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수기

단편소설

by 교관



서울 1964년 겨울 수기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오마주]

그들을 만난 건 저에게는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하고자 하는 말을 내뱉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대로 죽어 버렸을 겁니다. 영원히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묶인 채 소멸한다는 것은 몹시 서글프고 슬픈 기분입니다. 그들과 같이 술을 마신 술집 벽 달력 속의 아가씨는 ‘그러니까’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제 아내와 달력 속 여자와 매치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지만 저는 여자의 형태만 봐도 아내가 떠오릅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을 만나서 기뻤던 것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개념이 다른 모두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과 다를 거라는 불안이 저를 불면의 세계 속으로 이끌었는데 저의 불행이 다른 이들의 불행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드는 좌절을 그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어서였습니다.


저는 워낙에 가난하게 자랐기에 먹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이 제일 큰 것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면 괴로움은 없는, 그런 하등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그렇게 큰돈은 그만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나 생각을 할 수 없게 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세브란스 병원에서 돈을 받고 병원을 나왔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아내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만 깨닫고 말았습니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시체인 아내를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낮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밤이 되면 내 시선 앞에서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 송두리째 드러내 놓고 쩔쩔매는 꼴을 저는 알 수가 있습니다. 저의 죄악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며 무릇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많은 돈을 다 써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내겠습니다.


그들의 웃음 속에 깊은 어둠과 음란함이 서려 있는 것은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이해는 합니다. 그들 역시 가난한 자들로 그들 서로는 오늘 처음 만난 이들입니다. 이 거리는 모르는 이들이 한두 푼 끌어 모아 한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내의 시체를 판, 이 많은 돈을 다 써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마침 술집에서 나와 여관의 따뜻한 방에서 한 잔 더 할 요량이었을 겁니다. 그런 얼굴은 대낮처럼 환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죄악으로 인해 모르는 이들이 한데 모일 때 주로 하는 식의 높고 밝은 톤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주 지쳐있었습니다. 힘없는 음성으로 말을 건넸습니다.


먹고사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워낙 잘 먹지 못하며 컸기에 먹는 것에 대한 식탐이 컸습니다. 먹는 것에는 개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아내를 만나고 달라졌습니다. 아내 역시 없는 집안에서 못 배웠고 어렵게 자란 티가 어깨에 내려앉은 여자였습니다. 그런 여자입니다.


그들과 술을 마시면서, 독하디 독한 술이 약한 위장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저는 그들에게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저와 지내면서 급성 맹장염 수술도 받았습니다. 저를 만나기 전에는 급성 폐렴을 앓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모두 괜찮았는데, 괜찮았었는데 이번의 급성은, 급성 뇌막염이라는 것은 아내를 그대로 시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손을 쓸 수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죽으면서 나에게 개처럼 달라붙어 있던 식탐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내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으면 영영 속죄하지 못하고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저의 죄악 10 중에 2가 그들에게 나눠 갈 것이라면 저는 그들을 위해 오늘 밤 이 돈을 다 써버릴 것입니다.


돈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돈에 눈이 멀어 아내의 시체를 팔았습니다. 유일하게 살을 부비던 아내를 팔아먹을 만큼 돈이라는 게 중요할까요. 갑자기 울컥하며 욕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저는 조용한 성격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덕분인지 아니면 정말 조용한 성격 탓인지 그걸 눌러 참았습니다.


들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낮에 제 아내가 죽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까지 말을 하고 나니 정말 슬픈 건지 어떤지, 저의 감정에 대해서 주체할 수 없는 깊은 늪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저의 첫마디에 나의 등에 곰처럼 앉아 있던 재난 덩어리가 그들에게 조금씩, 이처럼 옮겨 붙는 것 같은 얼굴을 했습니다. 이해합니다.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해의 문제입니다.


목숨을 연명[延命]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 아내는 목숨이 연명[捐命]했습니다. 동의어인데 연명하지 못해 연명해 버린 제 아내의 얼굴이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아내의 얼굴은 늘 어딘가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늘이나 고단함 같은 것들에 말입니다. 또는 웃음에. 그런 그늘 따위 제가 열심히 더 일을 했다면 치워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정말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도망가지 않고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도 해주었습니다.


