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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03. 2023

해리 포터는 나에게 수학의 정석과도 같다

너무 하찮은 이야기

겨울이 되면 여기저기서 해리 포터가 한다. 요즘도 벌써 겨울의 반열에 들어와서 그런지 케이블에서는 해리 포터의 전 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다. 겨울인데 날씨가 사람을 데쳐진 시금치처럼 만들어 버린다. 겨울은 그저 마녀의 젖꼭지처럼 추워야 제 맛이다. 내가 한 말은 아니고 홀든 녀석이 한 말이다. 호밀밭의 그 녀석 말이다. 아무튼 해리 포터는 매년 겨울에 시리즈를 전부 방송한다.


나, 요즘 일하면서 매일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있다. 고전. 빙 크로스비, 앤디 윌리암스 등. 뭐야? 벌써 캐럴이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캐럴은 기묘해서 듣다 보면 흥에 젖어든다. 여하튼 해리 포터를 마음잡고 야심 차게 1편 ‘마법사의 돌’부터 보지만 어쩐지 2편 ‘비밀의 방’으로 겨우 넘어가서 3편부터는 봐지지 않는다. 그래서 해리 포터는 1편과 2편만 보게 된다. 나머지 시리즈는 채널을 돌리다가 방송하면 건성으로 보게 된다. 딴짓하면서 - 유튜브 같은 것을 보면서, 소설 잭리처를 읽으면서 흘깃흘깃 볼뿐이다. 그래서 잘 모른다.


꼭 학창 시절의 수학의 정석 같다. 수학이라고는 40점을 넘어 본 적이 없다. 중학교 때에는 빵점을 맞은 적도 있다. 선생님이 나를 불러 이 놈아, 대충 찍어도 10점은 나올 텐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하면 빵점이 나오냐, 나는 속으로 10점이 더 쪽팔리는데, 그냥 빵점이 10점 보다 더 있어 보이는데 같은, 바보 같은 생각이나 했다. 학창 시절에 수학의 정석을 야심 차게 펼쳐 수학공부를 하지만 첫 장 함수 부분을 넘어간 적이 없다. 첫 장이 함수인가? 인수분해? 아무튼 첫 장을 넘어간 적이 없다. 그래서 수학의 정석을 들고 보면 앞부분만 새까맣고 나머지 부분은 신생아의 엉덩이처럼 새 하얗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식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니 아찔하다.


해리 포터 마니아들이 들으면 놀랄 일이겠지만 해리 포터에 열광하는 반열에 들지 않았던 나는 썩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집중해서 봤다. [누가 생각해 낸 제목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지하 제왕으로 자꾸 표기를 하려고 한다. 순데렐라 같은 글짓기 장인들이 포진해 있는, 숨은 고수들의 세상이 바로 여기, 우리나라다. 국뽕이 차오르네] 호빗 시리즈도 재미있게 봤지만 해리 포터 마지막 편은 인중이 지우개로 문질러 놓은 듯한 볼드모트를 뭐 어떻게 죽이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해리 포터 1편, 반지의 제왕 1편이 나온 그 시기가 영화사에서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계기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 아닌가 싶다. 그 순간의 중심에 내가 서 있었다니 그것만으로도,, 뭐 그렇다. 그건 몇십 년 동안 영화는 인간의 상상력 그 위의 일을 해왔지만 어떤 지점을 넘을 수 없었다. 또 영화 속 과학은 현실의 과학이 따라잡을 수 없었다.


요컨대 미래소년 코난의 배경은 2008년이다. 2008년이면 노무현 대통령에서 이명박으로 넘어가는 시기로,,, 또 백 투 더 퓨처 2편의 미래는 2015년이다. 영화 속 2015년에는 날아다니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물에 젖으면 신발이 알아서 드라이를 하고 뭐 그런 시기다. 마티 맥플라이의 엄마로 나온 리 톰슨의 딸 조이 도이치도 배우인데 조이 도이치는 엄마의 그 시절의 모습과 판박이다. 뭐야? 아무리 엄마와 딸 사이지만 이렇게나 닮았다고? 할 정도다. [제가 위에서 분명 하찮은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의 다크 한 미래의 배경은 2019년이다. 코로나직전이다. 블레이드 러너 속 래플리컨트, 요즘말로 에이아이, 안드로이드는 ‘죽음’보다는 ‘제거’, ‘고친다’보다는 ‘수리’로 표명되는데 총에 맞은 래플리컨트는 고통스러워하고 같은 래플리컨트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인간들은 서로를 미워하며 총구를 겨누고 먹을 것을 빼앗고 사기를 친다. 사기를 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네.


래플리컨트를 때려잡는 데커드는 인간이지만 냉정하고 차갑다. 그런데 정말 데커드는 인간일까. 이는 좀 더 긴 감독판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는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인간은 인간에게 칼과 총을 겨누나, 그것이 설령 생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복제된 인조인간이 어떤 면에서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다움을 지니고 있을까. 이 명제는 요즘 넷플에서 하는 ‘플루토’에서도 너무나 잘 나타난다. 절찬리 방영 중이니.

