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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02.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62

10장 4일째

262.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은 나이가 들어 죽음에 다가갈수록 인기가 하락했으며 사회는 그런 인간의 상승과 하강을 보며 조롱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람들의 지식은 올랐지만 의식은 밑바닥에서 머무르고 있었고 상상력의 고갈은 가족 간에도 칼부림을 만들었다. 현대판 고려장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일각에서는 죽을 때가 되면 알아서 죽음을 찾아가자는 소리까지 나왔다. 자본주의는 죽음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과 젊음은 추앙하는 반면 죽음과 죽음에 가까워지는 인간은 싹둑 배제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자본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나이가 든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되찾기 위해 꿈 리모델링 회사를 찾는 것이다. 꿈을 다시 되찾고 또는 그 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어둡고 질척한 죽음에 이르렀다고 마동은 생각했다. 몸에 푸른 불꽃으로 어딘가로 떨어질 때 휑한 눈으로 마동을 바라보았던 악취 가득하고 더러운 그림자들에게 둘러 쌓였었다.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죽음’ 그것이었다. 마동은 그 죽음이 가득한 암흑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면 천국은 없더라도 지옥은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폭행을 일삼는 멀쩡한 정신의 소유자들 때문이라도 지옥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법망을 피하고 잡혀 들지 않는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죽고 나면 지옥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완전히 불구덩이 속에서 뼈가 익어가고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푸른빛의 불꽃은 욕망과 본능이 응축된 불꽃이었다. 마동은 퀭한 두 눈의 더러운 그림자들 틈 속에서 죽음에 닿았다고 생각했을 때 이곳이 지옥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다행이었다. 마동은 철도청의 파업 소식을 잘못들은 자신 때문에 친구들이 죽었다고 생각했기에 마동은 죽은 후 지옥으로 가야 마땅했다. 몸이 뜨거워져 즉각적인 대처도 하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눈을 뜬 이곳은 지옥은 아니었다. 적어도.


 낯선 곳에 누워있었다. 침 대 위.


 낯선 곳이지만 낯설지 않은 이 곳, 여기는 어디일까.


 마동의 뜨거웠던 몸도 다시 정상적인 체온으로 서서히 돌아왔다. 마동은 옥상의 난간에 앉아서 새벽에 밝아오는 것을 맞이하다가 몸이 뜨거워졌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없었다. 뜨거워진 다음에 어떠한 이유로 암흑 속으로 떨어졌다. 마동의 머릿속에는 최원해 부장과 산속을 조깅하다가 철탑 밑에서 쓰러져 기억이 없을 때처럼 그 부분이 몽땅 누락되어버렸다. 대신 누락된 부분에 실제로 느껴지는 다른 가설이 들어와 거리를 메꾸었다. 단순히 악몽이 아니었다. 무의식 속에서 무엇인가 이루어진 곳이다. 눈을 뜨고 낯선 곳에 누워있었지만 몸이 뜨거웠던 것은 진리에 가까운 현실이자 사실이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그녀는 마동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옥 속에서 마동에게 손을 뻗어온 것이다. 그곳까지 마동을 데리러 온 것이다.


 하지만 정말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었을까.


 그녀의 얼굴은 는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애당초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는개가 나를 구하려고 온 것일까. 왜 그랬을까. 어째서 는개의 모습이었을까. 도대체 왜 는개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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