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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4. 2023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담배 냄새가 괜찮을 때가 있어

필립 거스턴, 인 더 스튜디오 1975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건강이니 뭐니 하지만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인간이다. 하지만 담배가 몸에 맞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면 먹은 음식을 다 토하고 만다. 어릴 때에는 그걸 극복하리라 했지만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군대에서 담배가 보급품으로 나오는데 한 대만 피우면 그전에 먹은 음식물을 다 토해버리는 것이다. 식후한대는 어쩌고 같은 이야기가 있지만 나와는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또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면서 피우는 담배야 말로 정말 맛있다는데 나의 경우는 술자리에서 술김에 담배를 피우는 순간 그걸로 그 술자리는 끝이다. 술은 물론이고 안주로 먹은 것까지 전부 게워내야 했다.


오바이트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속에 있는 내장들이 전부 목구멍 바로 밑까지 올라오는 더러운 기분이 들며 눈동자가 막 튀어나올 것처럼 고통스럽다. 근래에는 그런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해서 이제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사실 인간이 고통 자체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면 그 고통 때문에 인간은 삶을 이어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고통으로 인해 힘들었던 순간을 기억할 뿐이다. 그때 그 아픔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아픔 자체는 기억나지 않고 기억해서도 안 된다. 아무튼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단지 그렇다. 담배만 피우면 먹은 음식물을 다 토하기 때문이다.


담배냄새는 맡기 싫은 냄새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대부분 싫은 냄새는 인간에게서 나는 냄새다. 머리냄새, 발 냄새, 입 냄새 등 씻지 않고 있으면 풍기는 아주 묘한 냄새가 있다. 노숙자들 옆에 가면 나는 인간의 냄새. 인간 자체는 아마 지구에서 가장 더러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씻지 않으면 혀로 핥아서 위생을 유지하는 야생동물보다 더 심하고 더러운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지독한 냄새도 중독이 되면 또 좋아서 계속 찾아서 맡는 사람도 있다. 정수리 냄새가 좋아, 나는 너의 은밀한 곳의 냄새가 좋거든, 발 냄새가 이상하지만 계속 맡게 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담배도 인간만이 피워서(간혹 침팬지가 피우는 영상도 있지만) 냄새가 아주 싫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담배냄새가 무척 싫지만 괜찮을 때가 있다. 왜 있잖아, 갓 목욕을 하고 나와서 바로 피우는 담배 냄새, 정확하게는 담배 연기의 냄새. 그건 또 이상하지만 냄새가 나쁘지 않다. 목욕 후 냄새와 섞여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그렇게 싫어하던 담배 연기 냄새가 괜찮은 냄새라고 느꼈다. 담배 연기 냄새가 싫지 않다니.


너무너무 싫어서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생겨난다. 인간관계도 그럴 때가 있다. 저 새끼 너무너무 싫어서 내내 어떻게 피해 다닐까, 어떻게 골려 줄까, 소설에 등장시켜 파리로 변하게 만들어 파리채로 탁 찍어 죽여야지 같은 생각을 내내 하다 보니 기묘하게도 밀어내는 관계가 당기는 관계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남녀도 그럴 때가 있다. 죽도록 좋아해서 결혼까지 했는데 좋아한 그 이유가 이혼하는 계기가 되는 것보다, 너무 싫어서 티격태격하다가 좋아하게 되어서 끝까지 같이 나란히 가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그러나 담배 냄새가 너무너무 싫을 때가 있다. 안 그래도 싫은 냄새인데 김 부장님 말이야, 점심으로 비빔냉면 먹고 커피믹스 한 잔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데 그때 말 할 때 냄새가 아후, 게다가 말이지 담뱃내가 손가락 사이에 뿌리까지 박혀 있어서 담배냄새가 김 부장에게서 늘 나는데 너무 싫어. 재떨이에 박힌 담배의 찌든 내가 손가락 사이에 들어붙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냄새는 너무나 싫다. 생각해 보면 담배냄새는 평균적으로 싫은 냄새에 속하지만 피우는 사람에 따라 조금은 달라지는 거 같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이가 피우는 담배냄새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피우는 담배냄새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목욕 후 바로 나온 그녀가 샴푸향을 휘달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냄새가 그렇게 싫지 않다. 이상하지만 그렇다. 담배냄새도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말인데 담배 연기 냄새를 비누냄새나, 상큼한 페브리즈나 오렌지 향, 짜장면 냄새가 나는 걸로 개발하면 어떨까.


필립 거스턴



오늘의 선곡은 여정이가 동은에게 불러준 노래, 그 노래가 절묘하게 여정의 마음을 표현했다. 바로 그 노래 https://youtu.be/kCPUk0imo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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