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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pr 15. 2022

하루키 에세이 - 세 번째, NHK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021. 11. 28일 저녁 7시부터 50분간 이어진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소개한 하루키 씨의 일화이다. 하루키 씨는 청취자를 상대로 방송을 하기에 높임말로 했지만 여기서는 책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다.로 끝내고, 의역을 왕창 했다는 것.




제목: 세 번째


내가 도쿄에 있을 때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녔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길을 걷고 있는데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일단 없었다. 음, 한 달에 한 번인가 두 번 정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지방의 도시에 가거나 하면 꽤 빈번하게 [무라카미 씨 아닙니까]라며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째서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는 나에게 말을 스스럼없이 걸어오는데 도쿄에서는 그렇지 않다. 결국 생각해보면 [도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바빠서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 사람들은 대부분 거리에서 마주치더라도 사람의 얼굴을 일일이 보지 않는다. 단지 [지나치는 다른 지방에서 온 정착민]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은 꽤나 편하고 좋지만 그런 분위기를 [차갑다] 라거나 [인정이 없다]라고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명인들도 이미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졌다고 할까, 비록 [아, 저 사람이다]라고 생각해도, 굳이 말을 걸지 않고 그대로 가버리는 일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시부야 [레코 팬]이라는 중고 레코드 가게에 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젊은 남성이 [무라카미 씨군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네,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저, 제가 여기서 무라카미 씨를 만나는 것이 세 번째예요]라고 하는 것이다. [지난번 두 번은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을 걸지 못했는데 세 번째는 괜찮지 않을까 해서요].


나는 뭐 괜찮다. 나의 독자 중에는 그렇게 너그러운 성격의 사람이 많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같은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세 번이나 만나다니, 나도 꽤나 한가한 인간이지만, 그 사람도 상당히 한가한 사람이다. 그나저나 [레코 팬]이 문을 닫아서 쓸쓸하다.


잠시 하던 일을 놓고 술렁술렁 에세이를 읽는 느낌으로 보면 좋을 듯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벚꽃이 떨어지기 전에 빨리 가서 벚꽃을 보고 사진을 찍어서 어딘가에 올려야 하는 강박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늘 쫓기듯 빠르게 달려가니까 가볍게 한 타임 쉬어 가는 거죠. 제멋대로 의역이 왕창 되었습니다.


NHK

결혼 후에도 꽤 오랫동안 집에 텔레비전은 없었다. 당시에는 너무나 가난해서 티브이를 살 돈도 없었고, 게다가 일이 바빠서 제대로 앉아서 티브이 같은 건 볼 시간조차 없었다. 그때는 뭐, 티브이 같은 건 없어도 우리의 생활에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어느 날은 아내가 집에 혼자 있는데, 어느 준국영방송의 수금원이 와서 시청료를 걷어 가려고 했다. 아내는 [우리 집에는 티브이가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그 수금원은 도통 믿지 않았다. [사모님, 사모님께서 거짓말을 하시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티브이를 보면서 시청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도둑과 다를 바 없습니다. 도둑과 같아요, 사모님]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그 방송국에 대한 호의 같은 건 요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범죄자처럼 몰아세우는 건 옳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꽤나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시민이다. [1Q84]라는 소설 속에 주인공의 아버지를 모 방송국의 수금인으로 설정했는데, 그때의 앙갚음 같은 것이다. 아주 작은 답례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하루키의 단편 소설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이라는 소설에 잘 나온다. 사실 그건 소설이라기보다 하루키와 그의 아내 요코의 신혼 시절의 이야기다. 소설 속에는 이부자리와 옷가지 식기 전기스탠드, 몇 권의 책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전 재산의 전부라고 나온다. 그만큼 가난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은 지극히 간단해진다.


겨울에 해가 지면 하루키는 아내 요코와 고양이를 안고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갔고 아침에 나오면 부엌의 싱크대가 얼어붙어 있었다. 그렇지만 가난이라는 불행 속에서도 봄이 오면 근사해져서 세 명(고양이 포함)이 나른한 봄볕에 작정하며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하루키는 그 당시를, 우리는 젊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고, 햇볕은 공짜였다고 했다. 불운은 사람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도 왕왕 그러지만 현실에서 나를 괴롭히는 인간들은 소설 속에 등장시켜 파리로 변하게 하여 파리채로 탁 내리친다. 그러면 파리채의 구멍 사이로 파리의. 비록 소설 속이지만 속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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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씨가 들려준 음악은 재즈 오르간 연주자 찰스 앨런드의 ‘스톰프’다. 펑키하고 기분이 좋다고 하루키 씨가 음악을 소개했다.




https://youtu.be/NSRcqAVfs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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