무슨 병환이셨던가요?


아아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저는 또 열심히 기뻤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병원의 시체실에서 부패되지 않게 속이 텅 빈 다른 시체들과 나란히 누워있는 저의 아내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준 사람들입니다. 무릇 모르는 이들이 저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저를 잘 알고, 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관계 속의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복잡한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내와는 재작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저는 처갓집이 어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할 수 없었어요.


저는 할 수 없었다는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말이 중요한 말이니까요. 그 말이 저의 죄악의 온상인 것입니다.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서적 월부 판매 외판원인 저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죄악스러운 돈을 받은 덕분에 아내는 학생들의 해부실습용으로, 톱으로 머리가 두 동강이 나고 칼로 배를 찢어서 내용물을 마구 드러낼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쇠통에 장작을 태우는 것만 봐도 저는 아내가 보입니다. 아내가, 아내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머리를 박자기처럼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두 분? 이 돈을 오늘 밤에 어떻게 다 써버릴까요? 이 돈을 다 써버릴 때까지 함께 있어 주시겠어요? 함께 있어주십시오. 멋있게 한 번 써 봅시다. 저는 웃었습니다. 내내 어두운 표정이 그들의 호쾌한 동조를 끌어내지 못했는데 멋있게 이 많은 돈을 써버리기를 바라며 나는 큰 소리를 내며 웃었습니다. 웃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슬픈 일을 당해서 웃을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돈이 있다면 상쾌하지 않았던 아침이 상쾌해지는 걸까요. 정말 그런 것일까요. 돈이 있다면 괴로움에서 해결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요컨대 배를 채우면 해갈이 되는 괴로움 같은 것들 말입니다. 불면이었던 밤이 푹 잠을 잘 수 있게 바뀔 수 있는 것일까요. 외판원 생활을 겨우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저는 인간을 아주 경멸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을 곁에 두지 않고는 못 버틴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말랑말랑하고 경쾌한 불신이 저의 깊은 곳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신은 인간에 대한 공포를 생성시켰고 그것은 내 몸에서 나도 모르는 새 점점 성장해갔습니다. 공포는 배고픔처럼 격렬하게 위장을 쥐어짰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양품점에서 넥타이를 바로 사 주었습니다. 알록달록한 넥타이로 하나에 삼백 원씩이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넥타이를 고르라고 하고 저는 이 넥타이는 내 아내가 사주는 거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질렀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호통이 불신과 공포 때문에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린 것입니다. 양품점을 나와서 귤 장수가 있기에 그들에게 귤도 사줬습니다. 64년의 겨울에는 귤도 비쌉니다. 돈이 있어야만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입니다. 저는 또다시 저도 모르게 아내는 귤을 좋아했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외판원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고독했었습니다. 하지만 외판을 하면서는 그걸 숨겨야 했습니다. 내가 아닌 내가 되어야 했습니다. 서적을 판매하는 곳에 입사할 구 있었던 건 제가 글을 위트 있게 적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여러 개의 보이지 않는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을 수월하게 열 수 있는 건 위트입니다. 위트가 있으면 외판원 생활도 그럭저럭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은 실은 책을 판매하는 것보다 판매한 책의 돈을 수거하는 것 때문에 외판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로 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월 말에 계산을 해준다는 말로 저를 돌려보낸 다음 월 말에 가면 집에 아무도 없거나 심지어는 남몰래 이사를 가버리기도 합니다. 위트는 인간들에게서 정당하게 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빌미 같은 것을 제공합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은 그래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들과 넥타이를 사고 귤을 들고 택시를 탔습니다. 다른 곳으로, 어디 좋은 곳으로 가서 남은 돈을 다 써버릴 요량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만 저는 택시기사에게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들 중 ‘안 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소용없는 일이라 안 된다고 하더군요. 정말 안 되는 것일까요. 세 명이 가서 말하면 한 사람이 말했을 때보다 좀 더 낫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어디로 우리는 가야 할까요. 저는 그들에게 어디로 갈까 물었지만 그들 역시 목적지가 없었습니다.


