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근래에 들어 큰 이유 없이 화가 나고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화를 이유 없이 자주 낼까?라고 해봤자 내가 인문학자도 아니고 인간에 대해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라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왜 그런지도 모르게 분노를 배설하는 모습이 늘어났다.
오늘 아침에도 도로에서 벤츠와 트럭이 경적을 울리다가 도로에 정차를 하고 서로 마구 욕설을 쏟아내며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봤다. 이 모습을 보니 스티븐 연 주연의 ‘성난 사람들’의 첫 장면이 떠올랐다.
이 시리즈의 이야기는 작은 것에서 쌓인 불평이 분노가 되어서 결국 곪을 대로 곪아 있다가 곯아서 터져 버리는 이야기다. 무척 재미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이 주인공이다. 감독과 각본가도 한국인 일본인이며 시리즈가 뒤로 가면서 바뀌기도 한다. A24에서 제작했다. 이 제작사에서 나온 영화들이 대체로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거의 다 봤는데 재미있었다. 미나리는 그렇게 재미있게 보지는 않았다.
이 이야기는 말 그대로 현대를 살아가면서 쌓이는 작은 불평이 나중에는 커다란 분노가 되어 어이없는 곳에서 터지면서 사고와 사건을 만들고 건들지 말아야 할 감정을 건들면서 상상 이상으로 일이 치닫는 이야기다.
요컨대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하는 가운데 문자를 잘 못 보냈거나, 자신에게 보내지 말아야 할 사진이 왔다던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점점 불만으로 쌓인다. 부부는 잘 나가지만 부부관계의 불만이 쌓인다. 그 속을 벌리면 시어머니와 섹스리스 같은 것들이 있다.
일본 배우 나오가 나오는 일본의 한 드라마에도 섹스리스를 다루면서 불만이 쌓이고 쌓여 다른 쪽으로 풀어 버리는 이야기가 있다.
스티븐 연이 연기한 대니는 어릴 때부터 동생이 자신보다 운동도, 공부도, 몸도 좋아서 이상하지만 질투를 느낀다. 자신과 같기를 바라면서도 입으로는 자신에게서 떨어져 살아라고 소리를 지른다. 같이 일을 해도 자신은 뭐 빠지게 일을 하는데 동생은 주인 여자와 희희낙락이다.
생활의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사람들이 마트에서 운전을 하며 나오다가 부딪힐 뻔한다. 거기서 서로 터지고 만다. 마치 오늘 아침에 벤츠와 트럭의 분노처럼. 영화 속 자동차도 벤츠와 트럭이었다. 대니와 에이미는 자신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화를 낸다. 하나를 끝내면 하나가 터지고 그 하나를 막으면 두 개가 터지면서 사건이 이상하게 점점 불어난다. A24답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스릴러 분위기가 깔리면서 사건은 상상이상으로 치닫다가 하하하 하고 웃음이 터지는 부분도 나온다.
코미디와 스릴러를 아주 처절한 평온함으로 잘 버무려놨다. 미국 내 동양인들이 주인공이라 인종차별을 당하는 장면이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지만 없다. 무엇보다 한 회가 끝날 때마다 흐르는 음악이 아주 좋다.
이 드라마를 보며 주인공들이 생활의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서 화를 참지 못하고 배설하듯이 뱉어내는 것이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 봤다. 그 바닥에는 불안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참지 못하는 화를, 이 분노가 상대방의 의해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내 속에서 나오는 건지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화를 배설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아마도 생활의 분노가 쌓이듯이 불안이 강하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생활의 분노는 불안이 늘 막고 있었다. 불안은 너무나 무겁고 커서 나를 압박하고 생활의 분노에 대해서 참으라고만 했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꼭지가 풀려버리면 전혀 그래서는 안 되는 장소에서, 그러면 안 되는 사람에게 화를 배설하게 된다.
https://v.daum.net/v/20230511060116692
이 기사에서 난동을 피운 피의자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노를 식당이라는 장소에서 그러지 말아야 할 대상에게 배설을 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폭주를 했다. 재판부에서도 피의자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1심에서 200만 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배설을 해버린 결과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831500204
일상에서 쌓인 분노가 이렇게 배설이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그저 화가 나기 때문에 분노를 배설하는 것이다.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하고 태극기를 불태우는 것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 때문에 생활 속에서 쌓이고 쌓인 분노를 어쩌지를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인천에서는 3월에 아파트에서 이웃집 3곳을 향해 쇠구슬을 발사해 유리창을 깨트린 60대 남성이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를 받았고, 아내와 두 아들을 살해한 40대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기도 했다. 올리브영 같은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화장품 전문점에서 진상 부리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떡진 머리에 파우더를 바르는 여자, 보자마자 반말하는 여자, 만진 물품을 다른 자리에 막 넣어두는 여자 등.
언젠가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쌓인 분노를 많이 배설하게 되는 계기를 찾아보면 댓글이 나타나고부터일지도 모른다.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고 상대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 이런 모습도 ‘성난 사람들’을 보면 잘 나타난다. 대니는 에이미에게 전화를 해서 마구 욕을 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 라면서. 에이미는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마구 화를 낸다. 에이미 역시 상대가 나를 모르니까 계정을 통해서 자신이 아닌 척을 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댓글로 욕을 하면 나도 하게 된다.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리고 이 분노는 수위를 넘어서 부글부글 거리다 터지고 만다. 상대방이 누군지, 어디에 사는지 모르니까 지금 내가 있는 곳,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분노를 터트리게 된다.
불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 역시 불안증 때문에 생활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어머니 역시 불안증 때문에 병원을 오래 다녔다. 분명 나도 생활 속에서 쌓인 분노가 있을 것이다.
가끔씩 꿈을 꾼다. 누군가를 때리는 꿈. 누군가는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이다. 군대에서 많이도 맞아서 안경까지 깨졌었는데 나는 제대할 때까지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제대를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화가 나고 안 좋은 일을 당했어도 누군가를 때리지 못했다. 이게 억울해서인지 가끔 꿈에서 누군가를 때린다. 나는 이 모든 게 불안이 밑바닥에 진하고 두껍게 깔려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은영의 말로 불안이란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이며 불안 때문에 인간은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가끔 이런 말을 보는데,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절망하지 마라 진짜 절망은 꿈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꿈이 뭔지 이제는 모른다. 어쩌면 꿈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분노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4년 동안 받은 66세의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말이 항상 옳은데 타인이 아니라고 하면 그 시점에서 분노가 올라오고 쌓여 화를 냈다고 했다. 처음 상담을 받으면서 굉장한 모순된 벽에 부딪혔다고 했다. 자신은 잘못이 없는데 내가 왜 이런 곳에 와서 상담을 받아야 하나, 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4년 동안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자신의 문제를 고치려고 상담을 받으러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려고 상담을 받으러 간 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마음의 안정이 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마 8월 이후에는 분노를 배설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기름 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차로 놀러 가는 사람을 제외하고 배달업, 운송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계에 타격을 입을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타인에게는 한 없이 친절한데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할,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분노하고 화를 낸다. 내가 팔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분노보다 친절을 베풀자.
오늘의 선곡은 성난 사람들의 수록곡으로 후바스탱크의 더 리즌 https://youtu.be/qQ0zxuWFxrY
아무튼 잊을 만하면 여기저기 영화, 미드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와서 아주 흡족. 노래는 너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