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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이 가만히 있자 소피가 다시 디렉트메시지를 넣었다.
디렉트메시지: 셰익스피어가 그랬다고 하지? 오늘 죽으면 더 이상 내일부터 죽지 않아도 된다고 말이야. 죽음이 눈앞을 가리는 순간까지도 어떻든 고집스럽게 살아가는 거야.
마동은 죽음에 대해서 다가가 보았고 삶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인간이 삶을 헤쳐나가는 건 어떤 관념을 지니며 어떤 의미인 것인가. 모두가 언젠가는 죽지만 그것은 나와는 동떨어진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인간은 하찮은 존재다. 사후경직 3시간 정도가 지나면 인간의 육체는 끝에서부터 그리고 안으로부터 썩어가기 시작한다. 음부의 끝에서 죽음의 꽃은 피어나며 검은 잎의 냄새도 심하게 난다. 인간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존재들이 문명을 이루고 있다. 존재 자체는 하찮을지 모르나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는 또 다른 인간을 풍요롭게 하거나 위태롭게 한다. 소피가 당한 일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고 같인 인간에게 분노가 들었다. 근육이 경직되었고 심장이 3분 전보다 거세게 뛰었다.
디렉트메시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는 사후기증을 서약했지. 마음이 아주 기뻤어. 그것이 내가 그동안 꿈꿔왔던 일인지도 몰라. 죽음이란 삶의 한 부분이야.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들을 통해서 그걸 알 수 있었어.
디렉트메시지: 사람들이 소피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동은 진심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마동은 자신의 진심이 이역만리에 있는 소피에게 통화망을 타고 전해졌으면 했다.
디렉트메시지: 어니 괜찮아 친구. 모든 사람들이 친구처럼 나를 바라볼 필요는 없어. 편견의 세계는 그것대로 또 하나의 세계이니 말이야. 포르노배우가 너무 착한 이미지면 그것대로 매력이 없는 일이지(소피는 웃었다) 동양의 멋진 친구. 그래, 기이한 몸상은 좀 어때? 곧 한국에 가면 당신과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들뜨는 거 같은데. 나 어떡하지?
마동은 소피가 자신을 만나서 들뜬다기보다 그동안 성인영화와 포르노배우라는 타이틀 속에서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확고한 자리싸움과 입지를 통해 소피라는 하나의 게슈탈트를 지니느라 고생한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에 들떠한다고 여겼다. 소피는 자신이 쌓아놓은 집적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더불어 한국은 블랙우드를 떠올리게 할 것이고 그 일도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럼에도 소피는 마동을 만나는 것에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다. 저녁에 만나는 것이라 마동에게는 다행이었다.
디렉트메시지: 몸살은 계속 진행 중이야. 낮 동안은 몸살이 심하고 밤이 찾아오면 몸살은 내 몸에서 떠나가 버려. 이것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야. 언젠가는 몸살이 끝날 거야. 그 언제가 되기 전까지 고생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동안은 내 힘이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아. 받아들이기로 했어. 소피의 말대로 말이지.
디렉트메시지: 잘 생각했어. 동양의 멋진 친구.
디렉트메시지: 마치 내 몸속에서, 내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 되는 것 같아. 그것이 꿈틀거릴 때마다 두려워. 두려움이 계속 커져 가는 거야. 그런데 말이야, 또 다르게 이건 정말 굉장하군, 이건 마치 처음 와 본 유럽에 살고 있는 동양인의 느낌이야.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는 거와 비슷해.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는 거야.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소피에게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것 같아.
실은 한국 사람에게 한국어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피는 괜찮다고 했다. 소피는 마동의 언어적 스타일을 알고 있었다. 소피는 그곳에서 마동이 만난 사람들의 몇 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냈다. 소피는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무엇인가를 알 것 같다고 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곳에서 그 무엇에 대해서 느꼈다고 했다. 먹구름처럼 몸을 잠식하는 그 무엇에 대해서.
마동은 장군이가 한 말을 되새겼다. 마동의 변이 속에 어둠의 도트가 느껴진다고 했다. 장군이가 느낀 것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지금 마동의 마음속에서는 그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에고가 눈을 떴다. 또 다른 에고는 마동의 변이로 깨어난 것인지 또 다른 에고를 통해서 마동의 변이가 시작된 것인지 역시 알 수는 없었다. 확실한 건 어떤 식으로든 변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마동은 새로운 에고와 뒤엉킨 원래의 에고를 타협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타협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물과 기름이 어울리지 않듯이.
디렉트메시지: 동양의 멋진 친구. 나의 유년기에 대해서 말했으니 이제 친구차례야.라고 하면 놀라겠지.
소피는 웃었다. 웃음소리가 활자로 변하여 화면에 나타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