결국엔 택시기사가 우리를 내리라고 했습니다. 참 우습지요. 우리는 중국집에서 나와서 더 근사한, 이를테면 달력 속의 ‘그러니까’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들이 있는 곳이라든가 크라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든가, 좀 더 따뜻하고 차가운 술이 있는 곳을 찾아서 가려고 했단 말입니다. 하지만 중국집에서 나와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우리들은 스무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독한 고독의 비릿한 냄새를 아내는 본능적으로 맡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우연히 만난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내는 나의 고독과 불안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렇게 교접함으로써 아내의 불안도 같이 줄어든 것 같았습니다. 재작년에 같이 살게 되었는데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 것 같아서 후회가 극심합니다. 이 후회가 지금 저의 심장을 찌르고 피부를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만 같습니다.


아내 앞에서는 억지로 위트를 내 보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귤은 아내가 시체가 되고 나서야 실컷 먹습니다. 이 삶이 거짓으로 똘똘 뭉친 위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누군가라도 붙잡고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했어요. 그렇게라도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저의 비관적인 양심 때문에 저를 괴롭히는 사람이 죽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마음만으로 먹었던 단적인 비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비관이 심해지면 자동차에 치여 죽어 버렸으면, 어딘가에 떨어져 죽어버렸으면. 병이라도 걸려 깔끔하게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내가 먼저 죽어버렸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내의 시체를 팔아먹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제 아내는 저 같은 놈을 만나서도 3년 동안 잘 웃었습니다. 세상에는 다행히 여자의 특징만 중점적으로 내보이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안 형’이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몹시 슬펐습니다. 제 아내 얘깁니까? 저는 ‘안 형’에게 물었습니다. 내 아내의 특징은 너무 잘 웃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하는 말인지. 허공에 대고 하는 말인지도 모를 이 말은 제가 듣기에도 몹시 슬펐습니다. 정말 슬프고 아주 슬펐습니다.

아닙니다. 종삼으로 가자는 예기였습니다.라고 ‘안 형’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안 형’이라는 그 사람에게 미소에 경멸을 섞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우리는 어딘가 갈 곳을 잃은 채 거리를 헤매다 화재가 난 곳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갈 곳도 없고 화재가 난 곳에 페인트든 통을 하나씩 깔고 앉아서 불구경을 했습니다. 저는 불이 빨리 꺼지지 않고 좀 더, 길게 하루 종일 타기를 바랐습니다.


그때 ‘안 형’이 말했습니다. 화재는 자신의 것도 아니며, ‘김 형’의 것도 아니며, 나를 보며 아저씨의 것도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더니 다시 고쳐서 말을 했습니다. ‘안 형’은 잘못 말했다며 화재는 화재 자신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갑자기 일어나서, 내 아냅니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날름거리는 불기둥은 저의 아내였습니다. 불줄기가 바람에 이리저리 막 흔들리는 것이 제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내가 머리가 아파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에 머리를 이리저리 마구 흔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앉히며 진정시켰습니다. 내가 실성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기 전에 교류를 하던 몇몇의 동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동무들에게 저의 본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나와 나의 동무들 사이에는 위트가 숨어 있어서 나의 모습을 교묘하게 가려 주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변변찮은 집에 동무들이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잘 웃기에 동무들에게도 잘 웃어 주었습니다. 그 웃음을 보는 동무들의 눈빛에 그들처럼 여자들의 특징만 중점적으로 내보이는 여자들을 찾는 깊은 어둠의 음란한 웃음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동무들 역시 위트로 자신을 숨기고 나를 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동무들 중 한 놈은 귀가 곪아서 고름이 곧 터지기 일보 직전임에도 아내가 앉아 있는 나의 집 방에서 마다하지 않고 술잔에 술을 부어 마셔댔습니다. 그럴수록 아내는 더욱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아내의 특징이었습니다. 언제나 잘 웃는다는 것 말입니다. 저는 그때 아마도 몹쓸 마음을 먹었드랬습니다. 동무들이 내일 죽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서울의 전동차에 끼여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죄악의 인간입니다. 후에 전보를 받았습니다. 곪은 귀를 가진 그 동무는 부산에서 뱃일을 하다가 곪은 귀를 치료하지 않아서 염증이 온몸으로 퍼져 고통 속에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동무와 저 사이의 위트가 사라진 것입니다.


