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을 들어 보아요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한복을 입은 경자(사와지리 에리카)에게 김치 냄새가 난다며 시비를 거는 일본 남자고등학생이 나타난다. 경자와 친구는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남자들은 계속 시비를 걸며 조센징이라 경자를 괴롭히다가 경자의 옷깃에 장난을 친다. 친구가 그 자리를 빠져나가 소식을 조선 고등학교에 전한다. 조선 고등학생들이 일제히 나타나서 경자를 괴롭힌 놈을 찾는다. 일본 남자고등학생들은 이 조총련계 조선고등학생들을 무척이나 두려워한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경자를 괴롭힌 놈에게 달려가서 박치기로 때려눕힌다. 바로 조선고등학교에서 일진을 먹고 있는 안성이었다.
안성은 이 쪽발이새끼들이라며 아이들에게 일본 고등학생들이 탄 버스를 밀어서 쓰러트리자고 한다.
학생들은 울분에 못 이겨 안 그래도 일본에게 핍박받는 생활인데 잘 됐다 싶어서 전부 버스에 붙어서 버스를 밀어서 넘어트려 버린다. 그 속에 있던 또 다른 주인공 고스케는 식겁한다.
이 사건은 신문에 크게 나고 선생님에게 조총련계 조선인들은 역사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타국에서 디아스포라 문화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강한 사람들이라고 고스케는 생각한다. 고스케는 포크 록 음악을 하고 싶은 그저 그런 청소년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고스케에게 조선고등학교에 가서 패싸움보다는 친선 축구시합을 하자고 제안을 권한다. 고스케는 무서움을 안고 벌벌 떨면서 학교로 찾아간다. 무서운 안성에 일진들이 고스케와 친구를 윽박지른다.
고스케는 무서운 그 학교에서 플루트를 부는 경자를 보고 반하게 된다. 경자가 조선인 학생들과 함께 연주하는 그 곡은 ‘임진강’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곡이었다. 고스케는 경자를 만나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고스케는 임진강이라는 곡을 연주하기 위해 기타 판매점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음악을 하는 사키자카(오다기리 조) 형에게 임진강이라는 노래에 대해서 듣게 된다. 노래는 남북이 임진강을 두고 갈려져서 같이 흘러 흘러 다시 합쳐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라는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고스케는 용기를 내어 경자에게 전화를 걸어 좋아하는 밴드 ‘더 포크 크루세더스’의 공연을 같이 보러 가자고 한다. 하지만 경자는 퇴짜를 놓는다. 대신 그날 공원에서 작은 공연을 하는데 보러 오라고 한다. 고스케는 얼굴이 밝아지며 가겠다고 약속을 한다.
임진강이라는 음악으로 고스케는 경자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포크록을 하고 싶었던 고스케는 경자와 함께 조선의 아픈 역사를 알아가면서 공원에서 임진강을 함께 연주하게 된다. 그때 두 사람의 공연을 지켜보던 라디오 피디가 고스케에게 명함을 주며 라디오에 출연하기를 바란다.
주인공 안성은 일본을 벗어나 고향으로 가서 축구선수가 되려고 한다. 안성과 사귀던 모모코는 안성이 자신의 전부라 믿는다. 안성은 늘 일본에 반항적이고 일본의 야쿠자들과 패싸움을 하고 다니는 모습에 늘 불안하다. 모모코는 자신이 안성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걸 알지만 안성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
강자(마키 요코)는 조선고등학교에 몇 년 늦게 들어간 누나뻘로 안성이 북한으로 가버리면 이제 교토에서 힘을 부릴 수 없다는 걸 알고 간호사가 되어서 병원에서 일을 한다. 거기서 모모코를 돌봐주면서 안성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안성이 일본의 야쿠자 학생들과 싸우게 된다. 일본 학생들은 오이김치 냄새가 난다며 달려들고 안성은 쪽발이 새끼들아 하며 달려든다. 일본 학생들은 너희 나라는 갈라졌다고 시비를 건다. 조국은 분단되었지만 일본에서만은 조선은 통일이 되었다고 느끼는 안성. 부산에서 온 김일이라는 청년도 안성과 조선고 학생들과 함께 일본 야쿠자들과 싸운다.
