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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11. 2021

바다 멍

바다 에세이


바다에서 멍 때리기.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거, 나는 오히려 그래서 좋다. 바다에 나오면 노인들이 늘 앉아서 바다를 보고 있다. 겨울이면 두꺼운 옷을 입고, 여름이면 얇은 옷을 입고 나와서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그런 노인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노인의 뒷모습과 바다의 공통점은 오늘도 아무 일 없는 듯 보인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지루하지만 고요하다. 노인의 뒷모습에는 세계가 스며들어있다.


해가 떠 있어도 구름이 막을 만들어 빛의 투과율을 줄인다. 바다 고양이들이 장난을 치며 주차해 놓은 자동차 밑으로 삼삼오오 기어들어가 코앞까지 닥친 여름을 맞이한다. 아직 어린 바다 고양이는 뒷바퀴 위에 올라타 어미에게 야옹야옹거린다. 따뜻해요. 내 손도 따뜻한 너의 손을 덴마크식 바다가 잡는다. 바다가 내민 손을 잡으면 위로가 된다.


혼자서 양손을 맞잡고 있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작용. 연일 이어지는 고독한 바다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런 바다에 매일 나와서 등을 지고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들. 그런 바다 노인들을 바라보는 나.


세계는 변하고 있다. 호흡으로 자정작용을 하는 불꽃은 점점 꺼져서 딱딱하게 변해버린 공장들이 가득한 세상으로 전환한다. 전환. 전환은 어느 순간 우리를 노인으로 바꿔 놓는다. 시간에게 영혼을 강탈당해버린 사람들은 껍데기만 지닌 채 허위허위 앞으로를 보낸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누워라. 버어져 나오면 잘라버리고 모자라면 늘리면 된다.


노인들의 바다, 덴마크식 바다에 나오게 되면 이제 좀 숨을 쉰다. 오늘따라 유난히 맛이 좋은 커피에 감사한다. 노인들은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인양 정해 놓은 벤치에 매일 나와서 매일 비슷한 바다를 매일 비슷한 자세로 바라본다. 그들의 등에는 전환된 세계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위로가 손을 내밀고 있다. 나는 언제든지 그 손을 잡을 수 있다. 단지 용기가 나지 않을 뿐이다. 용기와 호기심의 차이는 무엇일까. 주인이 외출한 집에 들어가는 건 용기일까 호기심일까.


나보다 일찍 나온 노인들은 굽은 등을 보이며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하얀 머리털과 눈썹 사이사이 하얀 털이 마치 유명 화가의 실수처럼 보인다. 노인들은 바다를 보는 것에 지루해하지 않는다. 마치 영혼이라도 빨려 들어가 버린 것처럼 진지하게 바다를 바라본다. 나는 역시 그런 노인들의 등을 보는 것이 좋다. 그들의 등에는 외로움보다 고독보다 평온이 세계를 이루고 있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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