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35

by 교관


235.


의사는 잠시 침묵했다. 일반적인 침묵에서 벗어난 종류의 침묵이었다. 붉은 다운라이트의 불빛이 방 안에서 산란하는 고요한 소리만 들렸다.


“왓킨스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그 사람도 타인의 의식을 들여다본다든가 타인의 생각을 읽었습니까?”


의사는 마동의 말을 듣고, 당신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하는 기이한 눈빛을 띠고 마동을 바라보았다. 자세를 바꾼 의사는 다시 마동의 동공을 확인하고 입을 벌려보라고 했다.


“왓킨스와 비슷한 징후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터키에서 한 번, 체코에서도 한 번 일어났고 독일에서도 일어났죠. 74년도에 미국의 텍사스에서는 세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었습니다. 모두 뇌락은 아니지만 비슷한 자연현상에 의해서 발생했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 중에 왓킨스와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 발전소의 전기가 과부하하는 바람에 전기 자극으로 감전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왓킨스와 동일한 상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각 나라의 정부에 의해서 그들은 관리보호 되었고 신문이나 뉴스기사로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모두 각기 서로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사고였지만 후에 그 사고들은 사건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여긴 그들의 가족은 변호인단과 함께 정부에게 원인과 결과를 물었지만 정부는 그들을 알려지지 않는 방법으로 차단했고 사고를 당하고 뇌기능이 급격하게 변이 한 그들을 포섭했습니다. 정부로써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자들이 뚫으려고 했지만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각 나라의 정부에 가려서 알 수 없었죠. 2008년 그루지야에서 왓킨스와 흡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일명 왓킨스 사건이라고 불렸죠.”



그루지야는 남오세티야와 전쟁이 한창이었다. 두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라는 나라를 배후에 두고 첨예한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다. 2008년 8월 7일 그루지야는 친러 성향의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한발리를 사정없이 공격했다. 남오세티야의 뒤를 봐주고 있던 러시아는 즉각 군사적 개입에 착수하게 된다. 8일과 9일, 양일에 걸쳐 남오세티야에 침투한 그루지야 군을 진압하고 츠한발리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이에 미하일 사카슈발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러시아에 휴전을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루지야의 휴전제안을 거절했고 11일부터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의 경계를 넘어 고리시까지 진격을 하게 된다. 12일 드미트리 메데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남오세티야에서 작전이 성공했다." 며 군사작전 종료를 선언하고 13일에 유럽연합이 제시한 중재안에 사카슈발리 그루지야 대통령과 서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문제가 터지고 만다. 중재안 합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군사행동은 멈추지 않았으며 미국이 공군을 통해서 그루지야의 지원의사를 밝히면서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의 형국으로 넘어서게 되었다. 15일에 이르러 러시아군은 그루지야의 수도인 트빌리시 40킬로미터까지 진격한다. 그루지야로 침투하는 러시아군과 미국의 지원은 고도의 정치적인 문제가 많이 개입되었다. 석유자원으로 러시아의 국력이 다시 강력해졌다는 예이기도 했다. 미국은 공군의 수송기와 해병대를 투입하고 러시아의 병력과 대치를 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그루지야 사태로 인해서 유럽연합국에 미국의 우세적인 상황이 해체되고 있다는 분위기를 쇄신시킬 필요가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군의 대치는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미군과 러시아군은 그루지야 접경 잉구리댐이 있는 압하지야 지역까지 내려갔다.


소련 붕괴 이후 그루지야의 민족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압하지야 인들은 그루지야가 독립을 선포하자 92년 7월에 압하지야도 독립을 선언했고 이에 그루지야 정부는 압하지야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내전이 발생하게 된다.


92년 9월에 옐친의 중재로 전쟁은 휴전이 되었으나 93년 봄부터 전쟁이 다시 발발했고 휴전과 전쟁이 반복되면서 복잡한 상황은 압하지야 인들만 구석으로 내몰았다. 94년 5월 다시 러시아의 중재로 평화협정에 들어갔지만 사상적인 면으로 일어나는 전쟁의 골은 깊었다. 깊어진 골은 마치 누군가 성냥불로 그으면 모두 불 타 버릴 것처럼 검은 기름으로 충만한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런 위태롭고 냉랭한 평화의 분위기가 죽 이어졌다.


그러던 중 2008년 미국과 러시아의 전투가 압하지야 잉구리댐을 두고 다시 붙었다. 미국의 해병대가 뛰어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스페츠나츠를 비롯한 특수부대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 역시 전투력은 막강했다. 그들은 잉구리댐을 뒤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미사일 공격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쌍방 대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잉구리댐은 세계최대의 댐 중에 하나이다. 무려 272미터에 달했고 저수량만 50만 톤 이상이 되었다. 미사일 요격으로 잉구리댐이 터지기라고 한다면 전투를 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군뿐만 아니라 압하지야도 모두 수몰이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전투 대치는 전면전이지만 대치 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두 나라의 군에서는 침투 조를 투입시켜 상대국의 수장을 사살하는 전투형식을 띠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대치상황은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총알이 하늘을 수놓았고 사이렌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두 나라의 군은 4시간에 걸쳐 총알을 소비한 뒤 고요한 휴전을 유지했고 다음 날 대낮의 전투로 엄청난 총알을 다시 소비했다. 압하지야 주민들은 모두 대피를 했고 압하지야의 독립군들도 두 나라의 전투에 가담하는 형국으로 바뀌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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