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
인간을 관통하는 결락의 결정체, 배위와 모순, 사랑을 하면서 환희와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 미친 음악,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많은 영화인들이 영화에 사용하고 있다. 아다지에토가 영화 역사상 가장 잘 어울렸던 영화가 ‘베니스에서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숨결 자체가 아다지에토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이다.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의 선율이 몹시 아름답고 마음을 지그시 누르는 이유는 타악기나 관악기가 사라지고 현악기로 연주되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이 말러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와 한 몸인 이유는 헤어질 결심이 서래의 이야기이며, 아다지에토가 서래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러는 아다지에토를 사랑하는 아내 알마 쉰들러를 위해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1910년 병으로 쓰러질 때까지 이 곡을 수정에 수정을 거쳤다.
알마는 1902년 말러와 결혼을 하지만 알마는 독일 예술 학교인 바우하우스 이념의 창시자인 그로피우스와도 사귀고, 화가 코코슈카하고도 사귄다. 그의 엄청난 그림 ‘바람의 신부’ 속 여인이 알마 쉰들러다.
처음 말러가 알마를 위해 아다지에토를 작곡했을 당시에는 이 곡은 그야말로 사랑으로만 충만했다. 하지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수록 불안, 사라지는 것, 잊힘, 그리움, 죽음이 곡에 스며들게 된다. 사랑을 하게 됨으로 그 행복 속 결락과 죽음을 보게 된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가 알마를 쏙 빼닮았다. 영화 초반 서래의 남편이 산에 오르면서 이런 대사를 한다. “말러 교향곡 5번 1악장부터 듣기 시작하면 4악장이 끝나갈 무렵 산 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 5악장을 듣고 내려온다.” 하지만 마지막 5악장은 듣지 못한 채 추락사하고 만다.
아다지에토는 산으로 시작해서 바다로 끝난다. 헤어질 결심 역시 산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바다에서 끝이 난다. 영화 속 미장센을 들여다보면 문형과 색감에서 잘 드러난다. 서래 집 벽지는 산인지 바다인지 모호하다. 박찬욱 사단으로 불리는 류성희 미술감독의 작품이다. 류성희 미술감독의 손을 거치면 영화 속 미장센이 마치 움직이는 예술품으로 보이는 마법이 펼쳐진다.
아다지에토는 카타르시스인 동시에 죽음을 표현한다. 불꽃처럼 만개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삶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에서 안개가 잔뜩 낀 산과 바다를 표현했다.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헤어질 결심의 테이크 테이크 사이의 결, 그 숨결 사이에 녹아있다.
클래식 마니아인 박찬욱은 8년 전 탕웨이가 코오롱 스포츠 광고에 말러의 아다지에토와 함께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내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에 그 장면을 오마주 했다. 코오롱 스포츠 광고 속 흐르는 아다지에토의 탕웨이는 너무 예쁘다. 헤어질 결심에 아다지에토가 흐른다. 서래는 말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죠.
편집을 너무 잘했다. 영화 이야기와 아다지에토가 절묘 https://youtu.be/-MF0hJNqk2U
하루키의 많은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인간 내면의 깊은 감정 중에 결락이 많이 나온다. 결락이란 말 그대로 있어야 할 부분이 빠져서 떨어져 나간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마음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난 뒤 심각한 결락감을 느끼고 그 공백을 채우려 안간힘을 쓴다.
이 결락을 가장 잘 느끼게 하는 음악이 말러의 아다지에토이며, 결락감을 견딜 수 없어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가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말러리안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말러의 교향곡 아다지에토가 영화 내내 흐르는데 요동치는 가슴을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어째서 아다지에토는 이토록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까. 말러는 아다지에토를 1901년에 작곡을 했는데, 그때 41살의 말러는 작곡가, 지휘자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당시 최고의 여인, 말러보다 19살이나 어린 작곡자이자 사교계의 여인 알마 쉰들러의 사랑을 얻게 된다. 말러는 알마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아다지에토를 작곡하고 그녀에게 헌정했다.
