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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03.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63

10장 4일째

263.


 떨어지는 암흑 속에서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손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인지 는개의 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뿌옇게 흐려져 안과에서 치료를 받은 첫날 보는 세상처럼 뚜렷하게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마동은 낯선 방에서 눈을 감고 치누크가 불어오던 강변의 대나무 숲의 벤치에서 안았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떠올려보지만 크로노프 손목시계를 해부한 모습을 떠올리듯 막막하기만 했다. 그녀의 얼굴을 지우개로 뭉개 놓은 것처럼 윤곽이 살아나지 않았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에 대한 기억이 점점 추억처럼 엷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징성을 띠고 여기까지 와 여기서부터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생김새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에 칼질을 잘하는 칼잡이가 기억을 싹둑 잘라서 가져가 버린 것이다. 거짓말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떠올리면 는개가 생각났다.


 마동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이곳이 어디인지 두리번거렸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동안 팔이 움직이고 다리가 움직였지만 마동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무지의 힘에 의해서 팔다리가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군.


 두 팔로 침대의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은 마동의 몸을 겨우 일으켰고 그 느낌은 상당히 불온했다. 등을 옆으로 돌리고 상체를 천천히 일으키는 동작은 마치 처음 가동하는 기계가 작동하는 것처럼 기기긱 하며 위태롭게 움직였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동은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누가 이곳으로 옮겨 놨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소용없는 것에는 온 힘을 다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언젠가 와 봤던 곳일까. 아니면 꿈속에서 보았던 곳일까.


 질문 모두가 다 허공에 떠 있는 담배연기처럼 의미 없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마동은 이러쿵저러쿵 생각 자체를 그만두었다. 생각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황의 변화도 없었다.


 참 난처하군.


 오로지 생각밖에 없는 상황은 자신을 난처한 구석으로 몰고 가기만 할 뿐이었다. 마동은 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어두운 방안에 붉은 빛깔의 다운라이트 조명이 천장에서 열심히 방안을 밝히고 있었고 창문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하얀색으로 된 벽면은 붉은빛을 띠는 다운라이트 빛을 받아서 엷은 붉은색을 띠었다. 방은 3명 정도가 앉으면 꽉 들어찰 정도로 작은 방이었으며 한쪽 벽에 간이침대가 붙어있었고 마동이 그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시간이 몇 시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마동은 주머니를 뒤졌지만 휴대전화도 시계도 없었다. 얇은 여름용 트레이닝팬츠와 폴로 반팔 티셔츠를 입고 옥상으로 올라간 그 모습 그대로 이 방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옷은 마동이 입고 간 옷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동의 몸을 타오르게 만들었던 불꽃이 사라짐과 동시에 입고 있던 옷은 재가 되어 허공에서 소멸했다. 누군가 마동에게 옷을 입힌 것이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


 맞은편에 보이는 문으로 가려고 일어나려 했지만 아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침 문 건너편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문손잡이를 돌리는 소리가 났다. 미묘한 긴장의 끈이 머리를 치고 경추를 건드렸다.


 누구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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