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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녀도 최원해 부장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는개는 새벽에 마동의 가슴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마동은 모니터의 뉴스를 보다가 그녀를 안고 따라서 잠이 들었다. 고질적인 꿈도 꾸지 않았고 꿈속에 자주 나타나는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는개가 마동자신의 품에 안겨있어야 하지만 그녀의 인기척은 없었고 팔을 뻗어 그녀의 감촉을 느끼려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동의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소리와 생각 때문에 머리를 잡고 흔들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마동의 신체는 바닥에 붙어버린 듯했다. 회오리바람이 바늘구멍을 지날 때 나오는 소리를 내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중력이라는 법칙이 해가 숨어버리고 나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다가 해가 솟아오르고 나면 마동의 몸을 한 없이 끌어당겼다. 사람이 늙는 것은 중력과도 연관이 있다고 하더니 이미 신체는 늙어버린 것이 아닐까. 나이가 한 살 먹어 갈수록 중력에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사람들은 많이 했다. 그렇다면 지금 마동의 인체는 몇 살의 나이가 되었을까. 사람이 늙어서 죽음으로 향해 가는 것은 우주의 진리이고 중력은 지구의 법칙이다. 우주의 진리와 지구의 법칙의 상관관계는 항시 존재하고 있었다.
마동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상체를 겨우 일으켰고 눈을 제대로 뜨려고 노력했다. 눈과 눈 사이의 깊은 주름을 만들었고 건초더미 같은 푸석한 얼굴은 얼굴대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헝겊으로 만든 인형의 눈초리처럼 가늘게 뜨고 마동은 거실을 둘러보았다. 커튼은 완벽하게 실내와 외부를 차단하고 있었다. 커튼 너머로 태양의 빛이 거실 안으로 와닿지 못하고 커튼건너편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보였다. 태양의 색온도가 번지는 모양새가 마동의 눈에 들어왔다. 마동은 앉은 채로 허리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찾았다. 는개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흔적이 거실의 어느 구석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동의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는개는 잠들었고 마동은 잠든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잠이 들었다. 그것뿐이었다. 정신을 잃은 것도 아니고, 꿈의 저편에 가두어뒀던 또 다른 에고에 대한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다시 거실을 둘러봤다. 주방에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어제 두 사람이 앉아서 먹었던 동그란 도마형 접시와 와인 잔이 잘 씻겨 있었고 선반 위에는 아직 덜 마른행주가 잘 접힌 종이 모형을 하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트북은 주둥이가 닫혀있었고 그녀가 입었던 마동의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는 보이지 않았다. 형태가 없는 그림자처럼 들어왔다가 그저 쓱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는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마동의 가슴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하게 두근거렸다. 전율이 심장을 무시무시한 폭격으로 때렸다.
그녀가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를 했을까. 그런 그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심장이 드세게 뛰었다. 마동은 꺼져있는 에어컨을 한 번 본 후 고요하고 산란된 빛만이 내려앉은 거실을 지나 냉장고로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 병원에서 받아 온 주스가 냉장고에 들어있었다. 자줏빛을 띠는 붉은색의 주스는 냉장고 안에서 깊은 바다의 심해어처럼 미동 없이 있었다. 마동은 주스 병을 잡고 뚜껑을 돌려 벌컥벌컥 들이켰다. 붉은색의 끈적끈적한 주스는 마동의 목을 통해 내려가면서 혈관을 타고 몸 구석구석 퍼졌다. 심장을 거쳐 각 기관으로 내려갔고 손가락 끝과 발톱을 타고 몸 구석구석 퍼졌다. 주스가 몸으로 퍼질수록 마동의 혈관은 새로운 항체를 만들어 냈다.
몸으로 퍼지는 기분은 마치 눈보라가 몰아치는 야외에서 자동차 타이어를 나르는 일을 하고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해 질 녘의 포장마차에 앉아서 굶주려 쪼그라든 위장에 소주를 들이붓는 기분과 흡사했다. 분노가 맹렬하게 혈관을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주먹을 쥐니 무작스럽게 변한 주먹이 보였고 분노의 대상에 주먹을 휘둘러 대상의 흉곽을 박살 내버리고 싶었다. 마동의 몸은 노곤함에 젖이 있다가 분노의 급류를 타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배위(背違)의 몸은 일순 가벼워졌다.
나가서 그녀를 찾자.
장군이를 만나서 대상에 대해서 물어보고 찾아가서 목뼈를 부러트리고 싶었다. 일어서니 조깅을 할 때와 몸 상태가 비슷해졌다. 그녀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최원해처럼 사라져서는 안 되는 그녀였다. 밖으로 나갈 때는 병원에서 건네준 선글라스를 써야 한다. 기이한 병원에서 기이한 의사가 처방해 준 기이한 선글라스였다. 마동은 선글라스를 썼다. 기이한 선글라스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순간 실내지만 시야확보가 좋았고 눈이 편안했다. 시야각 180도가 눈에 전부 들어왔다. 마동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찾았다. 는개에게 전화를 해봐야 했다. 그녀도 만약, 만약…….
마동은 고개를 흔들었다. 위험한 상상은 하지 말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