안성의 왼팔, 재덕이가 일본의 학생들에게 홀로 찾아갔다가 집단으로 구타를 당하고 도망치다 트럭에 숨지게 된다. 재덕이 숨을 거두면서 재일교포들은 전환기를 맞이한다. 장례식 장은 울음바다가 되고 안성은 장례식장을 찾아와서 일을 도우는 고스케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고 형제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있던 어른들은 그런 고스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중 한 어르신(사사노 타카시)에게 일본인(고스케)은 장례식장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는다. 어르신은 일본인에게 당한 설움을 울면서 토해낸다.
[고향에서 조용히 농사짓던 사람한테 불쑥 종이 한 장 내밀더니 트럭에 실려갔어. 할머니는 우시고 논바닥에 주저앉아서 피눈물을 흘리셨어. 부산에서 탄 배 위에서 바다에 빠져 죽을까도 생각했어. 온 나라가 텅텅 비도록 끌려왔단 말이다. 너희 일본 젊은 놈들이 뭘 알아. 지금 모르면 앞으로도 절대 모르는 거야, 이 등신들아! 우린 너희하고 달라. 너희가 먹다 남긴 돼지밥 훔쳐 먹다가 야쿠자한테 걸려서 발목이 부러졌어]
고스케는 좋아하는 경자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이념이 뭔지, 침략이 뭔지,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수 없는 것에 화가 난다. 경자는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면 고스케 너는 조선인 될 수 있냐고 할 때 고스케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전부 이상하다. 왜 삶이 이토록 힘겨울까.
고스케는 가지고 있던 기타도 부숴버린다. 개천에 기타를 던져 버리고 몸뚱이만 라디오로 가니 고스케를 끝까지 피디가 기다려주었다. 피디는 고스케에 그때 공원에서 부른 그 아름다운 곡을 불러라고 한다. 하지만 라디오 국장이 내려와서 호통을 치며 그 곡은 일본에서 금지곡이라 부를 수 없다고 한다. 그때 피디가 국장에게 소리를 지른다. 노래 부를 자유도 없는 나라가 무슨 나라냐며 고스케에게 임진강을 부를 수 있도록 국장을 보내버린다.
고스케가 부르는 임진강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경자는 라디오를 통해 고스케의 임진강을 듣고 장례식 장의 어른들에게 라디오로 그 노래를 들려준다. 이 노래 고스케가 부르는 거냐? 경자가 그렇다고 하자 모두가 그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
모모코는 끝내 버스에서 양수가 터져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병원에서 강자(마키 요코)를 찾는다. 강자는 이런 몸인데 왜 안성에게 알리지 않느냐고 모모코의 출산을 도운다. 모모코는 북한으로 갈 안성에게 짐이 될 수 없다며 알리지 말라고 한다. 홀로 분만을 하려는 모모코.
그때 안성은 재덕을 죽은 일본 야쿠자들을 찾아가서 패싸움을 한다. 서로가 죽기로 싸운다. 그곳에 강자가 찾아와서 모모코가 곧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고 알린다. 안성은 모든 걸 제쳐두고 모모코가 있는 병원으로 온다. 그리고 힘겹게 낳은 모모코에게 수고했다고 말한다. 옆을 지켜주는 안성을 보며 모모코는 눈물을 흘린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안성은 모모코가 낳은 아기를 안고 오열을 한다.
임진강을 부른 고스케가 라디오에서 나오니 경자가 와 있다. 수없이 연습했던 말 “우리 함께 해요”를 말하는 고스케.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노래 ‘임진강’은 57년에 만들어진 북한의 노래로 일본 가수 The Folk Crusaders가 일본어로 번안해서 불렀다. 일본 배우 사사노 타카시가 한국의 어르신 중 한 명을 연기하면서 울부짖었던 대사 중에 “부산에서 탄 배 위에서”라는 말이 있다.