이 투샷은 내가 손꼽는 장면
내가 손꼽는다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건 없지만


아무튼 해리 포터가 나올 시기 이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영화 속에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80년대에 나온 ‘듄’이 그렇고. 그러다가 2천 년도로 접어들며 그래픽의 수준이 정말 고도로 발전을 함으로 영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자본과 물량으로 충당이 안 되는 부분은 그래픽으로 대체가 되었는데 자연스러웠다. 바로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이 그랬다. 스타트를 끊었다. 스파이더맨, 매트릭스 같은 영화들이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고 왔다. 매트릭스의 어떤 장면은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몹으로 재현하는 현상이 일어났고, 스파이더맨 2는 세계에서 한국이 첫 상영을 해버렸는데, 그때 자정에 시작하는 영화를 예매했는데 극장이 빈자리가 없었고 보는 동안 박수가 터져 나오고 모르는 사람들이 전부 한마음이 되어서 토비 맥과이어를 응원했다. 그 열차씬에서. 모든 스파이더맨의 전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멋진 장면이 아닐까.


그때 그 자리에 우리도 같이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영화가 끝나니 새벽 3시였는데 모두가 즐겁게 극장을 나오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전부 스파이더맨의 이야기 삼매경이었다. 그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다. 지금은, 음 지금은 코로나 이후 극장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극장에 가더라도 분위기가 썰렁하다. 극장은 극장의 재미가 있는데 극장의 재미가 빠진 극장은 그냥 단어로써의 극장일 뿐이더라고.


해리 포터 1, 2편은 론 위즐리의 귀여움을 보는 재미가 있다. 정말 너무, 말도 안 되게 귀엽다. 루퍼트 그린트보다 론 위즐리가 더 어울리는 론이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귀여움이 과즙처럼 마구 터져 나온다. 유튜브 누군가도 나와 생각이 비슷한지 론의 귀염 터지는 영상을 올려놨다. https://youtu.be/1-JKP2gp80k?si=FRrob4k5ecWEu5Kl

포터헤드POTTERHEAD


하지만 아이들은 한 해 한 해 기가 막히게 커 간다. 그만큼 어른들은 기막히게 늙어간다는,, 해리 포터가 중반부를 넘어서고부터는 그래픽 같은 것이 없다면 론 위즐리는 그냥 아저씨다. 루퍼트는 벌써 결혼도 하고 해리 포터 이후 나오는 영화가 드라마에서는 늘 살이 쪄 있는 모습이다. 친근한 게. 근래에 루퍼트가 나온 시리즈가 미드 ‘서번트’ 시리즈였다.


나의 취향에 정말 딱 맞는 시리즈다. 샤말한 감독이 제작 연출을 맡았다.

https://youtu.be/rBTEUPAkGGE?si=ZWioa3FQCwtcbgdF

영화예고편

이 기괴함, 이 어두움, 이 음험함, 이 찝찝함, 이 답답함, 이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공기의 압박감이 드는 시리즈 ‘서번트’는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연출과 제작에 참여를 해서 샤말란 표 공포를 시리즈 내내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이 몇 되지 않는데 미스터리 공포를 너무나 잘 끌어낸다. 매회 장면 장면마다 무서운 메타포와 공포의 은유가 가득해서 뭘까 뭘까 하면서 조마조마하며 보게 된다.


잘 나가는 기자와 일류 요리사로 터너 부부의 집에 보모, 즉 서번트로 리앤 그레이슨이라는 18살의 소녀가 들어오면서 알 수 없는 음험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이야기다.


이 리엔 그레이스라는 소녀는 그 또래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소녀다. 모든 것이 미스터리와 수수께끼로 둘러싸인 소녀다. 이 시리즈는 매 화면마다 메타포를 장치해 놨다. 리엔이 처음 집으로 오는 날 소녀는 현관 밖에서 집주인 터너 부부- 도로시가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서 있는다. 그리고 들어오라고 했을 때 집으로 들어온다. 마치 뱀파이어처럼.


조증이 심한 도로시에게 과한 환영을 받은 리엔이 온 이유는 터너 부부의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아기를 보여주는데 안고 있을 때에도, 눕혀 놓았을 때에도 아기는 울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리엔의 표정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마치 울지 않는 아기처럼 무표정과 좀 더 무표정일 뿐이다.


도로시가 조증이 심한 이유는 아기가 태어난 지 13개월 만에 죽고 만다. 그 때문에 도로시는 거의 미쳐가고 있을 때 인형 요법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실은 아기는 인형인 것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리엔은 마치 인형을 진짜 아기처럼 대한다.


이 시리즈를 보면 이 집도 이상하지만 터너 부부도 리엔도 그리고 도로시의 오빠인 줄리안(론 위즐리다)도 도대체 누가 정상이고 누가 정신 이상자인지 보다 보면 헷갈리게 해 놨다. 나이트 샤말란이 연출과 제작에 관여했다 하니 정말 기가 막히게 만들어놨다.