화재는 점점 거세져 불기둥은 미. 용. 학. 원 간판의 ‘학’에 옮겨 붙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이 번지는 걸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불구경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순수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힐 때 호기심이라는 순수한 감정으로 괴롭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것입니다. 불이 누군가의 삶을 망가트린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불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불속으로 집어던졌습니다. 전부 집어던졌습니다.


무엇이 불속으로 들어갔지요? ‘김 형’이 ‘안 형’을 보고 말했습니다. 보셨어요? 라며 나에게도 물었습니다. 저는 그저 잠자코 앉아 있었습니다. 머리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 사이에 있던 순경이 나를 잡으며 당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남은 돈을 전부 화재 속으로, 불속으로 던졌습니다. 아내의 시체를 팔고 남은 돈은 아내에게로 던졌습니다. 전부, 모두 있는 힘껏 던졌습니다. 순경을 나를 때릴 듯 한 자세와 눈으로 무엇을 던졌냐고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던지지 않았습니다. 더욱 무서운 눈으로 나를 쏘아보며 순경은, 뭐라구요? 내가 봤던 말이오, 던지는 것을. 저는 순경에게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돈을 던졌습니다. 돈이요.

‘김 형’과 ‘안 형’은 순경에게 1원짜리 동전 하나를 던졌다고 안심시켜 보냈습니다. 정말 돈을 던졌습니까, 모두? 두 사람이 나에게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탁탁 거리며 아내는 머리가 좀 덜 아픈 것 같았습니다. 결국 그 돈은 다 쓴 셈이군요. 그들은 나를 남겨두고 약속이 있다며 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혼자로 고독하게 되는 게, 고독한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 말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이 말이 듣기 싫었습니다. 아내도 떠났는데 그들도 나를 떠나려 합니다. 이 추운 겨울의 밤에 나를 홀로 버려두고 말입니다. 저는 그들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오늘 밤만 같이 있어 달라고 하며 따라올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여관비를 마련하려고 하니 잠시만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안 형’이 여관비는 자신이 대겠다고 했지만 저는 폐를 끼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그동안 펼쳤던 위트의 결과물을 거둬들이려고 했습니다. 받아야 할 돈을 받으러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제때에 받지 못했던 돈을 받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 여자는 참 난해하고 또 난해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나를 개미 보듯 대하다가도 둘 만 있게 되면 새끼 고양이처럼 변해버립니다. 아내를 만나기 전 알고 있던 여자가 있었지만 결혼으로 가야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 강당에서 그 여자를 안았을 때 피를 쏟으며 나를 야비한 인간으로 매몰차게 내몰고 강당을 뛰쳐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여자가 그곳으로 유도를 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후로 군에서 직속상관에게 끌려 매음굴에 갔을 때에도 저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부대에서 개 맞듯이 맞아야 했습니다.


저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에게 상처를 준 것은 대립을 하고 있던 북한의 병사가 아니라 직속상관이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상처는 몸 밖으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혈관을 타고 이곳으로 저곳으로 아주 불쾌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깊고 오래된 질환처럼 치유가 안 되는 그런 종류의 상처인 것입니다.


그런 면으로 보면 아내 역시 난해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잘 웃었기 때문입니다. 웃음이 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보였습니다. 웃음으로 쾌락에 가까워지는 존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자가 근원적으로 남자보다 탐욕에 가까운 것입니까. 남자들처럼 적당히 얼버무려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내를 만난 건 어쩌면 축복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런 축복을 저는 돈에 팔아 버렸습니다. 못 받은 돈을 받을 것입니다. ‘안 형’과 ‘김 형’에게 따뜻한 여관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아내의 시체를 팔아버린 돈이 아니라 내가 당연하게 받을 돈으로 말입니다.


