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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고등학생의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당시 마동은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거슬러 가는 방법으로 생각을 더듬었다. 하지만 병원에 실려와 정신을 잃고 며칠을 누워있었다고 들었다. 마동은 병원에 입원하기 전의 위태로운 상황으로 과거의 시간을 돌렸다. 시간을 돌려 보지만 우주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뿌옇고 희미하고 어둡고 탁한 어떠한 배경뿐이었다. 손을 그 속에 집어넣으면 자신의 손이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겁이 날 만큼 무서운 배경이 보일 뿐이었다. 그때 방황하는 집 잃은 강아지처럼 하나의 움직이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사물도 아니었다. 작은 모습의 여자애다. 마동은 눈을 비빈다. 그렇다고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여자애는 아주 어린 모습은 아니었다. 그 작은 여자애의 모습이 형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선명하게 볼 수는 없었다. 기억 속의 모든 것은 뿌옇고 욕이 날만큼 희미하고 불확실했다.
이명이 들리기 전에는 이런 기억은 없었다. 젠장, 마동은 그 장면을 상세하게 떠올리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섬광이 되어 정신을 집중했다. 뿌연 막에 가려진 여자애의 흐린 모습만 기억이 났다. 병원에 실려 가게 된 계기에 어린 여자애가 속해있었구나, 정도만 알 수 있는 기억이었다. 생각이 느슨해졌을 때 육체를 죄어오던 구석구석의 고통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앉아있던 소파에서 무릎을 가슴에 대고 이를 꽉 깨물고 있던 마동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숙이기 이전의 모습에서 달라진 것이라곤 마동의 옆에서 떠들다가 마동이 앉아있던 소파에서 다른 소파로 가버린 학생들이 진료를 받고 나갔다는 것이다.
대기실에는 대부분 나이가 든 여성과 남성의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작업복을 입고 있는 5, 60대 남성들의 모습이 보였고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지 뒷머리가 하늘로 삐죽 솟아오른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도 있었다. 여성들은 대부분 집안일을 정리해 놓고 나온 듯 50대 어성들로 보이는 사람이 4명이 있었고 중간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자가 가방을 울러 매고 앉아 있었다. 굉장히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여성노인이 누군가(며느리로 보이는)의 부축을 받고 들어와 앉아 있었고 지금 막 조퇴를 했는지 교복을 입고 백팩을 등에 맨 남학생이 기침을 하며 들어왔다.
여름에는 겨울과 달리 감기환자들은 냉방병으로 인한 오한이나 기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으로 인해 바이러스가 계절과 시간을 무시하고 시점을 만들었다. 마동의 통증은 요란스럽게 찾아와 고요하게 밀려갔다. 천천히 쌓인 바닥의 쓰레기가 한 번에 쓰레받기에 실려 나가듯이 고통은 한 번에 싹 사라졌다. 마동은 입을 벌려 턱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턱은 제대로 움직였고 이를 꽉 깨문 탓에 턱을 움직이는데 둔한 느낌이 조금 남았다. 나이가 있는 남녀는 티브이에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티브이를 본다고 할 수는 없었다. 티브이 화면 속 한 점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움직임이 없었다. 그들의 시선은 갈 곳을 잃은 시야로 무엇을 바라보는지 모호한 눈빛이었다. 갑자기 마동은 고개를 들었고 동공에 힘이 들어갔다.
-그 녀석-좋다고-씹-할-때는-언제고-어쩜-나한테-이럴-수가-있지-
마동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앞머리가 일자에 빨간색 가방을 등에 메고 있었고 흰 티셔츠에 스키니 진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신경질적인 표정을 하고 휴대폰에 고집스럽게 터치를 하고 있었다.
-어휴-오늘은-또-애들에게-뭘-해먹이지-덥다고-뜨거운-건-먹지-않을-텐데-이-양반이-오늘도-술을-많이-마시고-들어오려나-날도-더운데-
병원의 대기실에서 세련된 주부에게서 들려오는 이명이었다. 50대 초반의 여성으로 다른 아주머니들처럼 파마머리가 아니었다. 여름이지만 막 꺼내 입은 티셔츠 차림은 더더욱 아니었고 허술해 보이지 않는 여름용 고급치마에 시원하게 보이는 단화를 신고 있었다. 그녀는 일행 없이 혼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소리는 분명 그 여성에게서 들려오는 공명이었다.
-아-십할-방학인데-보충수업시간에-이-까짓-조퇴-한-번-보내주는데-뭘-그렇게-물어보는-게-많지-꼰대-담임새끼-
방금 들어온 남학생에게서 들리는 이명이었다. 나머지 노인들은 무표정한 얼굴처럼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마동은 자신의 귀를 세차게 후볐다. 분명 병원 대기실 안에서 희미하고 아주 탁한 소리지만 이런 소리가 귀 안으로 요란스럽게 파고들었다. 이명은 입으로 내는 구어만큼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들려오는 이명은 딱딱 음절이 끊어져서 이제 막 언어를 배운 아이가 하는 언어도단처럼 들렸다. 마동은 몸에서 없는 힘이 몽땅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또다시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대기실의 사람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 이명처럼 들리는 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웅 웅. 웅성웅성.
아아, 머리가 또다시 아파왔다. 몸살이 극도로 심해지려 하는 모양이었다.
디렉트메시지: 소피, 나 지금 진찰받으러 들어가야 해. 소피도 좋은 꿈 꾸고 몸 상태는 나중에 말해줄게.
디렉트메시지: 그래, 동양의 멋진 친구 진료받고 나중에 또 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