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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을 하고 거실에서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되어간다. 마동은 바지를 입었다. 바지의 허리둘레가 커졌다. 오래된 리바이스 진을 입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이내 비를 뿌릴 것처럼 거뭇거뭇하니 잿빛구름이 가득 들어차있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마동은 이스터석상의 턱을 가진 주차요원을 지나 만두모녀가 만두를 먹던 만두가게를 지나 병원 앞으로 왔다.
나는 변이 하는데 세상은 고요한 물처럼 변화가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가라앉았다.
위에서 형태를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나를 누르는 그 기분을 마동은 느끼고 있었다. 결국 삶이란 고도와 같은 것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그렇게 기다리던 고도처럼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투박하고 모질게 생긴 셔터 문이 굳게 내려와서 닫힌 사라마내과 병원은 오늘부터 여름휴가에 들어간다고 프린트되어있는 종이가 병원에 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되돌려 보내고 있었다. 이 기이한 병원을 찾는 이가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왔다가 발길을 돌렸고 할머니 한 분이 왔다가 역시 돌아갔다. 그들은 아무런 불만이나 한마디 불평의 소리도 없었다. 여름휴가를 떠난다고 써놓은 프린트 밑에는 마동에게 따로 전하는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병원 옆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주스를 가져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 줄로 간략하게 마동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병원에서 남겨놨다.
어째서 휴대전화의 문자로 연락을 해 주지 않았던 것일까.
병원은 처음부터 기이하여 유종의 미마저 확실히 기이하게 남겼다. 이 병원에서 하는 일에 있어서 무엇인가 엉성한 부분이 있었지만 종이 위의 활자로 전달사항을 받으니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마동이 서 있는 그 짧은 시간에 의외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하나 같이 프린트되어 있는 글을 읽고 수긍하고 등을 되돌려갔다. 누구 하나 투덜거리지 않았다.
마동은 구멍가게에 가서 이야기를 하니 버려진 시간의 얼굴을 한 구멍가게의 주인에게서 주스를 건네받았다. 병원은 일주일간 여름휴가를 떠난다고 되어 있었다. 마동은 머릿속에 분홍간호사가 분홍간호사복을 벗은 모습이 보였다.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도 가운을 벗고 두 사람이 나란히 여름온천을 즐기는 모습이 떠올랐다. 병원에서는 일주일분의 주스를 마동에게 남기고 떠났다. 마동은 아마 이 주스를 다 마시지는 않게 될 것이다. 구멍가게의 주인에게 조금 더 있다가 찾으러 와도 되겠냐고 물었고 더위에 지친, 버려진 시간의 얼굴을 한 주인은 자신의 계획에 없던 일이라 재빨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동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를 두 장 꺼내서 건네주었다. 건네받은 구멍가게 주인은 만사가 귀찮은 듯 그렇게 하라고 했다. 구멍가게 주인은 비어져 나온 코털을 뽑고 있었던 듯 다시 의자에 앉아서 땀을 흘려가며 코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마동은 하늘을 보고 선글라스를 벗어봤다. 잿빛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어서 눈이 덜 아팠다. 잿빛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가냘픈 태양의 빛줄기가 보였다. 그 모습은 너무나 멀리 있어서 의식 이면에 있는 다른 세계의 삶처럼 보였다. 구름의 틈새는 태양이 내리쬐는 작은 빛도 인정하기 싫은 듯 그 틈새를 어느새 메워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마른번개가 한 번 내리쳤다. 마동은 태양이 사라지고 잿빛구름이 가득한 세계가 되니 몸이 한결 자유롭고 편해졌다. 정작 인간에게 필요한 태양이 없어져야 마동은 활동이 자유로웠다. 길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마동을 흘깃 쳐다보았다. 색이 엷었지만 선글라스를 쓰고 회색 긴팔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그 위에 선물 받은 마크 제이콥스의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평소에 이렇게 입고 있었다면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지금 마동은 땀을 흘리지 않았다. 한기가 들 뿐이었다.
저 멀리서 노란 택시가 와서 마동은 택시를 세웠다. 택시 뒷자리에 앉았다. 택시기사에게 동시상영을 하던 극장이 있는 지역을 말하고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기사는 웃으며 그곳은 택시들이 아주 꺼려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마동은 나오는 요금에 이만 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말했다. 미터기를 켜고 택시기사는 출발했다. 택시기사는 에어컨을 틀었다. 혼자서 운행을 할 때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문을 열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마동은 여름감기로 인한 몸살이라 덥지 않으니 자신을 위해서 일부러 에어컨을 틀 필요는 없다고 했다.
“아, 그렇습니까. 손님들 대부분 더위에 허덕이다 택시를 타니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달라고 합니다. 그것이 한 여름에 택시를 타는 목적이기도 하고요. 바로 택시를 타서 시원해서 좋겠지만 그 속에 늘 있는 우리 같은 사람은 억지스럽게 만든 에어컨바람에 노출이 되어 손님처럼 긴팔을 입고 있어야 할 지경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냉방병이 무서운 거더군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렇더군요. 일반적인 감기보다 더 오래가는 듯합니다. 손님도 냉방병이신가 보군요.”
택시기사는 백미러로 마동을 쳐다보았다. 마동의 시선은 유리창 너머의 밖으로 향해있었다. 마동은 택시기사의 말에 딱히 대답할 길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냉방병으로 몸살이 걸려 버렸는데 거머리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 세력이 점점 확대되어 간다고도 말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