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생각나는
희성이는 어머니가 새어머니였다. 그렇지만 새어머니라고 해서 동화에서처럼 버림을 받거나 사이가 나쁘거나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새어머니와 희성이는 사이가 좋았다. 새어머니와 희성이는 나이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도 않았다.
희성이는 형과 누나가 있고 아버지는 동네에서 선망받는 철학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희성이는 새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동생을 너무나 좋아했다. 아주 귀여운 꼬마였다. 우리도 저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동생이 있다면 마구마구 귀여워해주고 싶었다.
희성이는 늘 밝은 모습인데 그 안에 서늘함 같은 게 있었다. 희성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으로 놀러 오게 했다. 우리는 보통 친구들 집에 놀러 가서 라면 끓여 먹고 부모님 몰래 소주나 맥주를 홀짝거렸다. 친구들의 방은 거의 나의 방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희성이네 집은 다른 집에 비해 한문이 새겨진 액자도 많고, 가지런하고 고고한 장식품 때문에 엄숙해야만 할 분위기가 있었다.
희성이는 우리를 불러 자기 방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꼭 거실에 붙어 있는 아버지의 철학관 사무실에서 술을 마셨다. 사람들이 대기하는 공간에서 친구들이 모여 앉아서 술을 마셨지만 왜 그런지 다른 친구들 집처럼 깔깔거리며 마구 떠들며 놀 수 없는 분위기였다. 희성이는 아직 십 대였고 나름대로 아버지에게 저항을 하고 있었다.
희성이는 가끔 우리를 친 어머니에게도 데리고 갔다. 희성이 어머니는 곱창전골 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희성이와 가면 어머니는 친구들 왔다며 맛있게 곱창전골을 끓여 주었다. 붉은 양념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가운데 그 속의 곱이 가득한 곱창이 잘 익어 갔다.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희성이는 어머니 앞에서는 무뚝뚝했다. 되려 우리가 민망할 정도였다. 이게 진짜 곱창전골 맛이야. 라며 고개를 숙이고 자작자작 끓어오르는 곱창전골을 퍼먹었다.
곱창전골은 정말 밥도둑이다. 물론 술안주로도 좋지만 하얀 밥 위에 퍼지는 붉은 양념의 곱창전골은 그야말로 위장을 쥐어짠다. 한 입 떠서 입안에 넣었을 때 톡 터지는 곱의 맛이란. 고등학생 주제에 너무나 일찍 곱창의 맛을 알아버렸다.
요즘은 곱창전골 집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집에서 가끔 해 먹는 정도다. 집에서 해 먹는 곱창전골은 전문점만큼 맛은 없다. 그러나 곱창이 아닌가. 곱창이 들어가면 어지간하면 전골은 막 끓여도 맛있다. 집에서 해 먹는 전골의 장점은 상상력의 산물이 된다는 것이다. 전골 속에 이것저것 막 넣어서 끓일 수 있다. 단점은 맛을 보장하지 못한다.
야! 곱창전골에 왜 만두야!
그럼 만두는 내가 먹을게.
그렇지만 바닥에 깔린 곱창을 먹기 전 눈에 보이는 두부와 만두를 먼저 건져 먹어도 먹을 만하다. 전골의 진짜 단점은 천천히 먹게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뜨거울 때 후후 불어 빨리 먹게 된다. 그래야 좀 더 맛있고, 좀 더 전골답게 먹을 수 있다. 그 단점이 장점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희성이는 잘 지내는지.
오늘의 선곡은 제대로 흑인재즈를 느낄 수 있는 빌리 홀리데이의 웬 유어 스마일링 https://youtu.be/LC_XM4l1D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