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Dec 25. 2022

17. 연탄가스

소설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면, 가치체계의 붕괴, 니콜라이 고골의 '코' 같은 세계, 광신도의 신에 대한 열정, 비 온 뒤 바다의 혼탁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빠져나간다. 이계와 현실의 분간도 어렵다. 가난이 창피하지는 않으나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연탄가스를 마시면 몽롱하고 모호한 엔야의 노래가 늘 따라다니는 기분이었다. 안개가 껴 있는, 그 속에서 발이 점점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드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개근상을 받지 못했다. 기와집은 연탄아궁이로 난방을 하는데 매년 장판을 거둬내고 수리를 하는데 연탄가스라는 놈은 비현실의 이종처럼 여지만 보이면 틈을 벌리고 잘도 빠져나와 잠을 자고 있는 우리 가족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매년 겨울이 되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응급실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 죽일 놈의 연탄가스, 벗어날 수 없는 연탄가스는 다 큰 동생도 정신을 잃게 만들고,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리던 아버지가 동생을 내려놓고 숨을 헐떡거렸다.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연탄가스를 마셨는데 그들은 그저 어른이라 연탄가스 중독이 괜찮은 것일까. 뇌에서 어떤 서번트 물질이 흘러나오기에 연탄가스마저 물리치는 것일까. 하지만 두 사람은 단지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연탄가스는 힘 빠진 괄약근에서 새어 나오는 방귀처럼 수리한 아궁이에서 엑토플라즘처럼 빠져나와 무거운 여귀처럼 낮게 돌아다녔다.      

            

 추워지는 날씨에 득재의 방에서 자주 잠을 잔 이유는 학교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득재의 방은 보일러였다. 엄마도 득재의 방에서 잠을 잔다고 하면 아무 소리를 하지 않았다. 득재가 2학년 겨울방학에는 울릉도 집으로 가지 않아서 우리는 몽땅 득재의 방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겨울을 났다. 득재의 방은 보일러 덕분에 아랫목이 없고 대부분, 골고루 따뜻했다. 상후를 제외하고 대부분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집에 살았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를 보며 인간을 위해 한껏 타오르는 연탄이 좋아야 했지만 우리는 연탄이 싫었다. 그 압도적인 냄새는 이미 얼굴을 으, 이렇게 만들었다.       

          

 득재의 방은 너무 뜨끈뜨끈해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철이는 엉덩이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지갑에 들어있던 모든 것이 우글우글하게 일그러졌다. 2학년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날, 붉은빛과 반짝이는 불빛과 녹색의 털실 같은 것을 보며 나는 9살짜리 오빠와 5살짜리 여동생의 작은 이야기를 생각했다.   


       


 오빠, 저기 반짝이는 전구는 따뜻해?     

          

 글쎄, 아마도 따뜻하지 않을까.     

          

 우리 집엔 왜 트리가 없어?   

            

 작은 남자아이는 자신보다 더 작은, 허리밖에 오지 않는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여다본 실내는 따뜻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남자아이와 여동생은 창 안의 트리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어른 키만 한 트리에는 반짝이는 전구가 쉴 새 없이 깜빡 깜빡였고 네 명의 가족은 트리 옆의 식탁에 앉아서 케이크와 만두를 먹고 있었다. 크고 따뜻한 만두를 그 집 아이들이 후후 불어서 맛있게 먹었다. 엄마가 뜨겁다며 식혀주었다. 아이들은 웃었다. 부러웠다. 행복해 보였다.     

          

 오빠, 나도 저거 먹고 싶어.         

      

 응, 내년엔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도 하고 케이크하고 만두도 먹자.      

         

 정말? 와 신난다.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동생도 오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켜지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렇지만 입으로 에이 또 거짓말,라고 말해 버리고 나면 작은 소망까지 전부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집에는 처음 들어보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는 너무 따뜻하게 들리고 좋아서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남자아이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동생인 여자아이는 외투가 얇았다. 두 아이는 굽은 등으로 창가에 붙어서 여동생은 케이크를 쳐다봤고 남자아이는 왕만두를 쳐다보았다. 창 안의 아름답고도 영화 같은 모습을 보느라 추위도 몰랐다. 발갛게 변해버린 코끝으로 하얀 눈의 결정체가 내려앉아서 녹았다.      

         

 야아, 누이다 오바.       

        

 동생의 입은 얼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오빠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동생의 어깨를 덮어 주었다.        

       

 눈 내린다 오빠, 아빠는 언제 와?        

       

 이제 곧.        

       

 오빠, 아빠 오면은... 까지 말하고 동생은 기침을 한 번 하고 웃었고 오빠는 동생의 코를 자신의 옷소매로 닦아 주었다. 어린 남매는 남몰래 가슴 한구석에 겨울의 꿈을 간직했다.



Enya -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https://youtu.be/Dt9l_SVvyRc

Frosty Christmas Lover
매거진의 이전글 16. 즐거운 사라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