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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트메시지:동양의 멋진 친구. 난 그 뒤로 B급 영화에 출연을 하다가 성인배우를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거라구. 어때? 나의 이야기 말이야.
마동은 소피의 긴 이야기를 듣고 무게감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누르는 것을 느꼈다.
소피는 고독과 외로움을 어떤 식으로 견뎌내고 있는 것일까.
어린 나이에 소피는 비참한 행위를 당했고 자아를 잃어버렸으며 그것을 자기만의 (어떠한) 방식으로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소피는 자신만의 형태를 만들어서 암울했던 기억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고 애썼을 것이다.
디렉트메시지: 글쎄, 나 지금 말이야 최초에 감기가 걸린 기분이야. 감기가 걸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분명히 팔다리가 멀쩡하게 붙어있지만 프라모델 조립을 잘하는 이가 내 팔다리를 뜯었다가 엉망으로 붙여 놓은 것 같은 기분, 그런 기분이야 지금.
디렉트메시지: 그런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동양의 멋진 친구. 하하.
소피가 웃음을 띠었다. 아마 마동의 기분을 알려고 다가왔다가 몰라서 나오는 웃음일 수 있었다. 아니면 위배의 웃음일지도 몰랐다.
디렉트메시지: 소피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에 합리적으로 보이는 모순성을 느껴서 몸이 떨렸어. 소피? 어째서 나에게 떠올리기 싫은 치부를 들려주는 거지?
디렉트메시지: 이봐, 동양의 멋진 친구. 친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친구는 나를 다른 남자가 나를 생각하듯 생각하지 않는다고 봐. 어쩌면 동양의 친구도 남자니까 나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상관없어. 내가 당신을 친구라고 믿어버렸기 때문이지. 친구에겐 그런 이야기쯤 털어놓는다고 내 생활이 망가진다거나 피해가 오지 않아. 오히려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나는 만족해. 나도 동양의 친구에게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걱정하지 말라구.
소피는 말을 이었다.
디렉트메시지: 시간이 지나서 깨달은 게 있었어. 그때 블랙우드가 한 말이 어쩌면 맞았어. 꼭 왓치맨을 보는 거 같아.
디렉트메시지: 왓치맨?
라고 마동은 물었다.
디렉트메시지: 왓치맨에 코미디언이 나오잖아. 그는‘선’의 편이지만 어쩐지‘선’이 아니야. 그건 악마, 악의 모습이야. 본능적이고 폭력적이지. 누구 하나 코미디언을 착하게 보지 않아. 모순이지. 그런 코미디언을 낳은 코미디언의 엄마 역시 악이었을까. 알 수 없지. 결국 코미디언은 악의 모습으로 실크 스펙트를 강간하지. 그 둘 사이에‘제인’이 태어나잖아. 그리고 제인은 가장 선한 편에서 선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야. 닥터 맨해튼을 정신으로 지탱해 주지. 코미디언이라는 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제인이라는 선한 모습이 탄생하지 않았다는 거지. 제인은 무모순성의 모습을 띠는 거야. 선과 악이란 정말 모호한 거야.
마동은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었지만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손가락의 마디가 평소보다 크게 보였다. 손가락의 마디에도 변이가 영역을 뻗었는지도 모른다. 손가락의 마디는 다가오는 변이에 억제력을 보이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져 변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고스란히 내주었는지도 모른다. 소피가 다시 디렉트메시지를 보냈다.
디렉트메시지: 아무리 바빠도 휴일은 있고 나에게도 시간이라는 게 주어지지. 작년에 같이 일하는 동료를 따라서 병원에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우들을 찾아가서 봉사활동을 한 일이 있었어. 그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관념 앞에 이미 조용히 무릎을 꿇거나 타협을 한 사람들이야. 과연 죽음이 눈앞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느낌이 어떨까? 그런데 말이야, 그들의 모습은 정말 행복하고 편안하게 보였어. 우리들처럼 아등바등거리지 않아. 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떠나고 났을 때 남은 사람들이었어. 오히려 본인보다 남은 사람을 생각하는 거야. 죽음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힘든 것도 아니야.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기대가 있었어. 당연하지만 흥분도 있었고 망설임도 있었지.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감동도 있었어. 멜로디가 있었고 포용력이 있었어. 물론 두려움과 아픔이 여러 번 존재해 있었지. 그들에게는 평온함이라는 우리와 다른 감정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나는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어. 화장실에서 울었어. 화장실은 그런 용도야.
디렉트메시지: 자신을 내려놓는 순간 마음은 평온해지는데 그동안 나는 몰랐던 거지. 난 그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고 하면 이상할까. 그 계기로 시간이 나면 그곳에 들러서 봉사활동을 했어. 그들이 나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은 내가 그들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들을 옮기거나 물건을 정리하거나 말동무를 하는 정도니까. 그들은 나의 직업이 뭔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의 모습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어. 나를 하나의 인간,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 대우해 줬어. 소아암에 걸린 아이는 친구들에게 받은 소중한 초콜릿을 먹지 못하고 있었어. 다 나으면 먹을 거라며 숨겨두었던 걸 나에게 주었어. 난 그 초콜릿을 받을 때 절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잘 참았는데. 그 꼬마 녀석이 나의 눈물을 닦아주더니 어깨를 두드려줬어. 그리고 웃어주었어. 그들은 나를 친구로 대해주는 거야. 친구란 그런 거야. 동양의 멋진 친구도 나를 그렇게 대해주고 있어. 친구란 그런 것이거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