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95

13장 5일째 저녁

by 교관

395.


소피 정도가 안타까워할까. 분홍 간호사와 의사가 안타까워해줄까. 장군이가 안타깝다고 할까. 는개가 내 사진을 조금 어루만져 주지 않을까. 그동안 어떤 누구도 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거나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괜찮다고 잘 훈련해왔다. 그렇게 하나씩 나를 소모해가며 그동안 잘도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상 달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무의식이 만들어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희미하기만 했다. 더 이상 는개의 작은 몸을 안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펐다. 슬프다고 느끼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슬퍼서 울어 본적은 언제였던가. 내 속의 눈물은 다 말라서 내 몸에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쩍쩍 갈라지는 논두렁의 모습이 나의 본모습이었다. 그런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은 끊이지 않고 눈에서 흘러내려와 볼을 타고 밑으로, 밑으로 떨어졌다. 바다 깊은 곳의 모래알처럼 내 마음은 깊이 가라앉아서 이제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는 슬픔으로 나를 짓누른다. 는개가 보고 싶었다. 그녀를 안고 싶었다. 마지막이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마동은 집안에 남아있는 정리할 관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동은 시계가 인간에게 말해주는, 같은 시간의 반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시간이 의미하는 상징이라는 게 시(時)와는 달랐다. 의미적으로는 잠을 자는 거와 같았다. 요컨대 시간이 하루하루 쌓이는 것이다. 시곗바늘이 흘러가는 것에는 길고 번거롭고 복잡한 논리는 없다. 시곗바늘이 반복적으로 째깍째깍 흐르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다. 성장은 이를테면 변이를 말한다. 시계가 하는 말은 마동은 이제 알 것 같았다. 정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마무리가 너무 쉽게 되어서 마동은 기이했다. 정리할 것이 많지 않았지만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물건을 정리하는 것과는 달랐다. 마동은 어둠의 도트를 통해서 자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둠의 도트를 떠올려 보았다. 떠올려 봤지만 도트의 형상은 어떤 형태로도 그려지지 않았다. 어둠의 도트라는 건 생각 그 너머의 것이었다.


나는 언제부터 그동안 죽음을 맞이하는 훈련을 해왔던 것일까.


죽음, 필멸하는 인간, 매일 약간의 시간을 들여 생각했던 관념. 그것은 절대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되뇌었다. 또 다른 삶의 시작점에 서는 것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라고 마동은 늘 훈련을 해왔다. 죽음 그 이후의 삶을 받아들이면 죽음에 대한 훈련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방식보다 어떻게 지느냐 하는 방식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듯이 죽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잘 견디고 잘 훈련해왔다. 마동은 그런 자신에게 훈장이라도 하나 주고 싶었다. 그렇게 수없이 생각하고 훈련했지만 막상 끝에 도달하니 우스웠다.


과연 죽음이 또 다른 삶의 시작일까. 우습다.


매일 밤공기를 가르며 달렸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달렸다. 쉬는 날은 반나절을 달리면서 보냈다. 죽음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달리는 것이 기본을 적립하는 방법이고 최선이고 훈련을 반복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어떠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마동은 그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수록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구덩이에 빠져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모순을 느껴야만 했다. 구덩이 속에서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다. 검은 구덩이가 자아내는 어둠이 크고 막대하여 그 속에서 시력을 빼앗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동 자신을 발견했다. 마동은 오래전 너구리를 만나고 난 후부터 자신만의 고된 훈련이 시작되었다. 인간이 사라진 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사후 기찻길에서 낱낱이 분쇄되어버린 친구들을 만나서 열심히 달려왔다고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을 만난다면 그들은 그때의 모습이겠지만 마동은 훌쩍 어른이 된 모습이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