간판의 마지막 글자 ‘원‘을 맛있게 태워 먹으면서 불기둥은 날름 거렸습니다. 아내의 아픈 골치가 그것으로 수그러들었습니다. 그 모습에 잠시 희열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 역시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더 한 희열을 느꼈을 것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아닙니다. 폐를 끼쳐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잠깐만 절 따라와 주십시오. 그들은 내가 이 밤에 돈을 빌리러 가는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받아야 할 돈을 받으러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빚 받으러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저를 말렸지만 저는 꼭 지금 받아야 했습니다. 어쩌면 돈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요. 마지막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남영동 어두운 골목을 돌고 나오는 골목의 모퉁이를 몇 개를 돌아 전등이 켜진 대문 앞에 섰습니다. 이 집에는 내가 돈을 받아야 할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벨을 누르니 누군가 나왔습니다. 주인아저씨를 뵙고 싶은데요. 주무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주인아주머니를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주인집 아주머니를 부르러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안 형’이 나를 잡아끌었습니다.


그냥 가시죠.

아닙니다, 받아야 할 돈이 있다니까요. 그렇게 말을 하니 ‘안 형’이 다시 ‘김 형’이 있던 골목 끝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때 대문이 열리고 주인아주머니가 나왔습니다. 누구시죠? 죄송합니다, 이렇게 너무 늦게 찾아와서 실은...... 술이 취하신 것 같은데, 누구시죠?


저는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월부 책값 받으러 온 사람입니다. 한 번 더 말했습니다. 월부 책 값 받으러 온 사람입니다. 한 번 더 말했을 때 저는 비명을 지르다시피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질러 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몸에 남아있는 기운이 전부 무엇에 의해 쪽쪽 다 빨려 나가 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만 문기둥에 두 손을 짚고 뻗은 팔 위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만 오열을 하고 말았습니다. 월부 책값 받으러 온 사람입니다... 월부 책값.... 책값.... 여보.


저는 인간 공포가 심해졌습니다. 여보라고 흐느낄 때 알 수 있었습니다. 내일 낮에 오라며 대문이 닫혔을 때 저는 인간 공포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이란 어디를 가도 있습니다. 인간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매일 격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무시를 당한다는 건 본디 인간 공포를 깔고 있는 것입니다. 대문 저 안쪽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무섭고, 귤을 팔던 리어카의 귤 장수도 무섭고, 술집에서 모르는 이들끼리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무서워졌습니다. 제게 남은 사람이라곤 오늘 처음 만난 ‘안 형’, ‘김 형’ 저 둘 뿐입니다. 저들은 오늘 밤 저와 함께 있어 줄 것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아이처럼 혼자서는 이 서울의 밤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방에만 처박혀 있을 수도 없습니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하나의 방법만이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 덕분에 얼마간 혼자서도 서울의 거리를 다니며 외판원 일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내가 저를 잘 조종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건네주고 받고 하는 어색한 손놀림에서, 받을 돈을 받아야 하는데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마땅한 말을 하는 것에서, 인색한 사장 앞에서 인색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하는 위트 있는 표정을 짓는 것에서 오는 어색한 침묵에서 아내는 저를 잘 이끌어 주었습니다. 저녁에 집에 가면 아내를 안을 수 있었으니까요. 잘 웃는 아내를요.


그때 공포의 냄새가 저를 덮쳤습니다. 울면서 잡고 있던 대문에서도, 골목의 벽에서도, 바닥과 전봇대에서도 인간 공포의 냄새가 났던 것입니다. 술, 술이 이 공포를 조금 없애줄 것입니다. 저는 일어나서 힘이 빠진 채로 그들에게 걸어갔습니다. 몇 발자국 안 되는 걸음을 걷는 동안 술보다는 잠이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비틀비틀 걷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로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인 채 골목을 벗어났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필요 이상 고요한 거리에 불었습니다.


몹시 춥군요. 저는 그들이 걱정이 되어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데리고 여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안 형’이 방을 따로 잡자고 했지만 ‘김 형’이 한 방에 모두 같이 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저에게도 물었지만 저는 어떠한 의견도 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렵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무 곳도 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여관에 들어서는 것이 거북하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들의 거북스러운 감정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와 같이 있어주기만 바랄 뿐입니다. 모두 같은 방에 들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김 형’이 그렇게 말을 해 주어서 저는 또 한 번 열심히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곤하다며 방은 각각 하나씩 차지하고 잠을 자기로 하자고 ‘안 형’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만,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말을 해 버렸습니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 라는 말로 나를 떼어 놓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화투라도 사서 같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절실했습니다.


