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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31. 2021

해변의 카프카

하루키 소설

하루키의 글은 어딘지 모르게 전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하루키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하루키가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저의 글은 모두 이어져 있으니 지치지 말고 꾸준하게 읽어주세요,라고 하는 착각이 든다.


추억이란 당신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당신의 몸을 안쪽으로부터 심하게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이기도 합니다. 해변의 카프카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이 추억으로 인해 행복하면서 고통을 받는다.


해변의 카프카에는 마치 하루키가 다시는 장편을 쓰지 않을 요량인지 철학, 클래식, 팝, 건축 등이 다른 장편에 비해 아주 세세하고도 많이 등장한다. 베토벤의 독보적인 모습을 시작으로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스트, 슈만을 지나 백만 달러 트리오의 루빈스타인(피아노), 하이패츠(바이올린), 피아티고르스키(첼로), 그리고 하이든의 협주곡 제1번과 피에르 푸르니에의 첼로 연주가 나온다. 이 모든 클래식을 한 번씩만 들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그중에서도 대공에게 바치는 베토벤의 대공트리오는 아아 이렇게 좋을 수가.


프랑수아 트뤼포의 유연한 호기심에 가득 찬, 구심적이면서도 집요한 정신과 장 자크 루소의 울타리, 안톤 체호프의 자립적인 개념의 필연성, 헤겔의 자기의식, 앙리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헤테로(이형접합자),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 소포클레스의 훌륭한 희곡 ‘엘렉트라’, 레드헤딩과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 괴테가 말하는 세계, 그리고 악의 평범성의 아돌프 아이히만까지 총 망라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다무라 녀석이 숲속에서 혼자 고독과 싸우며 지낼 때 라디오 헤드의 ‘키드 에이’ 음반을 듣는 장면이다. 라디오 헤드의 모든 앨범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키드 에이’ 앨범이 가장 좋았다. 이건 듣자마자 마치 연주도 노래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꼭 외계의 한 지점에 교신을 하는 듯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키드 에이 앨범은 중학생이 듣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다무라 녀석이라면 가능하다. 그 전경이 눈에 선하다.


인터뷰집 ‘작가란 무엇인가’의 하루키 편을 보면, 라디오 헤드가 KID A 앨범에서 자신을 언급해서 기분이 좋다는 식으로 인터뷰를 한 구절이 있다. 라디오 헤드는, 그러니까 ‘톰 요크’는 키드 에이를 기점으로 이제는 음악이 철학 덩어리가 되었다. 특히 ‘데이 드리밍’의 뮤직비디오는 정말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무척 재미있고 깊이가 있었다.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를 ‘태엽 감는 새’보다 더 복잡하다고 언급했다. 해변의 카프카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깊게 고찰한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단둘이 마주하고 친구가 되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게 되면 하늘에서 수많은 전갱이가 쏟아지는 세계의 만물은 메타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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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앉아서 라디오헤드를 나란히 들었다.


 노래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라고 너는 말했다.


 그런 것 같아, 달의 냄새가 나는 것처럼. 나는 답했다.


 실은 달에게는 냄새가 없지 않을까요? 냄새가 소거된 달.라고 조용히 너는 말했다.


 아니야, 달에게는 달이 지니는 냄새가 있어. 모든 것은 냄새를 지니고 있거나 도사리고 있어, 우리가 너무 많은 냄새를 맡고 있어서 단지 못 맡을 뿐이야,라고 나는 말을 했다.


 엑시트 뮤직이 흐른다. 블랙스타가 끝이 나고 로터스 플라워를 불렀다. 우리는 좀 더 몸을 붙이고 라디오헤드를 들었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있다.


 너에게서 달나라 맛을 느꼈어, 달나라 맛을 아직 확실하게 맛보지는 못했지만 빨간 악마보다 맛있고 아루 굴라의 쌉싸름한 맛을 이겨내는 맛도 있을 거야, 그리고 너의 뒷모습에 묻어 있는 어떤 쓸쓸함의 맛도 지니고 있을지도 몰라, 달나라 맛은 너무 달콤하지만은 않을 거야.라고 나는 말했다.


 너는 미소를 한 번 짓고는 나를 쳐다봤다. 라디오헤드는 키드 에이로 접어들어 네셔널 엔썸을 불렀다. 우리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라디오헤드를 들었다. 이디오 테크를 불렀다.


 라디오헤드가 달라졌어요.라고 넌 말했다.


 이제부터 모닝 벨에 이르기까지 노래를 들으며 달로 가는 거야, 달의 냄새를 맡고 달나라 맛을 보는 거야, 저기 멀리 보이는 저 점 같은 거 보이지? 나는 하늘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너는 반달눈을 하고 손으로 차양 막을 만들어 내가 가리키는 곳을 봤다. 움직이는 어떤 점 같은 것이 보였다.


 조금씩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아요.라고 너는 말했다.


 키드 에이야. 나는 말했다.


 점 같았던 키드 에이는 점차 그 형태가 드러났다. 앞뒤의 구분이 없고 형이상학적인 얼굴과 무색의 키드 에이는 우리 앞으로 서서히 날아오더니 조용히 멈췄다.


 안녕하세요,라고 네가 먼저 인사를 했다. 키드 에이에게서 어떤 위압감이나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네가 먼저 인사를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키드 에이는 사람들 앞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보다 다무라 녀석에게 먼저 나타났었다. 오래전에. 그 녀석 역시 엄마의 희미한 냄새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키드 에이는 달의 뒤편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달에 가면 무엇이 있어요?라고 넌 키드 에이에게 물었다. 키드 에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적어도 차별은 없지.라고 키드 에이는 말했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넌 낫 베드.라고 했다.


 우리는 듣고 있던 라디오헤드를 끄고 키드 에이와 접합했다. 그리고 달을 향해 갔다. 그곳에는 해변의 카프카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해변의 의자에 카프카는 앉아서
세계를 움직이는 흔들이 추를 생각하네.
 마음의 둥근 원이 닫힐 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스핑크스의
그림자가 칼처럼 변해서
그대의 꿈을 꿰뚫었네.


 뭄에 빠진 소녀의 손가락은 
입구의 돌을 찾아 헤매네.
 푸른 옷자락을 쳐들고
해변의 카프카를 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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