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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0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64

10장 4일째

264.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분홍 간호사였다. 간호사?라고 마동은 머릿속에서 되뇌어보았다. ‘다행’과‘불안’이 서로 맞물려 머리를 건드렸다.


 “네, 저예요. 놀라셨어요? 저도 놀랐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이만하니 말이에요”라고 간호사는 분홍 미소를 띠며 말했다.


 뭐가 다행이라는 걸까?


 마동은 생각했다. 마동이 생각을 하면 분홍 간호사는 알아서 대답을 했다. 무의식적 작용 반작용의 법칙.


 “몸에 이상은 없어요. 곧 평소처럼 일어나서 움직이게 될 거예요.” 분홍 간호사는 여전한 분홍 미소를 지었다. 마동은 간호사가 하는 말 중에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곧 평소처럼 걸어 다닌다’고 말하면 더 좋지 않을까. 간호사는 아무런 의미 없이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마동은 그 말에 어쩐지 언짢았다.


 하필 벌레처럼 움직이게 된다고 들리는 것일까.


 분홍 간호사는 방으로 들어와서는 신속하게 들고 온 주사기에 공기를 뺀 후 마동의 팔에 주삿바늘을 망설임 없이 꽂았다. 분홍 간호사의 손가락 끝의 분홍 매니큐어가 조금씩 움직이더니 주사기 안의 약물이 마동의 혈관 속으로 퍼져 들어갔다. 분홍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이 주사는 억제제입니다. 괜찮아요. 마동 씨는 지금 이걸 맞지 않으면 심각하고 뜻하지 않는 변이가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이제 곧 선생님께서 들어오실 겁니다. 그리고 목이 마르시면 저기 놓인 주스를 마시세요.”


 뜻하지 않는 변이?


 분홍 간호사는 어쩐지 풍만함이 사라졌다. 얼굴은 같은 얼굴이었지만 지금 이전의 분홍 간호사에 비해 이제 막 본 분홍 간호사는 그녀만의 풍만함이 물 빠진 오이처럼 빠져나가버렸다. 분홍 간호사가 지닌 풍만함은 금세 빠져나가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간호사가 지닌 풍만함이 빠져버리니 간호사는 고독한 여자처럼 보였다. 풍만함은 그 나름대로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달력 속의 수영복 차림의 모델보다 보기 좋았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주사를 놓는 간호사의 웃음에서 고독을 보았다. 행복하면 불안해지는 것처럼.


 간호사가 보인 고독 역시 일반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고독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고독이 곰팡이처럼 퍼질 것 같았다. 아니면 그동안 마동이 잘못 본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풍만하지 않았지만 풍만함이 간호사라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 믿을 것은 못 된다. 마동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동은 분홍 간호사가 자신의 몸 위로 올라와서 간호복을 벗었던 생각을 했다. 지금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 적절한지 그렇지 않은지 불확실하지만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분홍 간호사의 풍만함이 빠져나간 것이 자신의 잘못인양 마동은 책임을 느꼈다. 분홍 간호사는 마동의 생각을 읽었는지 살이 좀 빠졌어요, 라며 분홍 미소와는 다른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흠.


 분홍 간호사는 숙달된 솜씨로 주사기의 머리 부분을 눌러 억제제를 투여하고 바늘을 빼고 솜으로 그 자리를 꾹 눌렀다가 솜을 버리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 모든 행동이 흐트러짐이 없었고 동작 하나하나가 얼음판 위에서 썰매가 미끄러지듯 이루어졌다. 신속하게 할 일을 끝내고 방에서 불필요한 소리를 내지 않고 사라졌다. 주삿바늘이 들어올 때는 예기치 못한 따끔거림이 있었다. 주삿바늘의 따끔거림은 꿀벌에게 쏘였을 때의 따가움과는 전혀 다르다. 바늘도 역시 쇠붙이다. 뾰족한 쇠가 피부를 뚫고 들어와서 사람들을 착각하게 만드는 봄바람과 흡사했다. 두꺼운 외투를 벗어볼까. 하며 봄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당황하게 만드는 따끔거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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