당시 일본의 조총련계는 북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대부분 부산 사람과 경상도 사람들이었다. 재일교포는 고향이 북한도 아니며 공산주의와도 관련이 없지만 일본 패망 후 한국으로 가려고 해도 돈도 없고 이승만 정부 당시 북한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재일교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한국전쟁으로 인구를 줄어든 북한은 노동력이 필요해서 일본으로 가서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말로 재일교포들과 접촉을 했다. 그리하여 북한으로 많은 재일교포가 들어갔고 일본에 남은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조총련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박치기 #사와지리에리카
고스케와 경자의 임진강 공원공연 https://youtu.be/k6t5l6sg-kk
영화는 이 모든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풀어냈다. 무엇보다 너무나 예쁘게 나오는 경자의 사와지리 에리카(베츠니로 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뭐 어때ㅋ)를 비롯해서 나오는 일본 배우들이 전부 재일교포를 잘 연기했다. 사와지리 에리카의 오빠, 삼촌, 어머니라고 말하는 모습이 귀여운 이때의 모습. 마키 요코, 키리나티 켄타, 에구치 노리코, 카세 료 등 지금은 탑이 된 배우들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카세 료가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강자로 나온 마키 요코는 20여 년이 흘러 용길이네 곱창집에서 또 한 번 한국인으로 나온다.
여기 또 한 편의 일본 영화가 있다. 일본 영화이자 한국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이다. 1960년대 일본 오사카의 판자촌에서 사는 한국 가족 용길이네가 곱창집을 하며 일본에 녹아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일본 전시에 나가서 한쪽 팔을 잃어버린 아버지 김상호,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가서 다리를 저는 큰 딸 마키 요코, 가족의 일이라면 다 던지고 나서는 엄마 이정은, 지긋지긋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이 생활 속에서 돌파구를 찾는 둘째 딸 이노우에 마오, 그의 철없는 예비 남편 오오이즈미 요, 닐리아를 기가 막히게 부르며 가수를 꿈꾸는 셋째 딸 사쿠라바 나나미, 그리고 조선인이라 학교에서 늘 맞아서 학교 가기 싫은 일본 사립학교 다니는 막내 토키오. 이 모든 등장인물이 한국인으로 나온다.
내가 대사를 듣기에 한국 배우들이 하는 60년대 일본 대사는 잘하는 거 같은데 일본 배우들이 말하는 한국어는 어눌하다. 영화 속에서도 우리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못한다고 나온다. 그래도 사쿠라미 나나미는 한국어를 꽤 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의 내놓아라 하는 배우들과 한국의 배우들이 한 가족으로 나온다. 보면서 일본 배우들이 좀 대단하다고 생각이 드는 건 일본의 잘 나가는 배우들이 한국인을 연기하는데 그들의 입으로 한국인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이지만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김치는 김치다, 다들 한국인들이 우습지? 같은 대사를 한다.
영화를 보면 각본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요소가 곳곳에 있어서 보는 내내 재미있다. 하지만 폐부를 찌르는 대사들이 일본 속 1세대 한국인들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재일’은 모순덩어리야. 차별과 편견 속에서 일본을 증오하고 한국을 그리면서도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니.
당연하지, 한국 가봤자 먹고살 길이 없잖아. 한국어도 서투른데.
결국 이거야, 돈에 묶여 있는 거지. 한 손에 돈, 한 손에 눈물. 눈물의 ‘재일’ 스토리.
벗어날 수 없으니 그곳에서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그놈의 고문 같은 희망을 품으며 내일은 밝으리라.
재미있게 봤다. 각본이 정말 좋다. 정의선 감독은 일본 영화판에서 각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본 영화계의 안톤 체호프라 불린다. 비록 60년 대의 이야기지만 80년대, 2000년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영화 이전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용길이네 곱창집, 야키니쿠 드래곤으로 연극으로 관객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