인간 공포도 무섭지만 혼자서 고독 속에 갇히는 것이 지금은 더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저의 그런 바람은 역시 무시를 당하고 두 사람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쿨쿨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월부 책값을 받으면 그들을 데리고 창녀를 안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빌미를 내보였을 때는 그들을 경멸하는 웃음을 보였지만 저는 저를 경멸하기로 했습니다. 창녀는 여성도, 인간도 아닌 그것을 뛰어넘어버린 발광 존재이기 때문에 창녀의 품에서 밤새 안심하고 서글플 정도로 잠이 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독에서 벗어 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창녀와 저는 같은 종류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방으로 홀로 들어가 고독의 공포를 끌어안아야 했습니다. 여보. 여보. 여관의 방 벽에 꾸물꾸물 아내가 보였습니다. 울고 싶지만 이제 울지는 않을 겁니다. 이제 더 이상 울 수도 없습니다. 운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자유에는 허영이 개입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흐느끼면서 허영을 채울 수 있었고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울 수 없다는 말은 더 이상의 자유를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그늘의 인간이었습니다. 완벽한 어둠은 아니지만 밝지도 않으며 축축한 채인 인간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처참한 패배자가 되기는 싫습니다.


사실은 고독한 지금 소리를 내서 울고 싶습니다. 각자 방에서 잠들어 있을 ‘안 형’과 ‘김 형’을 깨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울고 싶습니다. 흐느끼고 싶습니다. 여보라고 다시 한번 크게 외치고 싶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보여줬던 다정한 마음을 간절하게 한 번만 더 느낄 수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아내 덕에 겨우 사라졌던 고독에 대한 고통이 지옥의 불바다처럼 번질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치유될 수 없는 고통. 그 고통은 뼈 속까지 침투하여 불면으로 밤을 지새우게 할 것이며 고통은 인간 고통을 두 배, 세 배 늘려줄 것입니다. 인간이 있는 곳에서는 인간 공포를, 인간이 없는 곳에서는 고독 공포의 고통이 나를 덮칠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이 고통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편안해지겠습니다. 죽고 사는 건 시시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사람들이 삶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지옥에서 겨우 견디듯 신음하게 보다는 편안해지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이 이상의 지옥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아니 없습니다.

화마 속으로 돈을 몽땅 집어던지고 받을 돈을 받으러 가는 것이 그들에게 보내는 저의 위트였습니다만 결국 위트 덕분에 그들은 나를 고독의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 그들을 욕되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제가 할 수 있는 이 위트가 모순이며 역설이었습니다.


필경 저한테는 아내가 없는 휑한 방에서 혼자 ‘생활’ 해 나갈 능력이 없습니다. 아내가 있다가 없어진 방에서 혼자 잠이 들고 혼자 일어나는 것이 끔찍하고 누군가 벽에서 튀어나와 나에게 일격을 가하고 말 것이라는 공포가 저를 몸을 덜덜 떨게 할 것입니다. 제 운명은 일변[一變] 한 것입니다. 이제 잠이 들면 아내를 만날 것입니다. 급성을 달고 산 아내를 만나 정사를 할 것입니다. 잠드는 시간만큼은 공포를 잊을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저의 진정한 위트입니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적었기에 아무런 문자가 없을 것입니다. 사환이 가져다준 자리끼를 마시고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꿈에서 아내를 만날 것입니다. 고통은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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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안과 김.

그 양반, 역시 죽어버렸습니다.

예? 방금 그 방에 들어가 보았는데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역시....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린 빨리 도망해 버리는 게 시끄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실이지요?

물론 그것이지요.

난 그 사람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난 짐작도 못했습니다.

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요. 할 수 없지요. 난 짐작도 못했는데.

짐작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씨팔 것, 어떻게 합니까? 그 양반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게 내가 생각해 본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난 그 양반이 죽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니까요. 씨팔 것, 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모양이군요.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그 뭔가가,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하여튼.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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