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3일째 저녁
242.
디렉트 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 난 그 뒤로 B급 영화에 출연을 하다가 성인배우를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거라구. 어때? 나의 이야기 말이야.
마동은 소피의 긴 이야기를 듣고 무게감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누르는 것을 느꼈다.
소피는 고독과 외로움을 어떤 식으로 견뎌내고 있는 것일까.
어린 나이에 소피는 비참한 행위를 당했고 자아를 잃어버렸으며 그것을 자기만의 (어떠한) 방식으로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소피는 자신만의 형태를 만들어서 암울했던 기억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고 애썼을 것이다.
디렉트 메시지: 글쎄, 나 지금 말이야 최초에 감기가 걸린 기분이야. 감기가 걸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분명히 팔다리가 멀쩡하게 붙어있지만 프라모델 조립을 잘하는 이가 내 팔다리를 뜯었다가 엉망으로 붙여 놓은 것 같은 기분, 그런 기분이야 지금.
디렉트 메시지: 그런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동양의 멋진 친구. 하하.
소피가 웃음을 띠었다. 아마 마동의 기분을 알려고 다가왔다가 몰라서 나오는 웃음일 수 있었다. 아니면 위배의 웃음일지도 몰랐다.
디렉트 메시지: 소피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에 합리적으로 보이는 모순성을 느껴서 몸이 떨렸어. 소피? 어째서 나에게 떠올리기 싫은 치부를 들려주는 거지?
디렉트 메시지: 이봐, 동양의 멋진 친구. 친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친구는 나를 다른 남자가 나를 생각하듯 생각하지 않는다고 봐. 어쩌면 동양의 친구도 남자니까 나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상관없어. 내가 당신을 친구라고 믿어버렸기 때문이지. 친구에겐 그런 이야기쯤 털어놓는다고 내 생활이 망가진다거나 피해가 오지 않아. 오히려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나는 만족해. 나도 동양의 친구에게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걱정하지 말라구.
소피는 말을 이었다.
디렉트 메시지: 시간이 지나서 깨달은 게 있었어. 그때 블랙우드가 한 말이 어쩌면 맞았어. 꼭 왓치맨을 보는 거 같아.
디렉트 메시지: 왓치맨?
라고 마동은 물었다.
디렉트 메시지: 왓치맨에 코미디언이 나오잖아. 그는‘선’의 편이지만 어쩐지‘선’이 아니야. 그건 악마, 악의 모습이야. 본능적이고 폭력적이지. 누구 하나 코미디언을 착하게 보지 않아. 모순이지. 그런 코미디언을 낳은 코미디언의 엄마 역시 악이었을까. 알 수 없지. 결국 코미디언은 악의 모습으로 실크 스펙트를 강간하지. 그 둘 사이에‘제인’이 태어나잖아. 그리고 제인은 가장 선한 편에서 선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야. 닥터 맨해튼을 정신으로 지탱해주지. 코미디언이라는 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제인이라는 선한 모습이 탄생하지 않았다는 거지. 제인은 무모순성의 모습을 띠는 거야. 선과 악이란 정말 모호한 거야.
마동은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었지만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손가락의 마디가 평소보다 크게 보였다. 손가락의 마디에도 변이가 영역을 뻗었는지도 모른다. 손가락의 마디는 다가오는 변이에 억제력을 보이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져 변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고스란히 내주었는지도 모른다. 소피가 다시 디렉트 메시지를 보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