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
오늘 밤에도 한 마리가 죽었다. 움직이지 않는 금붕어를 하수구에 버렸다. 사람이 죽어 버리면 주위의 사람들은 죽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홀가분해한다. 금붕어의 죽음은 좀 다르다. 다른 금붕어들이 죽은 금붕어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 금붕어를 키우는 주인마저 그렇다. 매일 밤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금붕어도 사람도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가는 항해를 할 뿐이지만 금붕어의 죽음은 사람의 죽음과 다르다. 사람이 죽고 나면,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자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서 이불을 꼭 덮어주고 싶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죽어버린 사람은 늘 추워 보인다. 금붕어는 죽으면 죽은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매일 시작하는 아침에 무의미하게 일어나서 같은 일을 반복하며 건조하게 보낸다고 하지만 죽고 나면 그런 것도 할 수 없다. 무미건조하게 지내도 죽지 않고 있기에 휴대전화기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을 매일 볼 수 있다.
남들이 시작하는 아침에 나는 잠이 든다. 그건 말하기 좀 창피한 일이지만 어둠이 껴 버린 부옇고 짙은 밤이 좋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여러 가지 색을 볼 수 있다. 특히 밤하늘을 수놓는 청록색의 젖은 어둠을 볼 수 있다. 하루에 15분? 나는 젖은 어둠을 멍하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밤하늘에 그림을 그린다. 후우, 담배를 한 모금 빨아서 연기를 뱉어내면 내가 볼 수 있을 정도의 캔버스의 젖은 어둠에 연기가 그림을 그린다. 연기는 돼지 모양이었다가 금세 젖은 어둠에 녹아든다. 그 모습이 좋아서 매일 밤하늘 속으로 연기를 뱉어낸다. 15분 정도가 적당하다. 나는 적당한 게 좋다. 적당하다는 건 깊게 빠질 일도 없으며 사탕 하나 정도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 사탕 하나 먹는다고 이 세계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의 죽음에는 ‘적당히’가 없다. 그래서 죽음이 싫으면서 피할 수 없으니 좋아해야 한다. 나는 ‘적당히‘가 좋은데 ‘적당히‘가 없는 죽음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얼마 전에 사는 곳 앞에 장례식장이 생겼다. 1년을 공사를 했다. 호텔처럼 보이는 곳이 들어서자마자 매일 그곳에 죽은 사람이 들어온다. 새로 생긴 장례식 앞을 지나쳐야 일하는 곳에 갈 수 있다. 매일 그곳에 잠시 들러 오늘은 누가 죽었나 본다. 57세인데 벌써 죽었다. 57세의 남자가 어젯밤에 죽었다. 죽을 나이가 아니지만 그 남자는 죽었다. 이 도시에서는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난다.
버스를 타면 맨 뒤에 가서 앉는다. 맨 뒤의 자리가 없으면 맨 뒤쪽에서 일어서서 간다. 모두가 똑같이 고개를 숙이고 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길거리에 걸어가는 사람들도 폰을 보면서 걷고 있다. 폰 속에는 여러 가지 빛이 있으니까. 여러 가지 빛은 사람들의 색과 비슷하다. 폰 속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니까 폰 밖의 사람들은 폰 속의 사람들과 살아있음을 공유한다.
어항 속의 금붕어들은 알아서 잠을 자야 한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이 잘 때, 밤을 수놓는 어둠 속에서 일을 하니 나는 내가 알아서 잠이 들어야 한다. 이 퇴색한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밤하늘에 별빛이 없다는 것이다. 별빛 대신 전등과 네온의 불빛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그래서 밤하늘은 늘 청록색으로 보인다. 밤하늘은 사실 검은 적이 없다. 언제나 더한 청록색이거나 덜한 청록색일 뿐이다.
내가 사는 곳은 두 평 남짓한 고시원이다. 나는 이곳이 좋다. 딱 몸을 누일 수 있을 정도의 공간. 이 공간에 누워있으면 잠이 잘 온다. 공간이란 참 묘하다. 여기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나의 공간이 아니지만 나만의 공간이 있는 곳이다. 이 속에는 모르는 이들의 공간이 있지만 나의 공간은 이 두 평 남짓한 방이다. 아늑하다. 이대로 누워서 깨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공간에 맞게 몸을 구겨 넣는다. 그래서 공간은 부지런하게 스쳐간 이들을 기억한다. 남들이 일어날 때 잠이 잘 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남들이 다 잘 때 잠이 들어봐야 나의 잠은 하찮은 모래 알갱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렇게 청록색의 밤이 걷힐 때 잠이 들면 특별한 기분이다.
고시원 앞에는 깨끗하지 않은 하천이 흐른다. 하천과 고시원의 사이에는 도로가 하나 있고 하천 앞에는 벤치가 있다. 매일 그곳에 앉아서 요상한 말을 쏟아내는 남자가 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마른 남자는 큰 소리로 원 투 뜨리, 갓차, 만옴, 무기이, 같은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그것이 그 남자가 유일하게 하루 종일 하는 일이다. 남자는 한 시간 정도 혼자서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낸 다음 옆의 벤치로 이동을 해서 다시 한 시간 정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뱉어냈다. 남자는 내가 지내는 고시원의 옆방에 산다.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데도 용케도 생활을 하고 있다. 배가 고프면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 같은 것을 사 먹는다고 했다. 이 도시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도 생활이 가능한 사람과 낮에는 잠이 들고 밤 동안 일을 하며 가난하게 지내는 사람이 한 건물에 같이 살고 있는 것이 이 도시다. 그리고 고시원 앞의 장례식장에서는 죽은 사람이 새로운 물건처럼 매일 들어온다. 죽은 것과 새로운 것이 어울리는 묘한 곳이 여기 이 도시인 것이다.
[계속]