯어보면 그 이름의 이유를 알 수 있다.
기본 뼈대인 '프레드니솔론'은 원래 물을 좋아하는 성질(수용성)이 커서, 기름막(피지)으로 보호받는 우리 피부를 잘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여기에 두 가지 화학적 장치를 달았다.
발레레이트(Valerate): 긴 탄소 사슬로, 약물이 기름에 잘 녹게(지용성) 만들어 피부 장벽을 쉽게 통과하도록 돕는다.
아세테이트(Acetate): 일종의 부스터 역할을 하여 투과 속도를 더욱 증가시킨다.
결국 이름처럼 지용성을 끌어올려 빠른 흡수를 유도하고, 피부 겉에서는 강력하게 작용하되 체내에서는 분해되는 설계를 통해 소아에게도 쓰기 적합한 연고가 탄생한 것이다.
4. '순한 연고'의 배신? 등급의 재조정
출시 초기, 리도멕스는 스테로이드 강도 1~7단계 중 가장 약한 7등급으로 분류되어 약국에서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었다.
가장 약하다는 7등급(하이드로코티손 등)과 비슷한 순한 등급인데, 실제 써보면 효과가 훨씬 좋았다.
"순한데 엄청 잘 듣네?"라는 입소문을 타고 엄마들 사이에서 필수템이 된 이유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등급 분류가 잘못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실제 리도멕스의 강도는 7등급이 아니라 5등급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2021년, 역가 재평가를 통해 리도멕스는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되었다.
현재 우리가 원래 쓰던 파란색 리도멕스(0.3%)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구매가 가능하고,
성분 함량을 절반으로 줄인 0.15% 제품만이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남게 되었다.
5. 그렇다면 리도멕스가 최고의 연고일까?
소아 환자 보호자분들께 "리도멕스 처방해 드릴게요"라고 하면 다들 안심하시기에, 의사 입장에서도 편한 약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무조건 '가장 좋은 약'은 아니다.
리도멕스 이후에도 과학은 발전했고, 더 진화된 형태의 스테로이드들이 개발되었다.
대표적으로 프레드니카베이트(더마톱)나 메틸프레드니솔론 아세포네이트(아드반탄) 같은 약물들이다.
이들은 리도멕스보다 효과는 더 좋으면서(강도 높음), 부작용 위험은 오히려 낮춘(안전성 높음) 개량된 약물들이다. 성인이나 증상이 심한 소아에게는 리도멕스보다 이들이 더 좋은 선택지가 되기도 한다.
마치며
스테로이드 연고는 병변의 위치, 피부의 두께, 환자의 나이, 염증의 정도 등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골라야 하는 정밀한 무기다.
세상에 **'가장 좋은 약'**은 없다. 나의, 혹은 내 아이의 피부 상태에 맞는 **'가장 적합한 약'**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