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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4. 2023

초록물고기

영화 이야기

초록 물고기에서의 막동이 한석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초기처럼 갓 나온 새싹이라 질기고 엉킨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잘 익은 배추 같은 깊이의 맛을 낸다. 다시 본 초록 물고기에서의 한석규는 정말 새롭고 연기가 아닌 것처럼 연기를 한다.


초록 물고기에서의 심혜진은 너무나 예쁘다. 냄새나고 황폐하고 더러운 기름 웅덩이에서 핀 아름다운 한 송이의 장미 같다. 배태근과 막동이가 나이트에서 같이 있는 장면에서 심혜진, 미애는 술에 취해 일어나서 미친년처럼 흐느적 춤을 춘다. 그 춤은 후에 나온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김혜자의 춤을 떠올리게 한다. 필시 봉준호는 이창동의 초록물고기의 미애의 영혼이 빠져나가 버린 이 춤을 본 것이 틀림없지 않을까.


배태곤 역의 문성근은 비열함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자신의 아픈 과거를 막동이에게만 이야기를 해주고 막동이의 꿈이 뭔지 물어보는 유일한 사람이다. 억약부강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온 가족이 식당을 하고팠던 소박한 꿈을 지닌 막동이는 꿈에 다가갈수록 꿈에서 점점 멀어지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나이트에서 취객들에게 욕을 듣고 던지는 물건을 맞는 무대 위의 미애를 위해 막동이는 물불 가리지 않는다. 맥주병을 머리로 깨고 흐르는 피를 보이며 ㅅㅂ 누구든지 미애를 건드리거나 욕보이면 다 죽는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무대 위의 미애에게 손을 건넨다. 손을 잡고 내려오는 미애를 안아주는 막동이와 막동이의 품에 안긴 채 나이트를 나가는 미애.


가진 건 깡과 악 밖에 없는 막동이는 배태곤의 마음에 들며 결국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만다. 형 기억나? 이 장면을 다시 보면 얼마나 명장면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죽이고 난 후 밀려오는 그간 가질 수 없었던 감정과 자신을 지키고 있던 마음속 그 무엇이 결락함으로 공포에 휩싸인다.


초록 물고기가 되고팠던 막동이는 결국 가족보다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고 꿈을 물어봐준 배태곤에게 죽음을 당하고 만다. 막동이의 죽음을 표현하면 허무다. 그저 허무하게 막동이는 죽고 만다. 막동이를 잃은 엉망진창의 가족은 삶을 잃은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으로 돌아온다.


몇 년 후 배태곤과 임신을 한 미애는 큰나무집이라는 한 식당을 찾게 되고 식사를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미애는 마당의 큰 버드나무를 보고 내내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고 자동차 안에서 막동이에게 받은 사진을 보고서는 이 식당이 막동이의 집이었음을 알고 오열을 한다.


이창동 감독은 얄밉다. 조폭의 누아르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밑바닥의 삶을 개구리 배를 해부하듯 보여준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관계와 구조를 잔뜩 가진 사람들이 사랑과는 멀어지면서 엄청난 공포, 자기 내부에 대한 혐오와 미래의 닥칠 두려움, 그리움, 순수성의 상실에서 오는 비애를 화면으로 보여준다.


큰 성, 전화 끊지 마, 전화 끊지 마, 전화 끊지 마. 큰 성 생각나? 빨간 다리? 빨간색 철교. 우리 어렸을 때 빨간 다리 밑으로 물고기 잡으로 많이 다녔었잖아. 내가 저 언젠가 초록색 나는 물고기 잡는다고 그러다가 스렙빠 잃어버려가지구 큰 성이랑 형들이랑은 내가 하루 종일 놀지도 못하고 쓰렙빠 찾으러 다니고 그랬잖아.


그리운 추억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막동이의 모습이 내내 생각나는 초록 물고기였다.



마지막 엔딩 장면 https://youtu.be/dGKMCHon13Y

choe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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