음악이, 그리고 그 울림이 당신을 향한 나의 열망을 더욱 이끌어낸다면, 당신은 매일 아침 이 곡을 듣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향한 당신을 위한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알마 – 말러로부터
그런데 이 사랑하는 곡이 어째서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쓰이면서 영화를 명작으로 만들고, 이후 수많은 모순의 사랑을 담아내는 영화에 등장했을까. 알마에 의하면 말러는 늘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베니스의 죽음은 71년의 영화로 주인공 구스타프 에센바흐는 점점 몸이 쇠약해져 가기 시작해서 베니스로 요양을 오게 된다. 지휘자로 명성을 떨치던 에센바흐는 대중에게 버림받고, 아내마저 자신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에센바흐는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린 채 결락감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에센바흐는 아름다운 죽음을 생각한다. 자신의 몸보다 자신의 예술이 죽어가는 것에 대한 결락은 에센바흐의 몸과 마음에 곰팡이를 피우게 한다. 이렇게 꺼져가는 마음을 다시 뛰게 하는 건 베니스에서 만난 아름다운 소년 타지오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년에서 자신의 결락의 공백을 메워줄 무엇을 보았다.
이 미치도록 아름다운 소년에게 에센바흐는 몸과 마음을 전부 사로잡혀 버린다. 소년 때문에 좌절이 오고, 소년 덕분에 희망이 번갈아 찾아오면서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흐른다. 모순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율배반의 미학을 아다지에토가 보여주고 있다. 그 사이의 결이 너무나 섬세하여 새벽의 몽환화가 사람의 손끝에 놀라 꽃을 틔울 정도로 섬세한 음악이 아다지에토이다.
이 영화는 토마스 만의 소설을 비스콘티 감독이 구스타프 말러를 모델로 하여 원작의 작가를 영화 속에서 작곡자이자 지휘자로 변경했지만 이 영화는 지금까지 너무나 좋은 영화로 남아있다.
아다지에토에는 미칠 것 같은 결락과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용기와 마음속에서 요동치고 멈추지 못할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아다지에토가 영화 ‘베니스의 죽음’보다 더 영상과 한 몸이 된 작품이 있다. 영화의 모든 장면과 내용, 그리고 주인공들이 내쉬는 숨결에 붙어서 아다지에토가 느껴지는 영화가 바로 ‘헤어질 결심’이다.
바람의 신부
말러가 한평생 사랑한 여인, 검은 밝음과 하얀 어둠을 지닌 여자 알마 쉰들러, 결혼 후 알마 말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바람의 신부다. 그리고 화가 코코슈카의 그림의 제목이기도 한 바람의 신부. 그림 속 격정적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이 코코슈카와 알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알마와 말러 그리고 코코슈카는 실물과 싱크로가 대단하다. 알마는 루살로메를 닮았다. 릴케의 사랑을 받았지만 니체의 사랑도, 프로이트의 사랑도 받았던 루. 그런 루와 닮았다. 루와 알마는 어린 나이에도 당대 최고의 시인이며 문학가, 작곡에도 능력을 보였다.
알마는 화가, 작곡가, 지휘자, 건축가와 사랑을 했다. 클림트, 쉰베르크, 쳄린스키 등. 알마는 그림 ‘바람의 신부’처럼 바람과 같은 삶을 살았다. 40세까지 독신으로 저녁 자리에서도 작곡만 하는 말러를 알마는 만난다. 말러 교향곡 1번을 듣고 [금관이 과도하여 주된 멜로디가 없다. 문명화되지 않고 주제가 복잡하고 반복이 너무 많다. 지나치게 이국적이다] 같은 막힘없이 말러의 음악을 비평했다. 말러는 이 당돌한 어린 아가씨에 반하게 되어 둘은 사랑에 빠진다.
알마는 쳄린스키와 만나고 있었지만 말러에게 반해 23살 꽃 같은 나이에 19살 차이가 나는 말러와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하며 알마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포기한다. 그녀가 얼마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냐면 말러의 교향곡 리허설을 듣고 그 선율을 바로 피아노로 연주해 버릴 정도였다. 알마는 모든 재능을 포기하고 말러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지낸다.
하지만 큰 딸을 잃고 난 후 알마는 조금씩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다. 알마의 아버지는 당시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에밀 야곱 쉰들러였다. 그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말러는 자신을 묶어 두려고만 했다. 완벽주의자 말러는 알마를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훈육하듯 대했다. 알마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비서처럼 부려먹는 것이라 여기고 건축가 그로피우스와 바람을 피운다. 하지만 말러를 배반할 수 없어 곁을 지킨다.
