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5일째 저녁
407.
“비가 온다 해도 우리의 작업은 계속되고 이루어져야겠지. 그렇지 않나?” 철탑 인간은 음울하게 웃었다. 단지 웃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자 각막을 도려낸 다음은 자네의 동공과 홍채를 도려 낼 걸세. 이건 좀 어려운 작업이지. 잘못 도려내면 자네는 시력을 완전하게 잃게 될 테니까. 하지만 자네는 시력을 잃은 채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말했지만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게 세상 이치 아닌가. 눈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감각이 좋아지니 나머지 기능을 잘 살려 볼 수 있지 않겠나. 첫 번째의 고통보다 참지 못할 고통이 느껴질 거네. 칼날이 슥삭슥삭 하며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마치 마취하지 않은 채 팔의 피부를 벗겨내는 고통과 비슷하지. 아니지, 아니지, 그것보다 더 한 고통이 수반되겠지. 자네 눈엔 수정체만 각막이 벗겨진 채로 보일 거야. 타인이 그런 자네의 모습을 본다면 자네보다 더 두려움에 떨 테지만 말이네.” 철탑 인간은 음흉하게 다시 웃었다.
세차게 떨어지는 비를 맞은 채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남자는 몸을 심하게 떨었다. 비에 젖어 추위에 몸이 떨리는지 철탑 인간의 손에 들린 칼의 공포에 두려워서 몸을 떠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비에 흠뻑 젖은 무릎 꿇은 남자의 몸은 더욱 심하게 떨렸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밤, 칼바람에 흔들리는 문풍지처럼 남자의 몸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떨렸다. 철탑 인간은 그의 뒤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세 자루의 칼을 휙휙 돌리고 있었다. 칼을 서로 소리 나게 부딪힐 때마다 피비린내가 어디선가 쥐어짜듯 풍겨 났다. 피비린내와 비린내는 뒤섞여 사후 공간을 연상케 했다. 최원태 부장이 사라지고 난 후 맡았던 피비린내였다.
강했다. 무척.
비를 뿌리는 구름은 유난히 검었다. 흑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웠고, 검은 구름은 히 내음을 흡수한 비를 폭력적으로 뿌리고 있었다.
“한쪽 눈의 각막을 도려내면 반대쪽 눈의 각막을 도려 낼 걸세. 하나 하고, 하나 하는 거지. 가내 수공업 식으로 말이야. 한쪽 눈의 작업을 다 마치고 옆으로 옮겨 가서 또 다른 한쪽 눈을 작업하는 것이라네. 한쪽 눈의 홍채를 드러내는 순간 자네의 안구라는 건 빛의 조절을 실패하는 거지.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이렇게 비가 내려줘서 말이지. 태양이 떠 있었다면 눈을 뜨지도 못 할 테고 말이야. 쏟아져 나오는 피를 비가 다 씻겨 줄 테니 말이지. 망막을 드러내면 이제 피사체의 상이 보이지 않겠지. 어떤가? 그렇게 다 도려내서 정보가 없으니 대뇌로 전달할 게 없다네. 이제 내가 그 시신경을 통해 대뇌로 가서 자네의 여러 가지 흘러넘치는 시냅스를 잘라 올 거네.”
바닥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땅속으로 스며들어가지 않고 땅 위에 머물고 있었다. 빗방울은 비교적 기울어진 대지에 떨어져 바닥으로 스며들지 않고 기울어진 대지의 높은 곳으로 빗방울이 이동하는 듯 보였다. 철길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죽 늘어져 있었지만 평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오르막길이었다. 검은 구름이 만들어낸 빗방울은 하늘에서 떨어져서 오르막 위로 이동을 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빗방울이 아니었다.
굵은 빗방울은 괄태충들이었다. 손가락만 한 괄태충들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떨어져 내렸다. 그것들은 검은 구름에서 끝없이 떨어져 내렸다. 잘못 떨어진 괄태충은 떨어지면서 몸이 바닥에 부딪혀 터지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괄태충들은 대부분 땅 위에 빗방울처럼 떨어져서 오르막길로 꿀렁꿀렁 기어갔다. 세상이 괄태충들로 꽉 들어찼다. 검은 구름이 뿌리는 괄태충은 역겨운 누린내를 동반했고 피비린내와 뒤섞였다. 냄새만으로 구토를 유발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