사이코 심리 스릴러 같은데 오컬트 호러 같으면서 무서운 공포 영화인가 하면서 보게 된다. 리엔이 와서 인형을 아기처럼 대한 후 인형이 사라지고 진짜 아기가 방에 들어와 있다. 터너는 그때부터 미쳐버린다. 리엔이 도로시를 위해 아기를 훔쳐 온 것인가 의심을 하며 리엔 대해서 알아보는데.


이런 긴장감과 기이한 음악이 한몫을 한, 피부 밖으로 실밥 하나가 나왔는데 뽑으면 계속 딸려 나오는 것 같은 기기괴괴한 취향이 맞으면 저격당하는 ‘서번트’ 시리즈다. 이 시리즈 내내 론 위즐리가 나온다. 와인에 절어 있는 배불뚝이로 나온다. 초반에는 별 비중이 없는 것 같은데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비중이 올라가고 기기괴괴해져 간다. 시리즈 3인가? 론 위즐리의 야스장면도 나온다. 그렇게 귀여웠던 론 위즐리가 어느새 자라서 야스를 하다니. 론이 야스를 하다니! [내가 고자라니 버전으로 한 번 질러봄]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귀여움 하면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의 막내 써니다. 볼 때마다 마음이 발롱 발롱 했다. 전 시리즈 내내 미쳐버리는 줄. 시즌 1에서 써니는 아가아가했는데 시리즈가 거듭날수록 조금씩 커 간다. 시리즈와 함께 써니도 커 가는 모습이 귀여움 그 위의 말이 있다면 당장 말하고 싶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이라는 우울하고 불행한 모험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도 그 불행을 잊게 만드는 행복 덩어리 써니는 일종의 전사, 우리 쪽의 비밀병기로 시즌 1의 갓난아기에서 벗어난 써니는 시즌 2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시즌 3에서는 3남매 중 가장 활약을 많이 한다는 느낌을 준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언니와 오빠를 위해 대형 트럭을 운전해서 올라프의 소굴에서 탈출한다. 저 작은 손으로 기어를 넣고(게다가 수동기어다) 클러치도 밟고 붕 5단으로 밟을 때 써니의 표정을 보라. 불행의 연속이지만 잊게 만든다.

다음 장면은 써니가 꼬마 늑대 인간 차보로 변신했을 때다. 악의 무리들이 언니 오빠를 괴롭히려 할 때 써니가 차보로 변해 캬악 하며 덤벼드는데,,, 정말 너무 귀엽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에 나오는 남자들은 알라딘에 나오는 남자들처럼 대체로 바보 거나 덜 떨어지거나 멍청하다. 올라프를 비롯해서 그의 졸병들도, 은행가인 포, 에피소드에 나오는 남자들은 전부 멍청하게 나온다. 대신에 여자들과 아이들은 현명하고 용감하다. 우리나라 규방문화와도 흡사하다.


이 영화에 나오는 바보 같은 악당들은 파시스트의 모습을 많이 보인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다오.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괴벨스의 이 파시스트적인 논리를 올라프가 보들레오 아이들의 재산을 뺏기 위해 매 회 에피소드마다 펼친다. 올라프의 파시즘에 착하고 정의롭지만 멍청한 어른들이 거기에 휩쓸린다. 그래서 아이들을 화형에 처하려고 하거나 사자 우리에 던지려고도 한다. 거짓 뉴스에 속아서 마녀사냥에 동참한다.


파시즘에 젖은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신나게 사람을 죽인다. 늘 웃고 있어서 몰랐던 속은 썩어 문드러져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들고,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을 앞에 두고 한숨짓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갑갑하고 답답한 마음은 불면을 불러들이고 조그만 화면 속에서는 아직도 죽은 사람을 씹어대고 있다. 이 모든 게 한 문장에서 시작을 한다  그들은 변질된 공공성으로 그것이 마치 최고의 선이자 앎의 최선이라 여기고 한 문장으로 시작된 사람 죽이기는 무서울 정도로 꽃을 피운다.


위험한 대결에서 저쪽 편이 힘을 가질 때는 우리 편은 속수무책으로 억울하게 당하거나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다. 반면에 우리가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는 저쪽 편은 정의를 부르짖으며 당당하게 그릇됨을 주장하고, 힘을 가진 우리 편은 저쪽 편의 부당함을 처리할 만큼 힘을 내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방법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편은 힘을 가지던, 힘을 가지지 못하던 늘 당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파시즘에 순수함으로 방어를 하는 사람이 바로 막내인 써니다. 시즌 3에서 써니는 본격적으로 적의 소굴에 남아서 스파이로 활동한다. 짝짝짝.


하찮은 얘기라고 했죠, 오늘의 선곡은, 요즘 티브이 광고에 올리비아가 나와서 아이폰을 광고하던데 올해 여름 내내 나의 조깅 뮤직이었던 올리비아의 뱀파이어를 듣자. 정말 좋아 죽을 것 같은 노래다 https://youtu.be/RlPNh_PBZb4?si=GtyEC9CrSyfJ8cLN

Olivia Rodr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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