그러나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말러는 지병이 악화되어 51세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랑과 배반, 불안, 아름다운 죽음을 느낀 말러는 알마에게 헌정한 아다지에토를 죽기 직전까지 수정하고 수정했다. 알마는 말러가 죽고 그로피우스와 결혼하려 하지만 건축가의 어머니 반대로 무산된다. 그리고 코코슈카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그림의 모델이 되어 주면서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알마는 코코슈카의 온 마음을 뒤 흔들었다. 그림 바람의 신부는 코코슈카의 그림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바람의 신부는 두 사람의 불 같은 사랑을 가슴에서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거친 화풍으로 그렸다. 코코슈카는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운동의 대표라 불리는 화가였으며 미술계의 프로이트라 불렸다. 알마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어가며 코코슈카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불같은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은 이어지지 못한다. 코코슈카가 군대를 가면서 헤어지게 된다. 알마는 코코슈카가 군대에서 총상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을 듣고 건축가와 다시 만나 결혼을 하여 아이를 갖게 된다. 후에 살아서 군에서 돌아온 코코슈카는 알마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녀를 잊지 못하고 병적으로 그녀를 갈망하여 알마를 닮은 사람만 한 인형을 제작해서 데리고 다니며 같이 생활했다. 이 인형은 검색을 하면 볼 수 있다.
알마는 건축가와의 결혼생활이 오래가지 못했다. 잦은 해외 출장과 함께 아들이 친부인가 하는 문제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시인이자 소설가인 프란츠 베르벨에게 빠져들어 10년 동안 동거를 하다 결혼을 하게 된다. 알마 쉰들러는 그렇게 해서 얻은 이름이 ‘알마 마리아 말러 그로피우스 베르펠’이 된다.
알마는 자신의 남자들이 걸작을 남기지 않으면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 알마는 코코슈카와 함께 지낼 때에도 말러의 두상 조각품과 사진을 집에 걸어 두었고, 건축가 그로피우스와 지낼 때에는 코코슈카가 그린 자신의 나체 소묘를 벽에 걸어 두었다. 같이 사는 남자들이 그것에 불만을 드러내면 알마는 “그들은 내 삶의 일부였다고”라고 일축했다.
영화는 알마가 작곡한 가곡을 발표하면서 끝이 난다. 알마의 첫 입술을 훔친 사람이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다. 클림트의 ‘키스’ 속 여인이 알마 쉰들러다.
칸노 요코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우리에게는 카우보이 비밥 ost로 잘 알려진 음악가 칸노 요코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음악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칸노 요코도 말러의 교향곡 아다지에토를 무척이나 좋아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네 자매가 바닷가를 거니는 엔딩 장면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음악이 흐른다. 그 엔딩 곡을 듣고 있으면 네 자매가 살아오면서 지치고 부딪히고 힘들어하면서 불안을 딛고 가족이 되어 가는 모든 순간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막내 스즈와 세 언니들은 전혀 닮지 않았는데 같이 지내면서 점점 하나둘씩 닮은 점을 알아간다. 매사에 꾹꾹 참고 견디는 건 큰 언니 사치와 닮았고, 술을 마시고 용감해지는 건 둘째 언니 요시노와 닮았다.
낚시를 즐기는 셋째 언니 치카는 스즈가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자주 했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처음 본 동생과 기억이 없는 아버지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치카가 만든 어묵 카레를 먹으며 스즈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1도 없는 치카 언니와 아버지와의 추억으로만 가득한 스즈는 그것을 공유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칸노 요코의 마지막 엔딩곡에 스며들어 흐른다. 음악의 분위기도 말러를 닮았다. 이 영화는 영화 시작 18분부터 가슴이 따뜻해지더니 마지막까지 그 따뜻함을 유지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스즈를 있는 그대로 가족으로 받아준다. 고래 뱃속 같은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스즈를 가족처럼 대한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모두가 하나같이 슬퍼한다. 떠난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이 기억해 주고 남겨진 이들은 서로를 위로한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그들은 가족이 된다. 그런 가족에게 스즈는 사랑받는다. 보는 이들도 스즈를 통해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칸노 요코의 엔딩 곡은 마지막 네 자매의 이야기가 The end가 아니라 The and로 끝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https://youtu.be/O6R9av6Zj4k
아디지에토와 탕웨이를 가장 어울리게 담아 놓은 영상이 바로 거의 십 년 전 코오롱 스포츠 광고 영상이다. 바다와 탕웨이가 펼치는 아다지에토를 보며 박찬욱 감독은 이미 탕웨이의 사랑을 표현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말도 못하게 예쁘게 나오는 분당댁 https://youtu.be/tNKxAoi-M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